노산이라는 말은 임신과 출산 분야에서는 다소 약체에 속하지만, 다른 분야 즉,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인 면에서는 다소 우위를 점유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실제로 이제껏 살면서 쌓아왔던 커리어로 인한 인맥, 그리고 지인들의 입에서 전해지는 넘쳐나는 정보와 경험담 그리고 감성보다는 이성의 제어가 어느 정도 더 자유로워지는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늦은 나이에 임신하는 많은 임산부는 젊은 엄마들에 비교하여 임신이 되기를 매우 손꼽아 기다렸던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임신 소식에 그저 감사하고 감내하며 모든 면에 조심과 안전을 위한 것이라면 굳이 그들의 의견을 고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병원에서는 출산 예정일이 지날 경우, 바로 유도분만을 실시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왜냐면 내가 노산이기 때문에 더욱 안전한 출산을 도모하기 위함이란다. 출산 예정일은 12월 23일, 자연스레 며칠을 더 기다려 해를 넘기고 출산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잠시 있었지만, 우리는 마지막까지 조심과 안전이라는 목표를 향해 노력했다.
마지막까지도 붙는 노산이란 타이틀. 열 달을 달고 살았지만 마지막까지도 익숙하지 않은 단어, 노산. 어느 누가 마흔을 갓 넘긴 즈음, 자기 이름 앞에 늙음을 뜻하는 노를 흔쾌히 달고 즐거워할 수 있을까?
'그래 내가 열 달만 참는다. 이제 거의 다 왔으니까' 라며 자신을 다독였다.
크리스마스 저녁,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 만찬을 마치고 나는 유도분만을 하러 짐을 싸서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마치 크리스마스의 기적처럼 정말 아무 일 없는 듯이 며칠은 더 위에서 뛰어놀 것 같던 아이는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아주 천. 천. 히. 무려 11시간이나 걸려서 나왔다.
진통을 느끼면서 옆에 있는 간호사가 태동 계를 보며 이제 진통이 올 것이라고 알려주면, 나는 그간 배웠던 호흡법을 시행했다. 그리고 진통 초기, 소리를 지르면 힘이 분산되어 도움이 안 된다는 귀띔에 그때부터 분만실 밖으로 개미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진통 주사도 맞을 예정이었지만 의외로 마지막엔 진행이 빨리 된다고 진통 주사도 맞지 않고 출산을 시도하게 된 것이다.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의 순간에도 이성은 희미하게나 깨어있었는지 옆에서 출산에 도움이 된다거나, 좋다는 지시에는 거의 기계적으로 따랐던 기억이 난다. 분만실 앞 소파에는 나의 엄마가 11시간 동안 진통을 하면서 태동이 온다고 하면 준비한 호흡법으로 찍소리 하나 내지 않고, 그 힘까지 모아 그 시간을 버텨내고 있는 나이 많은 딸이 안타깝고 애처로워 소리 죽여 많이 우셨다고 하셨다.
아이를 처음 만난 그 순간이 모든 엄마가 그러하겠지만 생생히 기억난다. 반나절의 산고 끝에 만난 우리 딸의 첫인상은 굉장히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그간 뱃속에서 아주 조그마한 아기집이었을 때부터 우리는 서로를 알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도 이렇게 아팠어? 어떡해? 난 몰랐었어, 엄마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나를 낳고 우리 엄마는 무려 42년을 키우고 나서야 큰딸에게 처음으로 듣는 진심 어린 엄마 공감과 감사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의 감동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희미해져 가고, 나는 어느새 감사의 순간도 잊고 다시 엄마에게 화도 내고 짜증도 내는 어엿한 딸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놀라운 회복 탄성력을 지난 사람임이 입증되었다.
출산 후 남편과 나 그리고 친정 부모님이 함께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기억은 희미하지만,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었다. 출산 후 홀가분한 기분으로 함께 탄 엘리베이터,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거울 속에는 남편, 그리고 우리 친정 부모님과 이제 막 경기를 마치고 링을 내려온 듯 보이는 권투선수 한 명이 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헉! 내 얼굴이 왜 이래? 진짜? 왜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어?”
거울 속 내 얼굴은 진짜 지금 막 링을 내려온 권투선수였다.
얼굴은 부어있고 입술은 퉁퉁 부어올라있고 눈은 실핏줄이 터져 벌겋게 충혈되어있었다. 게다가 눈을 제외한 얼굴 전면은 여기저기 얻어맞은 것처럼 부어있었다. 이제껏 내가 봤었던 산모는 창백하고 핏기 없는 얼굴에 수척하고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어서 누가 봐도 애잔한 마음이 들었었는데 나는 보는 순간 헉! 하고 입을 틀어막는 놀라움을 부르는 얼굴이었다.
2박 3일 입원 동안 마주친 산모들 모두 나처럼 얼굴로 출산의 고통을 알리는 예는 없었던 것 같았다. 저 얼굴로 산모복을 입고 복도를 돌아다니면 지나가던 산모들이 한 번씩은 다들 쳐다보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출산하면서 소리를 지르지 않기 위해 그토록 애쓰고 삼켰던 나의 고통이 얼굴 근육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아이에게 처음 수유하는 순간 그 감동적인 사진도 우락부락 일그러진 내 얼굴 덕분에 감동보다는 코믹한 사진이 되고 말았다.
자기가 여기 입원한 산모 중에 제일 나이가 많아. 진짜 다들 자기보다
한참이나 어려.
남편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얼굴에 미소 한가득 띠고 문을 열고 들어 보며 큰 소리로 말한다. 입원실 전체를 한 바퀴 둘러보다 입원실 문 앞에 걸린 명패를 무심코 보면서 지나는데 하나, 둘 계속하여 둘러봐도 자기 부인보다 나이 많은 사람은 없다는 걸 알고는 부인이 엄청 큰일을 해낸 것임이 틀림없다고 자랑스러운 승전보라도 전하는 심정으로 나에게 달려와 말을 했다.
이런... 몰랐었냐? 그게 지금 자랑이라고 떠드냐? 그 타이틀 따느라 죽는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