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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공사 Jun 05. 2023

비가 와도 우산이 필요 없는 나라가 있다?

아케이드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어

'아케이드'하면 크레이지 아케이드가 떠오른다.

내 유년시절의 8할은 차지했던 게임으로 그 경쾌한 bgm이 아직도 귀에 맴돈다. 

게임이 10초 정도 남았을 때, "허리업!"이라는 알람을 들으면 긴장이 쫙 돌았던 것도. 


오늘 말하고 싶은 싱가포르의 '아케이드'와 크레이지 아케이드의 '아케이드'는 그 어원이 같다. 

아케이드의 위키피디아 정의는 이렇다. 


기둥이나 교각에 의해 지탱되는 아치(arch)가 연속적으로 이어짐으로써 만들어지는 복도와 같은 공간 


흔히, 우리가 보는 천막 있는 전통시장도 아케이드 양식이라 한다. 


크레이지 아케이드의 '아케이드'는 게임의 종류를 말한다. 

흔히 오락실에서 보이는, 동전이나 코인을 넣고 하는 게임이 '아케이드 게임'이다. 

아케이드 게임은 주로 아케이드 형식의 쇼핑몰에 설치되어 아케이드 게임이라고 불린다. 




싱가포르에서는 아케이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싱가포르 상업 시설의 아케이드(무보정) ⓒ이공사


상업적인 공간은 물론, 주거 단지에서도 볼 수 있다. 


싱가포르 주거 단지의 아케이드(무보정) ⓒ이공사
싱가포르 주거 단지의 아케이드(무보정) ⓒ이공사
싱가포르 주거 단지의 아케이드(무보정) ⓒ이공사
싱가포르 주거 단지의 아케이드(무보정) ⓒ이공사
싱가포르 주거 단지의 아케이드(무보정) ⓒ이공사


누구나 한 번쯤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빌딩 처마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있다가 비를 맞으면서 횡단보도를 후다닥 건넌 경험.


싱가포르에서는 그런 경험을 피할 수 있다. 

건물 사이에도 아케이드식 통로가 있다.  


싱가포르 육교의 아케이드(무보정) ⓒ이공사
싱가포르 육교의 아케이드(무보정) ⓒ이공사
싱가포르 육교의 아케이드(무보정) ⓒ이공사


아케이드 덕분에 비가 와도 우산이 필요 없다. 

싱가포르 시내를 여행한 날, 비가 쏟아졌다. 

그렇지만, 시내를 다닐 때는 우산이 필요 없었다. 


가끔, 아케이드가 없는 횡단보도에서는 

지하철 출구를 이용하면 뽀송뽀송하게 길을 건널 수 있다. 




아케이드가 없는 공간도 있다. 

중심가에서 벗어나면 아케이드는 버스 정류장 등을 위주로만 설치되어 있다. 

그렇지만, 버스 정류장에서 주거 단지까지는 대부분 아케이드로 연결돼 있었다.


아케이드라는 독특한 건축 양식.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보지 못한 양식이지만, 

막상 익숙해지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비가 오지 않을 때는 강렬한 햇빛을 피할 있는 그늘이 되었다. 




이쯤 되니 궁금해졌다. 

아케이드는 점포 주인이 갖고 있는 사적인 공간일까? 아니면 도보처럼 공적인 공간일까? 

왜 싱가포르에는 이렇게 아케이드가 이렇게 많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서는 20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간단한 궁금증으로 시작했던 리서치는 꽤 많은 자료와 함께 끝났다. 

그중에서도 특히, 

서강대학교 데이터에 있는 논문인 "싱가포르 · 샤먼 도시개발과 도심지 주상복합 건축문화의 형성(pdf 다운로드 링크)"과 

RICE 매거진에 실린 "Under One Roof: How The Covered Walkway Conquered Singapore"아티클을 참고했다. 




첫 번째 질문, 아케이드는 사적인 공간인지, 공적인 공간인지는 아주 복잡한 이슈다.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아케이드(외랑 공간)의 기원으로 올라가야 한다. 


싱가포르의 아케이드의 기원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아케이드는 중국 이주민이 지은 숍하우스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중국 이민자들이 아케이드가 있는 건물을 지었고, 

그 이후에 5피트 길이의 아케이드(당시 베란다라고 부름)가 의무화되었다고 본다. 


법적으로, 아케이드의 성질은 애매모호하다. 그러니까,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공간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아케이드 공간의 주인은 건물주지만

동시에 보행통로, 즉 대중적인 공간으로써 역할도 명시되어 있다.




아케이드를 건물주의 사적인 공간으로 봐야 하나, 보행자의 통로로 봐야 하냐, 

이 갈등은 19세기부터 이어졌다. 


1888년, 영국 식민정부는 아케이드의 공공성을 강조하면서 

아케이드 통로에 적재한 물건을 치울 것을 명령했다. 


이에, 상인들의 저항이 거셌는데 '베란다 폭동'까지 일어나게 된다. 

결국, 2인 이상의 보행자가 지나갈 공간만 있다면 물건을 진열해도 된다는 합의를 보았다. 


그렇지만, 아케이드의 자리다툼은 1980년대까지 계속된다. 

통로에 좌판을 깔고 음식을 판매하는 '호커'들이 많았다.  


호커 이슈는 싱가포르 정부가 일종의 푸드코트인 '호커센터'를 만들고 

공간을 제공해 주면서 문제가 겨우 해결되었다. 

싱가포르의 호커센터에 대한 글은 조만간 또 쓸 예정이다. 




두 번째 질문, 

싱가포르에는 왜 아케이드가 많을까?라는 질문은 답변이 간단하다. 


싱가포르 정부가 적극적으로 설치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중반, 싱가포르에서 아케이드 양식 개발은 잠시 주춤한다. 


이주민이 늘어나고, 노숙자 등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실용성'이 중시되고, 생존에 직결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이 과정에서 아케이드가 드러설 자리가 적어진다. 


아케이드는 20세기 후반에서 다시 들어서는데, 

싱가포르의 경제적 여건이 나아진 것이 주요 요인이다. 


여기에, 대중교통 사용을 독려하려는 정부 정책의 일환으로 

주거 단지와 대중교통 시설 간에 아케이드를 설치가 활발해졌다. 




휴, 생각보다 글이 길어졌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만 해도 

싱가포르 아케이드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녹아있을지 몰랐다. 


단지, '편하다, 그런데 왜 아케이드를 지었지?'라고 생각했는데, 

아케이드에는 싱가포르의 복잡한 역사와 다양한 이해관계가 섞여 있었다. 




다시 느끼는 여행의 즐거움. 

새로운 것을 아는 즐거움을 느꼈다. 


가끔, 낯선 여행지의 모습에서 상상도 못 한 이야기를 발견한다. 

비 올 때, 우산을 펴지 않아서 편하다고만 생각했던 싱가포르 아케이드, 

그 뒤에 이런 이야기가 쌓여 있는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낯선 곳에서 만나는 내가 몰랐던 이야기와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경험. 

이 모든 것들이 여행의 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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