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음태교
나의 마지막 강의
건강검진으로 암이라는 말을 들은 다음날, 강의가 있었다. 화상경험자들의 자립을 돕는 강사양성 마지막 강의였다. 그날은 수료식이 있었고, 화상경험자들이 강사로 사회에 복귀하는 첫날이었고, 나는 그들을 교육한 선생님으로 축하하고 격려하는 자리였다. 수업은 한강성심병원에서 진행했었다. 올해 나의 마지막 강의라고 생각하니 더 정성을 다했던 것 같다. 긴 프로젝트였다. 화상환자를 위한 손재활교구재를 개발하고 kit로 제작했다. 화상경험자들이 강사로 활동할 수 있는 사회공헌봉사활동 프로그램을 만들고, 화상경험자들을 강사로 교육했다. 그날은 마지막 시간이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암을 만나서... 모든 일정을 마치고,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던 대표님께 처음으로 나의 암을 알렸다.
"대표님, 저 한동안은 활동을 못할 것 같아요. 좀 쉬여야 할 것 같습니다"
" 대표님 쉴 때 되었죠,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왔으니까요. 여행 가세요?"
" 아뇨. ^^... 놀래지 마세요.. 전 괜찮으니까.... 저 암이래요"
"...."
대표님의 눈가가 빨개지신다. 나는 웃으면서 나의 암을 말할 수 있는데, 대표님은 말을 잇지 못하신다.
"수술하면 되고, 한동안 제 몸을 좀 돌보면서 쉬려고요. 올해엔 좀 쉬면서, 여행도 다니려고 했는데.. 푹 쉬어볼까 해요 "
"대표님은 정말 모든 것에 긍정적이네요. 기도할게요"
" 저 종교 없는데 대표님이 기도해 주신다니 정말 고맙고 든든해요. 저 아시잖아요.. 잘 해낼 거예요 "
" 그럼요. 잘 해내실 거예요"
" 우리 밥 먹으러 가요. 한 동안 못 뵐 것 같으니까^^"
2주 후 나는 위절제수술을 하고, 한 달 뒤에는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항암치료를 하면서 나는 암환자라면 누구나 해보는 질문인 "내가 왜 암을 만났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답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생활습관, 식습관과 스트레스. 우리가 자주 접하는 단어들이 금방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어떤 일이든 모든 것의 시작은 마음먹기부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먹는다는 것으로 절반은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암을 만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먹기였다.바로 앞에 있는 항암치료는 힘들고 지친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분명 있을 것이고, 나와의 타협을 보고 싶을 때도 있을 테니까.. 내가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지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나의 삶을 지켜내야 하는 강력한 이유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지를 찾기로 했다.
내가 찾은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
1. 나는 엄마다.
2. 나는 하고 싶은 게 아주 많다.
3. 나는 점자촉각놀이교구재 개발자다.
첫 번째, 나는 두 아이의 엄마다.
항암치료를 시작하면서 암을 먼저 경험한 대표님에게 노트를 선물 받았다.
나는 그 첫 페이지에 "나는 엄마다"라고 적었다. 그리고 나의 항암치료 일기를 적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내가 살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였던 것 같다.
두 번째, 나는 하고 싶은 게 아주 많다
아주 개인이지만 강력한 이유이다. 하고 싶은 게 많다는 것은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매일 생각하고, 구체화시키는 작업을 했다. 그러다 보니 체력을 키우고, 열심히 하루를 보내려고 했다. 분명 나의 항암치료와 항암부작용에 좋은 영향을 준 나의 살아야 하는 이유였다.
세 번째, 시각장애아동을 위한 점자촉각교구재 개발&보급
내가 암을 만나고 가장 걱정을 많이 한 부분이었다. 나는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세 번째와 네 번째에서 아직 지키지 못한 약속들이 있다. 그 약속들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꼭 살아야 했다. 맹학교 선생님께 개발해 드리기로 한 교구재는 개발 중 멈추었다. 개발 후 보급을 위해 대량제작해야 하는 교구재들도 많이 남아있다. 내가 암을 만나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하면서 회사에는 업무상 차질이 생겼다. 함께 진행하는 실무 담당자는 내가 암을 만나기 직전에 바뀌었다.
실무담당자는 아직 업무파악이 되지 않았는데, 대표인 나는 암수술과 항암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최대한 컨디션을 잘 유지하고, 항암치료를 부작용이 심하지 않게 잘 마쳐야 했다.
암을 만나고,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 우리 회사의 문제가 정확하게 파악이 되었다.
모든 업무가 대표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대표가 부재하게 되면 회사는 멈출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암을 만나고, 항암치료를 하면서 담심포는 비상상태가 되었다. 대표 없이 모든 일들이 진행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다. 협력기관들과 업체들과의 업무진행 방법에도 정리가 필요했다.
전화위복일까?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담심포는 정상운영을 할수 있었다. 대표인 내가 암을 만나고, 회사업무는 예전에 비해 10% 정도만 수행할 수 있었다. 아주 중요한 결정, 특수상황등에 대한 업무 등이었다. 직원들과 협력업체들의 도움으로 정상운영이 가능했고, 내가 치료 중에도 차질 없이 계획대로 기업들과의 사회공헌사업으로 점자촉각교구재를 제작할 수 있었고, 맹학교와 시각장애아동들에게 점자촉각교구재를 보급할 수 있었다.
지금도 나는 업무의 20~30%만 담당하고 있다. 업무의 대부분은 점자촉각교구재 개발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다. 맹학교 선생님과 시각장애아동의 부모님, 개발에 참여하는 기관의 담당자와의 소통하는 정도이다. 그 외의 80% 정도의 업무들은 직원들과 협력단체의 담당자들이 잘해주고 있다. 항상 감사하다. 내가 마음 편히 수술과 항암치료에 전념할 수 있게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다.
암의 표준치료가 끝난 뒤
암은 만만한 친구가 아니다. 나는 표준치료가 끝나고 4개월마다 추적관찰을 하고 있다. 4개월동안 식단조절, 운동을 혼자서 하면서 나의 건강을 지키고 있다. 암의 재발은 2년이내에 가장 많으며, 5년이내에 대부분 재발되거나 전이가 된다. 암은 완치가 없다. 대신 5년동안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으면 완전관해 판정을 받는다. 완전관해는 완치는 아니다.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완전관해가 된 후에도 암이 재발되거나 전이 되었다는 사례들을 어렵지 않게 접하게 되는것이다. 암의 재발과 전이는 암환자와 완전관해가 된 암경험자들이게 가장 두려운 말이다.
내가 표준치료로 암을 치료하고 완전관해까지 재발전이가 되지 않게 관리하면서 알게된 사실중 충격적인것은 우리나라에는 현재 암의 재발전이 예방을 돕는 시스템이나 기관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암의 재발과 전이는 암유병자들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다. 삶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암의 전이재발이 되면 암은 기수와 상관없이 병기는 4기가 된다. 4기의 생존율은 5% 이하이다. 암유병자들이 말하는 "망망대해에 버려지는 느낌"이 표준치료가 끝나고, 경험하는 혼자 관리해야 하는 시간들이다.
경제적인 부담도 크다. 암이 재발전이가 되면 처음 암세포와는 다르게 내성이 있거나 독한 암세포일 가능성이 높다. 치료도 어렵지만, 사용할수 있는 항암제도 많지 않고 고가의 경우가 많다. 항암치료는 3주마다 항암제를 투여하는 사이클로 진행된다. 한때 이슈가 된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의 경우만해도 1사이클당 570만원의 치료비가 발생된다. 이 치료비를 3주마다 지불해야 치료를 지속할수있다. 이외에도 1사이클당 1천만원 이상의 치료비를 지불해야하는 항암제들도 많다.
지금 내가 살아야하는 이유
담심포는 정관을 조금 수정했다. "암유병자들의 질 좋은 삶을 돕는 콘텐츠개발 보급사업" 를 추가했다.
이제 나의 주 업무는 암의 재발과 전이를 예방하는 정보를 찾고 나의 일상에 루틴으로 만들고 있다. 좋은 습관을 실천하면서 나의 암이 재발되고, 전이 되지 않게 면역력을 키우고 건강한 일상을 유지하는게 목표다. 나는 일에서는 프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한다. 나는 나의 삶이 걸린 문제를 일로 정했다. 나는 지금까지 해왔던 어떤 프로젝트보다 가장 열심히 최선을 다할 것이 분명하다. 나는 매일 암을 공부하고, 건강한 삶을 위해 건강한 습관 만들기 루틴을 실천하고 있다. 건강한 음식을 손쉽게 만드는 법을 공부하고 있다. 질 좋은 수면을 돕는 루틴을 찾는다.이 모든 것들은 나의 질 좋은 삶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 암유병자들의 질 좋은 삶을 유지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암치료 방법을 논하기에 앞서 환자와 가족 모두가 치료를 맡은 의사와 병원을 신뢰해야 한다. 모든 관계는 신뢰에서 출발한다. 신뢰야말로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사항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조금만 더 서로를 믿고 도우며 신뢰를 키워나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는 환자들에게 습관적으로 "하나님께 맡기세요"하고 말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생명은 창조주의 영역이고 사람이 한번 태어나면 죽는 것은 누구나 아는 기정사실이다. 다만 누구는 조금 더 일찍 가고 누구는 조금 더 늦게 가는 것이 다를 뿐이다. 엠디 앤더슨에서 외국인 환자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세상에 쓰일 곳이 있으면 신이 살려주실 거라 믿는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적극적이면서도 편안하게 치료에 임한다.
자신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가? 평소에도 그러한 목적의식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좀 더 충만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시민들이 모였을 때 사회눈 더욱 성숙해질 것이다. (출처: 암에 지는 사람, 암에 이기는 사람 / 김의신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