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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편집장 Oct 30. 2020

전쟁의 기술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 Project 24  #수련화

매거진 발행작가 : 수련화(https://brunch.co.kr/@space-daum/162)
매거진 발행일 : 2020. 10. 25.


사람이 책을 남기는 것일까. 책이 사람을 남기는 것일까.
나를 스쳐간 수많은 책들 중에서 내게 사람을 남기고 떠난 책을 떠올려 본다. 책장에 고이 묻혀있는 녀석을 꺼내 다시금 뒤적거리다 조용히 덮어둔다. 내 소중한 추억이 날아갈까 봐 아주 조심스럽게...



   "오빠, 우리 서로 책 선물할까?"

   "응? 책 선물?"

   "내가 꽤 오래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 한 권 있는데, 쉽게 손이 안 가는 거야. 오빠가 먼저 읽어볼래? 내가 오빠한테 선물할게."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한 당시의 남자 친구, 지금의 남편에게 나는 두꺼운 양장본을 하나 안겼다. 서점의 서가에서도 구석진 자리, 제일 아래 칸에 꽂혀있는 녀석을 힘겹게 꺼내 그의 가방에 담아주었다. 그리고는 다 읽었는지 꼭 확인할 거라며 큰 소리도 쳤다. 생각지도 못한 책 선물을 받은 남편은 웃고 있었으나 돌아서는 얼굴에 금세 그늘이 드리워졌다.


   결혼하기 전, 나는 휴일이면 서점에 가서 시간 보내기를 즐겼다.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 책을 고르는 것이 좋았고, 어쩌다 마음에 드는 책을 한 권 만나면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읽어볼 수 있다는 게 그저 즐거웠다. 서점 나들이는 언제나 반가운 내 취미이자 나누고픈 경험이었다.


   그 시절, 서점에 들를 때마다 내 눈에 밟히는 책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전쟁의 기술'이라는 두꺼운 양장본이었다. 왜 그리 관심이 갔는지, 왜 서점에 갈 때마다 일부러 찾아 만지작 거리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없다. 아마도 한참 직장 내의 정치싸움에 휘둘릴 때라 뭔가 처세에 대한 스킬을 익히고 싶었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만 할 뿐이다.


   무기도 다룰 줄 알고, 전쟁터 돌아가는 상황도 얼추 파악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실제 전투에 나가서는 제대로 한 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번번이 돌아서는 초보 장수. 어쩌면 그때 나는 회사라는 전쟁터에 내몰려 마음만 급했던 초보 장수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알지 못했던 고급 기술을 익히면 전장에서 백전 불패할 것 같은 기대에 유독 이 책에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의 외형에서 풍기는 아우라에 압도당한 나는 고급 스킬을 연마하기는커녕 책의 첫 페이지조차 쉽사리 넘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승리하는 비즈니스'라는 문구에 현혹되지 않았을까.


'전쟁의 기술'을 가진 남자


   서울과 거제. 남편은 왕복 800km의 거리를 매주 오가며 나와 1년 반 동안 사랑을 나눴다. 남편은 매주 금요일이면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싣었다. 거제에서 서울은 버스로 4시간 반 거리. 금요일 늦은 밤에 서울에 도착한 남편은 나와 주말을 보내고 일요일 늦은 오후, 다시 버스에 몸을 싣고 거제로 돌아갔다. 그렇게 일요일 오후 5시 30분은 우리에게 이별의 시간이자 약속의 시간이 되었다. 남편은 다음 주에 또 만나자는 짧은 인사만 남긴 채 신데렐라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그래서였을까. 내게 떠나는 뒷모습을 남긴 남편과의 연애는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애틋하고 절절해져 갔다.


   하루는 버스 시간이 넉넉하게 남아 근처 서점에 들르게 되었다. 처음에는 시간을 때울 요량이었으나 문득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떨어져 있는 서로를 기억할 수 있게 매달 서로에게 책을 한 권씩 선물하는 것. 책 내용에 빠져들면서 한 번 더 서로를 떠올리고, 잊히지 않는 글귀를 마음에 묻으며 우리의 추억 또한 마음속에 쌓이게 될 거라고 남편을 설득했다. 흔쾌히 나의 제안을 승낙하는 남편을 보며 독서 취미까지 찰떡이니 얼마나 좋냐고 생각했던 나였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당시 남편은 책과 그리 친하지 않았다. 책을 부러 멀리한 것은 아니나 취업 이후 책을 읽을 생각도, 여유도 없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하다. 책보다는 사람이, 책보다는 소주 한 잔이 더 가까웠던 남자에게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매달 서로에게 책을 선물하자는 순진한 제안을 한 것이다.


사랑에 빠진 남자가 마다할 수 없었던 달콤한 유혹의 단어들.


사람을 남긴 책 이야기


   사랑의 힘이었을까. 평소 책 읽기와 거리가 멀었던 남편은 회사 책상 위에 책을 올려놓고 매일 아침 30분씩 독서라는 것을 시작했다. 음주가무에 능하고 언제나 흥이 넘치던 사무실의 귀염둥이가 '전쟁의 기술'을 읽고 있다는 소식은 남편의 사무실에 제법 큰 반향을 일으켰다. 남편이 전하기로 아침마다 지나는 사람들이 꼭 한 마디씩 건네었다고 한다.

   "아이고, 우리 백 대리가 이런 책을 읽는 줄은 몰랐네."

   "아침부터 책을 읽고, 정말 바람직한 모습이야. 오늘 자네를 다시 봤어."

   "선배님, 이야~ 이 책! 이야~ 이런 책을! 이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어깨가 으쓱해진 남편은 그 뒤로 하루도 빠짐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루 분량을 읽고 업무를 시작해야 하니 자연스레 출근시간도 당겨졌다. 새벽같이 회사에 와서 책을 읽는 대리라니. 남편을 그런 대단한 회사원으로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었으나 어쨌든 나의 책 선물은 남편을 아주 조금씩 바꿔놓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선물한 '전쟁의 기술'이라는 책이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남편이 그 책을 다 읽는 데까지 무려 두 달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언제까지 한 권만 읽고 있을 거냐는 나의 타박에도 굴하지 않고 남편은 한 장 한 장 공들여 책을 읽었다. 그 지난한 시간들 때문이었을까. 우리의 책 선물은 그 뒤로도 쭉 이어지게 되었다. 물론 결혼을 한 뒤, 지금까지도 서로가 서로에게 책을 선물하고, 함께 책을 읽는 습관은 이어지고 있다. 감사하게도 '전쟁의 기술'로 인해 남편에게 '독서의 기술'이 생기게 된 것이다.


우리 부부에게 사연이 많은 책들만 모아놓은 책장.


전략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실용지식


   이 책에서 말하는 전쟁은 칼과 창이 부딪히고, 유혈이 낭자한 전쟁터만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인생을 전쟁에 비유하고 있다. 다양한 전쟁사, 역사 속의 전략가들의 사례를 들어 우리에게 좀 더 멋진 인생을 살기 위해 어떤 기술이 필요하고, 그 기술을 어떻게 연마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의 시대에서도 손자병법이라는 고전이 꾸준히 다시 읽히는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더하여 사람과 사람 만나는 모든 현장이 전쟁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굳이 총을 겨누는 현장만을 전쟁터로 명명할 필요가 있겠는가. 나의 이득을 위해 타인과 부딪혀야 하는 상황, 내일의 내 것을 위해 오늘의 내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 하루에도 수십 번씩 머릿속에서 싸워대는 나 자신과의 다툼까지도. 거창하게 총과 칼을 겨누고 탱크가 출동하는 전쟁터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는 항상 전쟁터와 같은 상황에 놓여있지 않은가.

 

   30대 초반의 내게 전쟁은 회사, 그 자체였다. 이기고 싶었고,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싸움터. 나는 그곳에 모든 것을 걸었고, 살아남은 유일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어렸을 적 장래희망이 회사원은 아니었으나 이왕 시작한 것이라면 누구보다 잘하고 싶었고, 뛰어나다고 기억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 뒤에 차례로 겪었던 연애와 결혼, 육아라는 것들이 내겐 훨씬 더 큰 전쟁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 인생을 더 크게 뒤흔든 사건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 우리는 늘 전쟁 같은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그것을 우리가 인지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말이다.


적의 마인드에 침투하라 : 커뮤니케이션 기술

커뮤니케이션은 당신이 영향을 미치고 싶은 상대의 저항적이고 방어적인 마인드를 전장 삼아 치러지는 일종의 전쟁이다. 목표는 그들의 방어선을 뚫고 들어가 마인드를 점유하는 것이다. 여타의 것들은 비효율적인 의사소통이자 자아도취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적의 방어선 너머로 당신의 아이디어를 잠입시키고 사소한 사안들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며 상대가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도록 유인하는 법을 배워라.
당신의 비범한 아이디어들을 평범하게 포장함으로써 속여 넘길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좀 더 저항적이거나 둔감한 이들은 참신함으로 가득 찬 극적인 언어로 일깨워야 한다.
나아가 상대가 스스로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하도록 만들면 금상첨화다.

어떤 희생을 치를지라도 정적이거나 설교조이거나 지나치게 개인적인 언어 선택은 피해야 한다.
당신의 언어를 수동적인 명상이 아닌 행동을 자극하는 도화선으로 만들어라.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을 결국 다 읽지 못했다. 진득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를 애초에 포기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생각날 때마다 책장에서 꺼내어 만지작 거리고, 주르륵 책장을 넘기다 읽고 싶은 부분을 읽고 다시 덮어두며 책과 함께 한 해 한 해 같이 늙어가고 있다고 표현하고 싶다. 언젠가 내가 다시 마음을 먹고 이 책을 첫 장부터 완독 하게 되는 그 날이 온다면 나는 어떤 전략을 가지고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나도 모르게 얼굴에 흐릿한 미소가 지어진다. 같이 늙어간다는 말은 굳이 사람에게만 쓰이는 말은 아닌가 보다.


초등학생 때 보던 전과처럼 본문과 주석 부분으로 나뉜 구성. 그래서인지 더욱 완독이 어렵다.


   사람을 남기는 책이 있다.

   그렇게 남겨진 사람이 내가 되고, 내 인생을 설명해 준다. 그 사람과 보내는 시간이 또 한 권의 책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책을 읽고, 책을 만들고, 스스로 책이 되면서 오늘을 산다.


   당신의 인생에 잊지 못할 책 한 권이 있기를, 언제든 즐겁게 책 이야기를 나눌 동무가 있기를, 함께 늙어가는 책이 있기를 바란다. 입꼬리가 스윽 올라가는 즐거운 추억거리가 있기를 바라본다. 결국 인생의 재미라는 것은 추억거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술술 읽히는 편한 책을 찾는다면 : 

부부싸움에 쓰일 기술을 기대했다면 : ★

시간을 두고 책 읽는 습관을 들이고 싶다면 : ★

다양한 국내외 전쟁사에 관심이 많다면 : ★

처세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고 싶다면 :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 project>는 계속됩니다. 다른 작가분과 함께 매거진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매일 각기 다른 작가의 글 1~2편이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함께 써 내려갈 것이고, 함께 책으로 묶을 것입니다. 함께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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