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 음악실에서
요즘 저는 글을 쓰면서 피아노 음악을 자주 듣는데요. 특히 이 책에 실린 거의 모든 글은 피아노 음악을 들으면서 작성한 글입니다. 예전에는 제가 좋아하는 특정한 곡들만을 주로 들었습니다. 주로 MP3에 저장해서 말이죠. 하지만 지금은 유튜브 시대인 만큼 연주자들의 동영상을 주로 재생하여 음악을 듣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현장 연주회가 취소되는 가운데, 온라인 연주회로 변경되어 진행한다고 하니, 방 안에서 양질의 음악을 듣는다는 건 현대 기술이 안겨준 선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유튜브에서도 한때는 유명한 연주자들이 녹음한 앨범을 위주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주로 실황으로 녹음된 연주를 주로 듣습니다. 그중에서도 2015년에 개최된 쇼팽 국제 콩쿠르의 실황 연주를 가장 많이 감상합니다. 한국인 피아니스트인 조성진이 1위를 차지한 이유도 있지만, 그 외의 피아니스트들이 연주한 곡들도 무척이나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피아노 콩쿠르 실황을 계속 듣다 보니까 저도 예전에 참가했던 피아노 대회가 생각났습니다. 콩쿠르와 비슷하게 진행되었는데 그때 당시에는 ‘피아노 대회’라고 지칭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생애 가장 처음으로 피아노 대회에 참가하였을 때는 초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습니다. 제가 거주하는 군(郡)에서 개최한 경연 대회였는데요. 당시에 저는 1학년 시절부터 치기 시작한 소나티네 중에 한 곡으로 준비했었습니다. 동네에 있는 작은 피아노 학원에서 연습을 주로 했습니다. 다니던 초등학교와 피아노 학원의 거리가 멀어서 저는 주로 저녁에 피아노 학원에 갔던 것 같습니다. 가뜩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이라서 수업이 빨리 끝났고, 다른 학원도 다니지 않아서 저는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한창 대회가 임박하였을 시기에는, 학교에 있는 음악실에서 피아노를 연습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음악실에서 불을 켜지 않은 채로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그리곤 메트로놈을 꺼내어 피아노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요새는 스마트폰으로도 얼마든지 메트로놈 어플리케이션을 내려받을 수가 있더군요. 하지만 그때는 비싼 가격에 메트로놈을 구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똑딱이는 소리는 마치 목탁 소리를 연상시켰는데요. 그렇게 메트로놈을 켜놓고 저는 피아노 대회 연주곡을 연습하곤 하였습니다.
음악실에서 여러 번 연습했던 것 같은데, 제 기억에는 비가 오는 날의 음악실 풍경만 남아있습니다. 추적추적 빗방울이 떨어지는 어둑함 가운데에서 말이죠. 낮 12시, 1시인데도 먹구름에 가리어 햇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날이었습니다. 아마 그때 연습한 날이 거의 대회에 임박한 시기였기에 더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는 듯합니다. 피아노 대회 연주회장에 오르기까지는 정말 떨렸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여러 사람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이기도 했고, 제가 그렇게 자신감이 있는 편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대회 당일이 찾아왔습니다. 총 50~60명 정도의 참가자가 있었는데 저의 순서는 중간쯤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학생들이 연주하는 것을 듣고 있다가, 20번 정도의 참가자가 시작할 무렵에 대기실로 향했습니다. 그때 느낌은 정말 떨렸던 기억뿐입니다. 대기실에서 제 차례가 되기를 기다리니까 기어코 저의 순서가 찾아왔습니다. 수많은 청중(아마 대부분 참가한 학생들과 그들의 가족들, 심사위원 몇 분이었겠지만요) 앞에서 피아노를 쳐야 한다는 그 부담감! 피아노 대회에서 연주한 경험은 17년이 흐른 후인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어떻게 연주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분위기만큼은 생각납니다.
제가 연주했던 곡은 프리드리히 쿨라우가 작곡한 소나티네(Kuhlau Sonatina Op. 20, No. 1, 1st movement)였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들어보고 있는데요. 실제로 제가 연주한 분량을 보니까 1분도 안 되더군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뭐 별거 없네’ 싶지만, 그때는 참 긴장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신기했습니다. 무대에서 제가 그리 떨려 보이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덤덤하게 치고 와서 어머니도 놀라셨다고 합니다. 나중에 또 피아노 대회나 리코더 연주회의 자리를 가지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약간 무대 체질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감사하게도 장려상을 받았습니다! 50~60명 되는 참가자 중에서 한 사람이 최우수상을 받고, 몇 명은 우수상을 받으며, 몇십 명은 장려상을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거의 절반가량이 입상하긴 했지만, 저는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어떤 누나도 함께 대회에 참가했는데, 상을 받지 못해서 아쉽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교육청에서 수여하는 상이라서, 나중에 학교 조회 시간에 친구들 앞에서 받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이때의 일을 다시 생각할 날이 오기도 하는군요. 이것 말고도 두어 번 대회를 더 나간 적이 있는데, 그건 다음 기회에 이어서 들려드리겠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피아노 대회에 정기적으로 계속 나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이제야 드네요. 뭐, 어차피 지나버린 일이니 할 수 없지만요. 무언가를 열심히 준비하고 성취하는 과정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지 간에 상당히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을 장식할 또 하나의 추억으로 승화될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