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는 그 당시의 느낌이 고스란히 남아서
살면서 음악에 흠뻑 빠져본 적이 있나요? 아마도 저는 지금 음악에 빠져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음악을 전공하거나 음악 관련 직종에 종사하고 있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매일 가요와 힙합, 클래식 음악, 찬송가, 팝송 등을 들으면서 음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요. 자연스럽게 무슨 일을 할 때면 음악을 틀어놓고 들으면서 진행하곤 합니다. 음악은 무작위로 생각나는 대로 선곡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정한 패턴이 있습니다. 아침에는 주로 어떤 음악, 점심에는 이 음악, 저녁에는 저 음악, 이런 식으로 말이죠.
그와 더불어 가끔 제 귀에 꽂히는 음악이 있습니다. 우연히 듣게 된 음악이라거나, 좋아하는 가수 혹은 연주자가 제작한 음악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 가지 혹은 몇 개의 음악에 꽂히는 날을 보내다 보면, 수없이 그 음악만을 반복하여 듣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만큼 듣고 싶은 마음이 크기에 계속 틀어놓습니다. 꼭 특정한 음악만을 정하는 게 아니더라도 일정한 트랙을 선택하여 반복하는 경우 또한 여기에 포함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복’하여 음악을 듣는다는 것이죠.
한편, 사람들은 평소에는 평범한 일을 하며 살아가지만, 간혹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을 할 때가 있습니다. 제 기억상으로는 편한 순간보다는 꽤 어렵게 무언가를 했던 순간이 더 기억에 잘 남습니다. 고되고 힘들더라도 유익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할 때 말이죠. 그와 같이 어려운 일을 하면서 자신에게 꽂히는 음악을 들으면, 음악은 저에게 상당한 위로가 됩니다. 가뜩이나 몸이 피곤하고 머리가 복잡한 상황에, 음악이 마치 한 줌의 치료제가 되는 것이죠.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안정되고 전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바쁜 와중이더라도 상관없이 말입니다.
쉽지 않은 일을 하면서 애정이 담긴 음악을 들으면 우리의 기억은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합니다. 그때, 그 당시, 그 상황, 그 순간을 그대로 머릿속에 각인해버립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인상 깊은 경험으로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지요. 두뇌는 한 사람이 체험한 모든 일을 단번에 기억해낼 수 없습니다. 일반적인 사람의 두뇌는 현재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만 생각해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기억나지 않는 일이라고 해도 그것은 우리 내부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기억의 창고에 말이죠. 그러한 기억을 꺼내서 다시금 생각나게 하는 매개체가 바로 음악입니다. 지금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음악은 기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작년 초에 군대에서 전역하고 복학하였습니다. 오래간만에 다시 대학에서 수업을 듣게 되었죠. 저는 현재 신학을 전공하면서 기독교 교육 교직이수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직의 실무적인 파트를 준비하는 강의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수업 시연이었습니다. 두 개의 강좌에서 수업 시연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들어야 할 강의가 이것뿐만 있는 게 아니라, 최대 학점인 21학점을 수강하고 있어서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게다가 그때 저는 본교 수업 1개와 타교 수업 1개를 추가적으로 청강하는 중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거나 기숙사에 사는 것도 아니었기에, 학교는 집에서 왕복 5시간 거리에 있었습니다.
아무튼, 작년에는 참 바쁘고 피곤한 나날을 보내었던 것 같습니다. 막 복학한 상태였기에 의욕이 넘쳐서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주어진 일정을 소화하기가 적지 않게 어려웠습니다. 늘 새벽까지 과제를 하거나 수업 시연 준비를 하였습니다. 고요하고 적적한 새벽에 책상에 앉아 계속 무언가를 하다 보면 지루하기도 하고 따분함과 피곤함이 동시에 찾아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주로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때 주로 들었던 음악은 ‘밤에 주로 듣는 팝송’ 등과 같은 유튜브 트랙이었습니다. 밤마다 그 팝송들을 감상하면서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그런 날이 한 주, 한 달, 한 학기가 되어가니까 이제는 해당 팝송을 듣기만 해도 작년 그 때의 경험이 생각납니다. 음악에서 들리는 소리는 제가 무엇을 했는지 기억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3일 전부터 오늘까지 저는 겨울방학에 유익한 대외활동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어떤 컨퍼런스에 참석하였습니다.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주최하는 SM-PAIR라는 컨퍼런스는 대학생들이 직접 기획하고 준비하여 개최됩니다. 전국의 대학교에서 관심 있는 대학(원)생들이 모여 참가합니다. 저는 작년에도 참가하였는데, 이번에도 다시 참가했습니다. 그만큼 의미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컨퍼런스는 2박 3일간 진행되었는데, 그 기간에는 팀별로 특정한 프로젝트를 완성해야 했습니다. 시간이 촉박하였기에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준비하기도 했죠.
컨퍼런스가 진행되는 3일 동안 제 가슴 속에 꽂힌 피아노곡이 한 곡 있었습니다. 유튜브에서 어떤 연주자의 녹화된 실황 공연을 듣던 중에 강하게 인상을 받았습니다. 들리는 선율이 너무 아름다워 자세한 곡의 정보를 찾아보았습니다. 그 곡의 이름은 쇼팽 발라드 4번(Chopin Ballade in F minor Op. 52)이었습니다. 곡을 찾고 나서 3일 내내 저는 그 곡만 거의 감상하였던 것 같습니다. 팀별 과제를 수행할 때나, 밥을 먹을 때나, 간식을 먹을 때나, 컨퍼런스 전후로 계속 들었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컨퍼런스가 끝나서 직접 연주해보기도 했습니다. 도입부만 연주했는데도, 전율이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저는 그 곡을 듣고 있습니다.
컨퍼런스가 진행되는 기간에 한 곡만 계속 들으니까, 이제 쇼팽 발라드 4번을 들을 때면 저절로 컨퍼런스 때의 경험이 생각납니다. 프로젝트와 발표를 준비했던 일들, 컨퍼런스에서 강연을 들었던 일들, 함께 했던 조원들과 같이 있었던 (비록 온라인상으로지만) 시간, 혼자서 제가 맡은 분량의 작업을 밤늦게까지 했던 일들 그 모두가 말입니다. 머지않아 저는 컨퍼런스에서 있었던 일들을 잊고 살아갈 것입니다. 새로운 과업들을 수행하면서 기억은 점점 희미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음악은, 소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쇼팽 발라드 4번을 들을 때면 다시금 엊그제 경험한 컨퍼런스가 떠오를 것이기 때문이지요.
소리는 기억을 타고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드나듭니다. 그 한가운데에는 음악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께 권하고 싶습니다. 음악의 세계에서 함께 신나는 여행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