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요즘 겨울방학을 맞이하여 저는 피아노와 관련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수십 년간 피아노를 쳐온 피아니스트가 저술한 책을 읽을 때면 피아노에 대한 저의 사유가 더욱 깊어짐을 몸소 느낍니다. 피아니스트가 오랫동안 직접 피아노를 치면서, 또 수많은 연습생을 가르치면서 쌓인 경험이 녹아든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연습 방법이나 레슨상 주의점들뿐만 아니라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 어떠한 마음가짐과 정신을 가져야 하는지까지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권의 책을 다 읽으니까 마치 상당한 기간 동안 개인레슨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내로라하는 음대 교수님 혹은 피아니스트에게 말입니다.
군대를 전역한 이후인 작년 초부터 저는 하루에 약 30분 정도 피아노를 치곤 합니다. 이 시간만큼은 제가 마음을 놓고 편히 즐기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피아노를 친다고 해서 피아노 학원에 다닌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집에서 혼자 치고 있을 뿐이죠. 그래서 제게는 한 가지 약점(?)이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피아노 실력이 전혀 늘지 않을 수도, 아니면 오히려 나쁜 습관을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옆에서 코치해주는 선생님이 따로 없기에 그렇습니다.
허나, 요즘에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배우려는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저처럼 피아노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배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유튜브 동영상을 활용해도 좋습니다. 코로나19 탓인지는 몰라도 최근에 다양한 피아니스트들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였습니다. 누구는 피아노 연주를 올리는가 하면, 누구는 레슨용 영상을 직접 촬영해서 올리기도 합니다. 어떤 피아니스트는 추첨을 통해 레슨생을 무료로 선발하기도 하더군요. 외출하거나 강습료를 내지 않더라도 배우려는 의지가 있다면 길은 열려 있습니다.
저는 평소에는 조용한 편에 속합니다. 그러나 무언가를 배움에 있어서는 꽤나 적극적으로 행동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적극적인 태도는 학습에 매우 큰 도움이 됩니다. 제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저의 꿈은 목회자였습니다. 교회에서 설교하며,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하는 그런 사람 말이죠. 교회에서 직업을 갖기로 마음을 먹었으므로, 저는 최대한 여러 교회를 경험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3년 내내 저는 교회를 동시에 4곳을 다녔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여기 가고, 또 한 번은 저기 가고, 몇 번은 원래 다니던 곳으로 가고, 이런 식으로 말이죠. 여러 군데를 다니느라 시간과 노력이 들긴 하였으나, 확실히 제 목회적 지평이 넓어짐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 목사님을 보면서 각각의 장점을 배우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대학교에 진학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저는 목회자보다는 연구자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물론 대학에서 교편을 잡는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구요. 학문에 전념해야겠다고 생각한 저는 더 이상 주어진 커리큘럼대로만 공부할 수가 없었습니다. 커리큘럼은 기본 중에 기본일 뿐이고, 혼자 공부할 거리를 계속 찾았습니다. 그렇게 본교에서 청강을 하였고, 타교에서도 청강을 했습니다. 필요하다면 MOOC 등과 같은 오픈 코스를 수강하기도 했습니다. 책이나 유튜브는 말할 것도 없고요. 다양한 경로를 통해 학업을 이어가니까 훨씬 시너지 효과가 나면서 탄력이 붙었습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제가 피아노를 배웠을 당시에는 그렇게 적극적이지 못했습니다. 단지 피아노 선생님이 치라는 곡을 칠 뿐이었습니다. 피아노를 전공하려고 결심했을 때도 그리 능동적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용기가 없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진정 좋아하는 곡을 치겠다, 그 곡으로 콩쿠르에 나가겠다고 선생님께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었는데…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크게 흥미를 느끼지 않는 곡을 수개월씩 연습하기도 했죠. 피아노 선생님은 좋은 분이셨기에, 제가 소화하고 싶다는 곡을 얼마든지 가르쳐주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피아노를 전공하겠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렸을 때, 어머니께서는 개인 레슨을 구해주시면서 제게 한 권의 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책의 이름은 <젊은 피아니스트에게 보내는 편지>였습니다. 프랑스의 어떤 저명한 피아니스트가 저술한 책이었습니다. 책의 내용이 모두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피아노를 배우면서 상당한 도움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끝이었습니다. 제가 그 이외의 책을 좀 더 탐독하려고 했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이처럼 피아노를 배우면서 충분히 적극적이지 못했던 나날이 지금 생각해보면 아쉽기만 합니다. 더 적극적으로 배우고자 했다면 훨씬 재미있고 신나게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었을 듯싶습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피아노를 배우고 싶으시다면, 아니, 피아노가 아니라 다른 뭔가를 배우고자 하신다면,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최대한 적극적으로 배우시라고 말입니다. 그게 여러분이 배우려고 하시는 것을 익히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배움의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위하여 온갖 방법을 찾는다면 세상에 배우지 못할 건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더 즐겁게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준봉아, 듣고 있니?)
학생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만 성장합니다. 저는 이 사실을 그때는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