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초를 만나지 않는 선박이란 없다
저는 한때 피아노를 전공하려고 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아마 중학생 때까지로 기억합니다. 어렸을 적부터 피아노를 쳐왔지만 별로 흥미를 느끼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피아노를 배우는 중에 어느 날 갑자기 피아노가 재미있어졌습니다. 피아노를 치는 것이라면 직업으로 삼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바로 피아노 학원에 가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억지로 갔다면 이제는 피아노를 치는 시간이 기다려졌습니다. 그동안 한 시간 간신히 채우고 연습실을 나왔다면, 이후에는 2~3시간이 흘러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공하려고 결심했던 나날은 그리 길지 못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도중에 꿈이 바뀌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공하려고 결심한 후로 제가 경험했던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담감’입니다. 피아노를 치는 게 흥미로웠지만, 그에 못지않은 부담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피아니스트로 저의 진로를 정한다면, 피아노 실력이 곧 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지표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앞선 글에서 단일한 지표로 인간이 규정될 수는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피아니스트에게는 단연코 피아노 실력이 그 사람의 전문성을 나타내지 않겠습니까? 즉, 피아니스트를 꿈꾸었던 제게 피아노 연습은 즐거움인 동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연습을 4~5시간 해봐도 실력이 향상되는 느낌이 들지 않을 때면 절망감이 몰려왔습니다. 손이 제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거나, 미스터치가 작렬(?)하는 날에는 피아노 치기가 무척 싫어졌습니다. 하루는 피아노 대회를 준비하던 중에 슬럼프가 오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그게 슬럼프인지 몰랐는데, 저를 지도해주시던 학원 선생님께서 이렇게 이야기하시더군요. “내 생각에 너는 지금 슬럼프에 빠져 있는 것 같다.”고 말입니다. 물론 그도 그럴 것이 피아노 대회가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연주곡 악보의 일부분을 까먹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연습이고 뭐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순간도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저만 체험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며 무엇보다도 그 일을 직업으로 삼으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겪어봐야만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와 같은 난관과 부담감을 처절하게 겪으면서, 그것을 이겨내고자 발버둥을 치는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성장의 단초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을 피아노를 전공하려고 결정하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전에는 치기가 싫으면 단지 다른 곡으로 바꿔 치거나, 연습실 문을 열고 나오면 되었습니다.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전공한다는 건 제 실력에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게 곧 밥벌이 수단이 될 터인데 어떻게 하기 싫다고 외면하겠습니까?
취미는 잘 치든 못 치든 상관없이 내가 좋으면 다입니다. 못 친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으며, 잘 치면 그 나름대로 만족하면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전공하는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전공은 못 치면 곧 도태와 다를 바가 없게 됩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봐도, 최선을 다하더라도 실수를 하거나 못 치는 날이 있을 순 있습니다. 하지만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피아노 전공자가 연습을 포기한다는 것은 최전방 GOP에서 복무하는 군인이 총 안 잡겠다는 말과 비슷합니다. ‘하기 싫을 때’가 오더라도 계속 해야만 하느냐, 그렇지 않아도 되느냐가 바로 전공과 취미를 구분합니다.
전공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을 프로라고 한다면, 취미로 피아노를 치는 사람은 아마추어일 것입니다. 전공자에게는 지위와 실력에 걸맞은 역경과 고뇌의 시간이 부과됩니다. 그런데 저는 요즘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취미로 피아노를 배우려는 사람에게도 인내의 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그가 일정한 난이도 이상의 곡을 연주하고자 한다면 말입니다. 즉, 아마추어도 어떤 곡을 쳐보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노력의 정도가 전공자에게는 비할 수준이 못 되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는 의미죠.
이렇게 따지고 보니, 어려움이 존재하지 않는 일은 어디에도 없다는 공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배(ship)가 어디론가 향해 가기 위해서는 물에 둥둥 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둥둥 떠서 어디를 가려고 하면 필연적으로 파도나 암초와 같은 난관을 만나게 됩니다. 배가 떠 있는 곳이 광활한 바다냐(=전공)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냐(=취미)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어려움을 잘 헤쳐나가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한다면 우리는 자아실현과 성취감을 맛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싫어서 물에 떠 있지 않고, 그저 부두를 떠나지 않고 있다면 어떨까요? 뭐, 늘상 그 자리에 있겠죠.
그렇습니다. 암초를 만나지 않는 선박이란 없습니다. 전공이든 취미이든 가릴 것 없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