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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걸 또 치라고?

뿌리 깊은 나무는 가뭄을 타지 않는다

by 이준봉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바이엘을 모두 떼고, 제가 피아노 학원에 가서 가장 먼저 받은 책은 바로 하농(Hanon)이라는 연습 교본이었습니다. 하농은 피아노 연습곡에서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책입니다. 아마 피아노를 배우는 거의 모든 사람이 한 번쯤은 쳐봤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어렸을 때 피아노 학원에 가면 이 책을 연주하는 소리가 제일 많이 들렸습니다. 그만큼 학원 선생님들이 중요시하였던 연습곡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 역시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동안 거의 빠지지 않고 날마다 연주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농은 피아노 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매우 단조로운 곡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동일한 멜로디와 마디가 계속 반복되기 때문이죠. 마치 성악을 하는 사람이 목을 풀 때 내는 소리 있지 않습니까? “도레미파솔파미레도~”처럼 말이죠. 곡의 모든 부분이 온통 이런 형식으로 되어 있기에 연주자는 금세 흥미를 잃고 맙니다. 즉, 피아노를 치는 사람에게는 하농이 바로 손을 푸는 과정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그래도 책의 초반 부분은 쉬워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중반 이후 넘어가면 어렵기까지 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곡은 되게 재미없고, 어렵기까지 하니까 연주 기피 대상 1위는 언제나 하농이 차지했습니다. 또한, 하농은 총 60개의 곡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적지 않은 분량이죠. 그런데 선생님들이 이것을 어떻게 연습시키느냐? 일반적으로 악보 그대로 연달아 연주하는 ‘스케일(scale)’로만 친다면 좋겠는데, 선생님들은 여러 버전(version)으로 우리를 연습시켰습니다. 대표적으로 부점(음표의 원래 길이보다 절반만큼 늘려 치는 방법, 흔히 앞부점과 뒤부점으로 나누어 부르기도 합니다)이나 스타카토(한 음씩 짧게 끊어 연주하는 방법)가 있지요.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한 곡을 연습하다 보면, 진도는 저절로 느리게 나갈 수밖에 없었죠.


옛날에 피아노 학원에서 연습할 때에는 약 4~5권 정도를 번갈아 돌려가며 연습하곤 했습니다. 체르니, 부르크뮐러, 소곡집 등 이렇게 함께 말이죠. 그때마다 가장 연습하기 싫었던 책이 바로 하농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하농은 몇 번 치지 않고 넘어가려고 했습니다. 한 시간을 연습한다고 하면 약 10분 정도 쳤을까요? 그것마저도 아주 가끔씩은 졸면서(?!) 칠 때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하농은 제게 따분하고 매력 없는 연습곡이었습니다. 그렇게 연습을 이어간 지가 몇 년 흐른 후에 약 4~5학년 정도 되었던 날이었을까요?


드디어 하농의 끝 번호에 도달했습니다! 마지막 곡을 레슨 받았던 그때, 저는 상당한 감격을 느꼈습니다. 이제야 지긋지긋한 하농을 제 피아노 인생에서 벗어던질 수 있었으니까요. 이토록 무미건조한 피아노곡은 다시 치고 싶지 않았기에, 커다란 해방감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60번 곡의 레슨이 끝나고, 선생님이 “통과”라는 사인을 주시니까 저의 가슴도 덩달아 뛰었습니다. ‘아, 이제 끝났구나!’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그 감격은 결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응? 다 나갔네??” 하시면서 하농 교본을 다시 여러 번 훑어 보셨습니다. 그러더니, 21번을 피시면서 “이제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입니까?



그렇게 저는 빠져나올 수 없는 하농의 늪에서 다시 허우적대기 시작하였습니다. 제 피아노 사전에는 ‘하농이 없는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담담하게 말해도 그때는 정말 절망스러웠습니다. 돌이켜보니 제가 한때 피아노를 전공하겠다고 결심한 날까지 저는 계속 하농을 쳤었습니다. 하농이 아니었다면, 피쉬나 연습곡 등으로 대체하면서 말이죠. 이러한 곡들은 모두 기계적이며 반복적인 연습 구간이 나온다는 특징을 갖습니다. 결국, 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피아노 앞에 앉는다면 반드시 일정 시간 하농을 연습해야만 다른 곡을 칠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농을 많이 쳐야만 했다는 건 그만큼 하농이 중요하다는 사실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손가락의 힘을 골고루 기르고, 자유자재로 손가락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 하농은 연주자에게 필요한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모든 피아노 선생님들이 강조했다면,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요즘에 저는 다시 피아노를 치고 있습니다. 옛날에 연주했던 곡을 위주로 다시 치고 있지요. 그런데 느끼는 점은 손가락이 예전처럼 잘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연습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않는 까닭도 있지만, 하농과 같은 기초적인 연습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조금은 듭니다. 뿌리 깊은 나무가 가뭄에 잘 들지 않는다면, 하농은 피아노 연주자의 뿌리를 더욱 강하게 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듯합니다.


Charles-Louis Hanon (1819 –1900)


그렇다고 하농을 다시 연습할 계획은 없습니다. 피아노를 취미로 연주하는 제게 하농은 별로 큰 의미를 갖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아마추어 연주회 같은 곳에 나간다면 모를까, 지금은 솔직히 안 치고 싶습니다. 하하; 이 글을 쓰는 지금, 저는 유튜브로 하농 연주를 듣고 있습니다. 그래도 하농에 관한 글을 쓰는데, 관련한 음악을 들어야 하지 않겠냐는 마음으로요. 오, 그런데 반복되는 음이 너무 많습니다! 계속 듣고 있으니까 머리가 조금 아플 것 같습니다. 빨리 하농이 연주되는 유튜브 창을 닫고, 다른 연주를 들으러 가고 싶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농의 저주(?)일까요. 듣는 것조차 이러한데, 매일 같이 연습했던 시절은 얼마나 더하였겠습니까?


인생을 살다 보면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해야만 할 때가 오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묵묵하고 꾸준히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회피하려고만 하는 사람이 있죠. 하농이 주는 교훈이 있다면, 지루하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을 끝까지 계속한 사람에게는 선물이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공부를 할 때도, 기술을 익힐 때에도, 언어를 배울 때에도, 인내하며 꾸준히 하는 사람을 당해낼 자는 없을 것입니다. 비록 그 과정이 무진장 재미가 없다고 할지라도, 결과는 충분히 달콤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올지는 확실하게 장담하지 못하지만, 고생이 없다면 낙은 찾기 힘들 것입니다. (아,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요)


하농 연습곡의 원래 곡 제목은 《명피아니스트가 되는 60 연습곡》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을 ‘명OOOOO’이 되게 하는 지겨움, 역경, 그 저주의 늪(?)은 무엇인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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