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것에는 애틋함이 깃들어
혹시 라디오 방송을 자주 들으시나요? 저는 라디오를 그리 즐겨듣는 편은 아닙니다. 제가 선택해서 라디오를 들었던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네요. 버스를 타거나 택시에 탔을 때 흘러나오는 라디오 방송을 우연히 들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가끔 라디오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올 때가 있었는데요. 또, 그 음악이 정말 내 취향일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럴 때 어떤 기분이 들으셨나요? 저는 그렇게 좋은 음악이 나오면 가장 먼저 ‘이 곡의 이름이 무엇이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 말고도 내가 원하는 다른 때에도 얼마든지 듣기 위해서 그런 질문이 떠올랐던 것이죠.
하지만 곡의 이름을 정확하게 찾아낸 적은 많지 않았습니다. 음악을 듣는 도중에 중간에 하차하거나, 라디오 진행자의 곡 소개가 지나간 이후에 듣게 된 까닭이었지요. 들려오는 음악이 좋은데 곡의 정보를 딱히 찾을 방법이 없을 때는 아쉬움이 밀려옵니다. 옆에 있는 모르는 사람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 진짜 내 취향을 저격한 음악이 나왔다면 얼른 핸드폰을 꺼내기도 했습니다. 요즘에는 인공지능을 통해 소리를 입력하면, 그에 해당하는 곡의 정보가 나오니까요. 그런데 이마저도 음량이 작거나, 다른 잡음으로 인해 인식되지 않으면 그 곡을 찾을 방도는 사라져버립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하면 저는 왠지 모를 애틋함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 음악을 또 들을 기회가 평생 다시 올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곡의 이름이라도 알고 있으면, 얼마든지 반복해서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들려오는 음악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으면 들을 수가 없지요. 또 언제 듣게 될지도 모를 테고요. 때로는 ‘이 곡과의 영원한 이별은 아닐까?’라는 유치한 생각도 종종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여곡절 끝에 곡의 이름이나 음악에 대한 정보를 찾게 되면 안도감이 밀려옵니다. ‘휴, 다행이다.’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무슨 잃어버린 보물이라도 찾은 것처럼 말이죠.
피아노곡 중에서도 제가 그토록 알고 싶었던 곡이 있었습니다. 멜로디는 기억이 나지만 이 음악이 어느 악보에 나왔고, 이름이 뭐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있었죠. 이걸 누구에게 입으로 소리 내어 알려줄 수도 없고, 혼자서만 끙끙 생각하다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아서 포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피아노 학원에 다니면, 다른 원생들이 연습하는 곡조들이 옆방에서 다 들립니다. 그렇게 듣다 보면 좋은 음악도 자주 들렸습니다. 저 음악의 이름을 알고 싶은데, 직접 옆방에 들어가서 물어보기는 부끄럽고 해서 그냥 넘겼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곡은 유독 인상 깊게 들었는지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았습니다. 꼭 찾아내고 싶었습니다.
결국, 저는 그 곡을 찾아내었습니다! 찾고 싶다는 마음이 들고 조금 시간이 지난 뒤였습니다. 그때가 아마 소나티네 교본을 자유롭게 칠 수 있게 되면서 책을 떼는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초등학생 2~3학년 정도 되었겠지요. 심심해서 소나티네 교본을 차례대로 연주하고 있던 순간이었습니다. 어디선가 익숙한 선율이 제 귀에 들렸습니다. 바로 예전에 제가 찾고 찾았던 그 곡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곡의 제목은 Clementi Sonatina(클레멘티 소나티네) Op. 36, No. 1의 3악장 Vivace였습니다. 그때 이 곡을 찾은 다음에 몇 번이고 계속 연주했습니다. 그만큼 반가웠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곡을 발견했을 당시에만 아주 좋았지, 몇 번 연주를 반복하니까 이내 흥미를 잃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이 곡이 떠올라서 오래간만에 다시 연주해보았습니다. 물론 아름다운 선율이 참 좋았지만, 예전에 느꼈던 흥분은 다시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목도하면서 저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은 ‘미지의 것’에 무언의 동경심과 애틋함을 느낀다는 점입니다. 모르면 모를수록 알고 싶은 마음이 커지지만, 그것을 다 알고 난다면 이내 흥미를 잃어버리고 만다는 것이죠. 마치 택배 상자 뜯을 때와 똑같이 말입니다.
그렇다고 정말 찾고 싶은 음악을 포기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인생에 한 획을 그을만한 곡조를 발견한다면 마땅히 찾아야만 합니다. 하지만 애써 생각해보고 갖은 수를 썼는데도, 그 곡의 이름을 찾지 못하였다면 너무 상심하지는 않아도 괜찮습니다. 미지의 것은 모르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나중에 찾았을 때의 기쁨이 배가 되기 때문이죠. 그리고 설사 찾더라도 지금만 좋을 뿐, 이내 흥미를 잃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니까요. 뭐, 아무렴 어떻습니까.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 설레는 음악이 많이 있는데요.
혹시 기억해내고 싶은 선율이 있나요? 찾으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찾지 못하신다고 하여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