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피아노 치기 싫다!

전문성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by 이준봉

요즘에 피아노를 치는 도중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피아노 치기 싫다는 마음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 누군가는 의아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피아노를 취미로 친다는 사람이 치기 싫으면 왜 쳐? 그냥 안 치면 되지.’라고 말입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저는 안 쳐도 되는 위치에 있습니다. 치든 말든 어느 누구도 개의치 않을 것입니다. 실력이 좋아도 나빠도 별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자명합니다. 취미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아마추어이기 때문입니다.


피아노에 관한 글을 연재하면서도 제가 피아노를 치기 싫어하는 까닭은 단 한 가지입니다. 그건 바로 제 수준 이상의 곡을 연주하고자 하기에 그렇습니다. 솔직히 쉬운 곡만을 친다면 그렇게 피아노 치기가 싫지는 않을 듯합니다. 초등학생들의 대표곡인 소나티네나 피아노 소곡집 혹은 쉽게 편곡된 곡들만을 친다면 왜 피아노를 연습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곡을 소화하고 표현하느냐의 문제는 차치하고, 단순히 기교적인 측면에서 저는 꽤 어렵다고 평가받는 곡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요즘 피아노 칠 때마다 드는 생각: '이거 언제 다 치나...'


피아노를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면, 어떤 곡을 들어도 ‘우와~’하겠지만, 피아노를 조금이라도 쳐본 사람들은 어떤 게 쉽고 어려운 곡인지 다 알 것입니다. 그럼 저는 이러한 마음이 듭니다. 피아노를 친다고 하는데 너무 쉬운 곡만 연습하면 왠지 밍밍하고 시시하다는 느낌이요. 당연히 연주자가 그 곡을 가지고 충분히 즐길 수 있다면 그건 OK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로망을 가졌던 적이 있지 않습니까? 화려하고 난이도가 높은 곡을 대중 앞에서 멋지게 쳐보고 싶다는 상상을 말입니다. 저 또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피아노를 취미로 치는 입장에서 그러한 수준의 곡을 탁월하게 연주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일단 연습 시간부터 턱없이 부족하지요. 대학을 다니고 있는 제가 하루에 피아노를 연습하는 시간은 평균 30분 정도, 많아야 한 시간입니다. 시험 기간이 다가오거나, 중요한 과제물이 있는 경우에는 이마저도 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더 치면 되지 않느냐고 질문하실 수도 있겠으나, 애초에 제가 피아노를 치려는 목적은 잠깐 스트레스를 풀고, 음악을 잠깐 즐긴다는 데에 있으므로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에는 부담이 갔습니다. 어쩌다 보니 이대로라면 어려운 곡은 평생 한 곡조차 제대로 치지 못할 수도 있겠네요.



한때는 저도 치고 싶지 않은 피아노를 억지로라도 의자 앉아 있으면서 연습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땐 어머니가 시켜서 친 게 아니라, 제가 자발적으로 피아노를 치겠다고 했을 때였습니다. 피아노 치는 게 정말 좋아서 연습하는 데에도 하기 싫은 날이 적지 않게 왔습니다. 한참 전공하기를 준비하였을 시절에는 주말에 텅 빈 피아노 학원에 와서, 7~8시간 연습하다가 돌아간 적도 있었습니다. 분명한 점은 피아노를 좋아한다고 해서 늘 좋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난관 앞에서, 반복되는 답답함과 괴로움 속에서 인내해야만 하는 시기가 반드시 옵니다. 대개 그런 과정을 거친 곡들이 비로소 제 것이 되더군요.


이와 똑같이, 저는 전문적인 피아니스트들조차 ‘피아노 치기 싫은 순간’을 마주하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명연주를 아무런 어려움 없이 즐겁게 감상합니다. ‘나도 저렇게 연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막연히 생각하면서요. 그러나 훌륭하고 환상적인 연주 뒤에 가려진 베일에는 그들이 끊임없이 치열하게 각고한 땀방울과 수없는 좌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단지 카메라는 그러한 것들까지 담아낼 수 없을 뿐이지요. 제가 피아노를 직접 연주함으로써 얻는 장점이 있다면, 이런 과정을 헤아리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만약 피아노를 연습해본 경험이 없었다면, 피아니스트들의 고뇌 또한 이해하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피아니스트의 빛나는 모습만이 보인다


허나, 과연 피아노만의 일이겠습니까? 아마 세상의 모든 일이 이와 비슷하겠지요. 처음 손에 잡을 때는 의욕이 넘쳐서 시작하지만, 일정한 임계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끈기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누군가가 뭔가를 잘하는 모습을 보기란 쉽지만, 직접 그것을 하기까지는 막연한 시간과 경험이 요구되고요. 앞으로 연구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영문 저널을 동화책 읽듯이 읽어야 하며, 전공 분야의 이론에 대해서는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통계 처리 프로그램이나 몇 가지 자연어도 다룰 줄 알아야 하겠지요. 인문사회과학도로서 제2외국어는 선택이 아닌 의무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고 싶다고 그냥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기 싫을 때가 오더라도 꿋꿋이 버텨내면서 끝까지 붙잡고 있어야 할까 말까이지요. 저는 피아노를 치고 싶지 않으면, 안 쳐도 됩니다. 하지만 제가 앞으로 수행할 학업을 위한 일들을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그건 미래를 포기한다는 말과도 같으니 말입니다. 그런가 하면 한 인간의 전문성이 어디에서 시작되느냐는 자명한 듯싶습니다. ‘하기 싫을 때’에도 그것을 계속하느냐, 마느냐입니다. 물론 너무 하기가 싫을 때면 잠깐 쉬어도 좋습니다. 중요한 건 잠시 휴식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이어나갈 수 있는가의 여부입니다.



여담이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글을 쓸 때는 제가 좋아하는 피아노에 관한 글인 만큼, 하고 싶은 말도 많고 쭉쭉 써 내려가는 게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열 편, 스무 편을 쓴 지금 시점으로는 그때와 마음이 조금 다릅니다. 이제는 소재도 점점 떨어져서 무슨 주제로 써야 할지도 한참을 생각합니다. 한두 편은 순전히 재미를 느끼며 썼지만, 그 이후부터는 끈기와 천착이 필요하더군요.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한 번 칼집에서 칼을 꺼냈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특별할 게 별로 없는 평범한 제가 쓰는 글을 구독해주시는 여러분을 위해서라도요.


놀라운 전문성과 위대한 업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나비도 한때는 애벌레와 번데기로 오래 기다렸듯이 말입니다. 내일 저는 다시 피아노를 연습하러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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