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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Nov 18. 2020

못된 동료가 어느 날 갑자기 잘해주기 시작했다

'건강하고 행복한' 부부라면 아이가 반드시 있어야 하나요

P과장은 사무실에서 아무도 못 건드리는 사이코였다. 창백한 얼굴에 다소 느린 말투, 막말과 신경질을 오가는 안하무인의 태도에다 몇 명의 직원을 울리고 퇴사시켰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있었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내에서도 악명 높은 P과장은 공교롭게도 우리 팀이었고, 심지어 내 옆자리였다.


P과장을 위시해 팀원의 90%가 결혼하지 않고 있던 그 팀에서, 나는 유일한 기혼자였다. P과장은 가끔 나를 보며 「넌 결혼도 했고 남편도 있고, 좋겠네? 잘 나가니까 일 좀 더 해라」 「내가 결혼 안 했다고 루저라고 생각하지 마」 라며 이해할 수 없는 적의를 불태우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항상 생리통에 시달리던 내가 그 날 따라 극심한 고통에 병원에 가 봐야겠다고 조퇴를 신청하자 P과장은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신경질적으로 「왜? 대체 어디가 아프다고 난리야?」 라며 팔짱을 끼고 나를 째려보았다.


생리통이라는 말을 하기가 조금 민망했던 나는 「아, 제가 부인과 쪽이 좀 안 좋아서, 병원 가서 주사 좀 맞으려고요」 라고 대답했다. 그 때 P과장의 표정이 크게 변했다. 내가 딩크라는 걸 알고 있었던 P과장의 머릿 속 회로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한 것을 나는 느꼈다. 다만, 그 때 그녀가 한 생각에 대해서는 한참 후, 그녀의 퇴사 전에야 알 수 있었다.


그래, 얘가 알고 보니 불임 혹은 난임이라서 딩크라고 거짓말한 거구나


복잡하고도 미묘한 표정이 P과장의 얼굴에 번졌고, 「어머어머, 어떡해! 나는 전혀 몰랐네. 그거 정말 힘들다던데, 얼른 가봐!」 라고 소리치며 그녀는 전에 없이 나의 병원행을 수월하게 허락해 주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P과장은 우리 팀의 몇몇에게 「OO가 정말 힘들어. 이유를 말해줄 순 없지만, 많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거야. 너희들도 잘 해줘」 라는 미스테리한 조언을 반복했다고 한다. 팀원들은 대체 내게 무슨 큰 일이 있는 건지 물어오기도 했으나, 나는 대답해 줄 말이 없었다.


뜬금 없는 인간미의 발산과 더불어, 급작스럽고도 부자연스럽게 내게 친절해진 P과장은 때때로 나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녀는 얼마 안 되어 퇴사했지만 아직도 나는 그녀가 떠나기 전 내게 마지막 남긴 말을 잊지 못한다.  


「아이가 안 생겨도 남편 믿고 살면 돼. 다들 그렇게 산대. 더 힘든 사람도 많아.」

...아, 네에..


뭐라 말한다고 해서 그 짧은 사이에 P과장의 믿음과 의견을 바꿀 순 없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지레짐작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소문을 낸다거나 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P과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아이를 낳지 않고 살고 있다고 하면, 생각보다 많이 받는 질문이 '불임 혹은 난임'에 대한 것이다. P과장의 경우는 일방적 오해를 한 케이스지만, 실제 많은 경우에는 그냥 물어 오기도 한다.


「병원의 도움을 받거나 하는 거니?」 혹은 조금 돌려 말한다면  「병원 가 봤어?」  가까운 사이라면 「너 설마 불임인 건 아니지?」 등등.


사실 이에 대해서는 나 개인적으로는 맞다, 혹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보통은 임신을 계획하면서 부부 공히 임신 전 검사를 받거나 하는데, 우리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기에 정식으로 검사를 받지도 않았고, 그래서 '큰 문제 없이 임신이 가능한 신체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라는 100% 확신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다만 저 현실적이고도 무례한 질문은 두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하나는, 저 질문이 '임신이 가능하다면 누구나 아이를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부부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아이를 가지려고 할 텐데 저들은 그렇지 않다 → 그러므로 뭔가 문제가 있을 것이다 → 일단 부부 사이는 좋아 보인다 → 역시 신체적 문제? 라는 사고의 테크로 보인다.


그러나 사이가 좋고 충분히 행복한 부부라고 해서 아이를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왜 딩크를 택한 거죠? 에서 쓴 적이 있다. 결국 아이를 낳는 것이 개인의 이성적 선택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이다. 


또 하나는, 만약 내가 정말로 그 이유로 인해 딩크를 택한 부부라면, 분명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저런 질문은 보통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를 전제로 깔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는 경우가 많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요즘의 난임/불임 부부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난임부부에 대한 시술 지원도 차츰 확대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딩크 상태에 대한 많은 질문들에 보통 농담을 섞어 웃으며 대답하는 편이지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정색하고 대답하곤 한다. 「내가 정말 그러면 어쩌려고 그런 질문을 하시나요」 

그러면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허둥지둥 자신의 질문을 거두어 들이지만, 「그렇다면 내가 아는 용한 의사가 있다」 혹은 더 분노할 만한 대응으로  「살을 빼면 임신이 잘 된다더라(...!)」 며 다른 방향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는 분들도 있긴 하다. 여러모로 무적이다




개인이 선택을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살면서 많은 선택을 했고, 지금의 삶은 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조건이 만족되었다고 해서 (= 건강하고 금슬이 좋은 부부) 반드시 어떤 특정한 선택 (= 결혼하고 자녀를 낳는 것) 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바는 없지만, 이렇게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다들 서로 조심했으면 하는 게 요즘의 솔직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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