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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uie Nov 05. 2020

누가 집 앞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다

내 이웃에 사는 비양심자들의 존재에 관하여

까칠해 보이는 외양과 다르게, 나는 그리 까다롭게 구는 성격은 아니다. 본질적으로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의 태도로 살아왔기에 강하게 불만을 표현하거나 항의하거나, 화를 내는 일이 별로 없는 편이다. 많은 까다로운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를 극분노하게 한 일이 발생했으니, 바로 불법 쓰레기 투척이었다. 단독주택 생활자의 명을 단축시키는 요소는 집짓기 자체도 있지만, 생활하면서 겪는 문제들 중에는 단연 주차난과 불법 쓰레기를 꼽는다.


차와 사람이 다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지 않은 도로를 끼고 있는 집이기에 우리 집 앞으로는 꽤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지나가다가 다 태운 담배 꽁초나 생활 쓰레기를 툭툭 버리고 가는 것, 다 마신 아메리카노 컵을 슬쩍 담벼락 앞에 두고 가는 것은 사실 애교 수준으로, 그건 뭐 그럴 수도 있다.


다만 의도적으로 투척된, 집 대문 앞에 얌전하게 놓인 쓰레기 봉투를 보면 '피꺼솟'이 뭔지를 깨닫게 해 주기 위해 일부러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범죄학 교수가 '깨진 창문 이론'에서도 시사한 바 있지만, 쓰레기가 버려져 있는 곳에 사람들은 별 가책 없이 쓰레기를 또 버리기 마련이다. 한 번 쓰레기가 방치되어 있으면 쌓이는 건 순식간이다.




불법 쓰레기의 종류도 다양하다. 가장 처음 겪은 것은 검은 봉지에 담겨 버려진 음식물 쓰레기. 최초라 타격이 컸다. 우리가 이사 온 후 첫 눈이 내릴 즈음의 어느 아침, 대문을 열던 우리는 대문 앞에 놓인 수상한 검은 봉지를 발견했다. 무언가 싶어 안을 보니 - 이런, 인간에 대한 회의감을 느낀 순간이다. 추운 날씨라서 내용물이 얼어 있었던 것이 그나마 좋은 점이었달까?


정신적 충격에 시달리던 우리는 눈 위에 쌓인 발자국을 추적하여 범인이 온 방향을 유추해 보았다. 그런데 이건 셜록 홈즈 시절에나 가능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다만, 지난 밤 늦게까지 이 봉지를 본 적이 없으니, 아마도 범인은 밤과 아침 사이에 이 곳에 왔을 것이다!


그 다음에 취한 방법은 우리 집 앞에 정기적으로 주차하는 분께 연락을 취하여 '혹시 아침 나절에 오셨을 때 이 봉지를 목격하셨냐'라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4시 반인가 갔을 때 그 봉지를 보고 무슨 쓰레기를 저렇게 내놨나 싶었는데 집 주인들이 한 게 아니었나 보네요' 라는 대답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블랙박스는 주차했을 때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범인은 새벽에 여기 와서 이 봉지를 버렸다! 우와, 징하다.


서울스마트불편신고 어플. 왠지 웃고 있다.


독이 오른 우리는 민원의 문을 두드렸다. 살다가 민원을 넣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민원이라기보다는 서울스마트불편신고를 활용한 신고였는데, 1차적으로 근처의 CCTV를 확인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러나 온 사방에 깔려 있는 것처럼 보였던 CCTV는 공교롭게도 우리 집 다음 블록에 설치되어 있었고, 우리 집 대문 앞을 촬영 가능한 CCTV 위치는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범인을 찾기는 어렵겠고, 일단 불법 쓰레기를 치워 주세요 - 라고 신고하는 수밖에 없다. 신고를 하고 난 다음 날 아침, 창 밖을 슬쩍 내다보는데 누군가가 검은 봉지를 집었다. 깔끔한 모직 코트를 차려 입고 체크무늬 짧은 머플러를 단정하게 맨 남자다.


저 사람이 설마 저 봉지를 투척했다가 양심이 찔려 수거해 가는 것은 아니겠지. 아마도 주말 아침에도 일이 있어 출근을 해야만 하는 - 그런데 빠르게 해결해 주어야 하는 불법 쓰레기 민원 접수를 인계받은 - 공무원이실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같은 직장인으로서 맘이 아팠다.




쓰레기에 관한 쓰레기같은 사연은 그 뒤로도 계속 이어졌다. 음식물 쓰레기 사건의 충격을 회복할 때쯤, 봄이 왔다. 그 다음에는 개똥이라기에는 너무 크고 사람 똥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은 똥 봉지 투척 사건이다.


동네에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봄이 오자 동네를 산책하는 강아지들이 많이 보였다. 그러면서 곳곳에 구청에서 붙인 '반려견 에티켓' 스티커도 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은 우리와는 상관 없는, 평화로운 나날이 흘러갔다.


그러나 그 일도 검은 봉지와 함께 왔다. 트라우마 생길 지경이다. 어느 날 대문과 담벼락 사이 구석진 공간에 수줍게 놓여진 봉지를 여는 순간 Y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똥이야! 설마 사람 똥을 이렇게 봉지에 담아서 남의 집 앞에 버린다는 것은 내 상식을 넘어선 일이라 아예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개똥을 처리해서 봉지에는 담았는데, 집 혹은 근처 휴지통까지 가지고 가기는 귀찮아서 여기 슬쩍 끼워둔 게 아닐까, 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귀여운 사진으로 마음을 달래 본다. 출처는 네이버 지식백과.


이 또한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하는가 고심했으나, 공포의 검은 봉지를 수거해 가시던 말끔한 코트의 남자를 떠올리자 또 불편신고를 한다는 것이 왠지 꺼려졌다. 반복되면 오히려 우리가 의심받을지도 모르고 결국 큰 결심을 한 Y가 봉지를 수거하여 일반 쓰레기 봉투에 넣어서 내놓았고, 그 날 Y는 저녁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 외에도 일반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를 섞어서 툭, 버려 두고 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리고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쓰레기를 규격 봉투에 담아 잘 처리해 놓고서는 우리 집 앞에 놓고 간 사람도 있었다. 그냥 본인 집 앞에 두면 수거해 갈 텐데, 대체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주택에 사는 것은 결국 내 집 근처의 환경 미화를 내가 책임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파트는 관리 사무소가 있고 직원이 있어 꾸준히 관리하고 대신 신경을 써 주지만, 단독주택에서는 나 아니면 아무도 내 집에 신경을 써 주지 않는다. 그래서 관리비도 안 내긴 하지만.


주택가의 경우 쓰레기 수거를 제대로 해 가지 않으면 집 현관 근처에 쌓이기 마련이고, 그 때마다 불편 접수를 하거나 수거 업체에 직접 연락해서 관리하는 것도 주택을 가진 사람이라면 하게 되는 일이다. 쓰레기 문제로 구청 담당 공무원과 직접 통화를 한 적도 있으니, 예상보다 신경이 많이 쓰이는 문제다.


그러나 비단 인간이 주는 괴로움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 '자연재해에 대처하는 단독주택의 방법'으로 이어집니다.


※ 브런치북도 읽어주시면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housein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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