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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섬세 Dec 25. 2020

색다를 수 있었던, 그래서 더 아쉬운

넷플릭스 영화 <콜>의 결말이 아쉬웠던 이유

주의: 이 글은 넷플릭스 영화 <콜>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과거에 대해 ‘만약’이라는 가정을 세우는 건 무의미하다.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걸 알아서일까, 누구나 한번쯤은 시간을 되돌려 자신의 실수 혹은 행동을 바로잡고 싶어한다. 한창 비트코인이 급등할 때 친구들과 나는 과거로 돌아가 비트코인을 사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취준이 힘들 때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수능 공부 대신 사법고시 공부를 할 거라고 후회했다. 이처럼 과거를 바꾸고 싶어하는 마음은 보통 현재에 대한 불만족으로부터 비롯되는데, 여기서의 가정은 과거가 바뀌면 나의 현재 혹은 미래가 긍정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확신에 있다.


영화 <콜>은 이처럼 누구나 가진 상상, 즉 과거와 현재를 바꾸고 싶다는 욕망이 두 여성의 전화에 의해 실현된다. 드라마 시그널처럼 통신기기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인물이 연결되는 것이다. 현재를 살고 있는 서연(박신혜)은 과거에 살고 있는 영숙(전종서)에게 미래에서 알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과거가 바뀐다. 어린 시절 사고로부터 아버지를 구해준 영숙 덕분에 행복한 현재를 얻게 된 서연은 영숙이 신어머니로부터 살해당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영숙은 목숨을 구했다.


그리고 연쇄살인마가 깨어났다.


이 영화는 과거를 바꾸는 것이 가져올 수 있는 끔찍한 파장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는 과거의 변화가 현재의 행복을 담보한다고 막연히 상상하지만, 이 영화는 그 꿈을 무참히 비튼다. 과거와 현재가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달라지는 사건의 양상은 영화에 속도감을 더해준다. 전반적인 서사가 여성에 의해 주도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현재를 사는 서연과 과거를 사는 영숙, 그리고 마지막에 사건 해결의 열쇠를 제공하는 서연의 엄마(김성령)까지 극의 굵직한 흐름에서 모두 여성이 활약한다. 특정 성별이 도드라진다고 해서 영화의 줄거리가 더욱 빛난다고 단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큰 영화사의 흐름에서 여성 배우들의 입지가 과거에 비해 확대되고 있으며, 특히 스릴러라는 장르에서 여성 중심의 서사는 신선한 시도이기에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다만 잔인하고 충동적인 영숙에 비해 서연의 캐릭터가 약한 점은 아쉽다. 현재에 살고 있는 서연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사고를 이용해 영숙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시도를 하지만, 이외에는 다소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서연이 더 똑똑하고 능동적이며, 시간의 차이를 다른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면 극이 더욱 흥미롭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서연의 캐릭터의 한계 때문이었을까, 영숙의 살인을 저지하고 사건을 일단락하는 주체가 서연의 엄마로 상정된 점도 아쉽다. 영화에서 서연의 엄마는 어린 서연을 구하기 위해 초인적인 모성의 힘을 발휘한다. 영숙 덕분에 엄마에 대해 갖고 있던 오해가 풀린 서연은 엄마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영화의 결말은 갑자기 가족애로 흘러간다. 극의 마무리까지 주체적인 여성을 보여주려고 했던 의도와는 다르게 모성에 기대는 이런 방식은 전형적이고 진부하다. 긴장의 균형을 깨뜨리는 이러한 결말이 나에겐 맥빠지게 다가왔다.


출처: 넷플릭스 (Netf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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