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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즈에서 리옹으로] 1박 2일 Only Lyon

깁스하고 떠난 40일간의 산티아고 순례

"인생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리는 게 아니라 그 목적지가 '죽음'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그곳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면서 '지금, 여기'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나'와 '내 주변의 모든 것', 그 존재 자체를 즐기는 과정인 것 같아. 앞으로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로 가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아니 이런 것들은 또 멍청하게 걸어봐야 알게 되겠지만 말야. 힘들 땐 지금처럼 잠깐 멈출 수 있는 용기를 여전히 가지고 있길. 그리고 잠시 멈춘 곳에서 주저앉지 않길."[2019.4.13]

이제 또다시 떠나야 하는 때가 왔다. 아침 7시, 숙소 식당에 들러 바나나와 쿠키, 크로와상 하나를 챙겨서 바로 툴루즈 역으로 향했다. 역 뒤편으로 해가 올라오고 있었고 역 앞은 여전히 공사 중이었다.  

툴루즈서 리옹으로

어느새 집 떠나온 지 13일 차, 짐을 풀고 싸고, 이동하는 일들도 차츰 익숙해져 갔다. 역에 빠듯하게 도착해서 달리다시피 기차에 몸을 실어도 괜찮았다. 새 모양의 구름, 노란 꽃들, 오래된 성, 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에 감사했다. 툴루즈 역에서 '리옹 중앙역(Gare de Lyon-Perrache)'까지는 테제베(TGV)로 4시간 정도 걸렸다.

리옹 가는 TGV에서 본 풍경

숙소에 도착했지만 아직 체크인까지는 시간이 남아서 큰 배낭만 맡기고 중심가로 향했다. 내일 아침 바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해지기 전까지가 리옹에서 내게 허락된 유일한 시간이었다. 


| 리옹(Lyon)과 '갑.분.난민'

걀리에니 다리에서 본 론강
리옹은 알프스 산맥에서 흘러나오는 '론(Rhone)강'과 프랑스 북동부의 평야지대로 연결되는 '손(Saone)강'의 합류점에 있는 도시로 예부터 교통, 상업,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파리, 마르세유와 함께 프랑스 3대 도시로 불리며, 리옹 광역시 인구는 파리 다음으로 많다. 기원전 43년 로마인에 의해 탄생한 리옹, 특히  2천 년 이상 도시가 지속되고 있는 옛 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있다.

숙소가 있는 'Lyon-Perrache역' 쪽에서 중심지인 '벨쿠르 광장(Place Bellecour)'과 역사지구 쪽으로 가려면 고속도로 크기의 큰 도로를 지나야 했다. 그런데 횡단보도는 보이지 않고 지하도가 눈에 띄었다.


구글맵을 검색하며 길을 찾는데 분위기가 영 이상했다. 대낮인데도 길에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지하도로 이어지는 벽에는 그라피티로 알 수 없는 말들이 적혀있고 안쪽은 동굴처럼 어두워 보이지 않았다. 가끔 전동 킥보드나 자전거를 탄 학생들이 빠르게 지나갈 뿐이었다. 한참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을 동동거리며 있는데 나와 비슷해 보이는 사람이 나타났다.

미국에서 출장 왔다는 어떤 아저씨였다. 건너편의 리옹대학 쪽으로 가는 길을 찾고 있었다. '함께 지하도 건너기'에 도전하게 되었다. 조명이 깨져있어 낮에도 어둑어둑한 지하도 안쪽에는 여러 개의 텐트가 줄지어 있었다. 빠르게 지하도를 빠져나오니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텐트들과 텐트 줄에 걸린 빨래들, 오랫동안 못 씻은 것 같은 차림으로 잔디에 앉아 젖을 물리고 있는 엄마와 아이, 난민들이었다.  


유럽에 난민 문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는 뉴스에서 종종 들었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목격하니 남의 일이 아니라 내 문제가 됐다. 나를 헤치려는 생각이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으나 존재 자체가 위협처럼 느껴졌었다. 짧은 순간 동안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지갑에 현금이 얼마나 있더라?', '아직은 달려서 도망가기 힘든데...' 이런 생각들은 엄마 품에 안겨서 꼬물거리는 어린아이의 해맑은 얼굴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리옹의 론강

무사히(?!) 텐트촌을 빠져나온 뒤 눈에 들어온 풍경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더 슬펐다. 이후에도 리옹의 거리 곳곳에서 구걸하는 난민들을 많이 만났다. 실제로 소매치기나 범죄를 저지르기도 해서 지역 주민들도 경계하는 눈치였지만, '두려움'은 내가 제대로 볼 수 없거나 보지 않을 때 더 강화되는 것 같다.  

리옹 대학가와 론강을 건너는 다리

'갈리에니 다리(Pont Gallieni)'로 론강을 건너면 리옹 대학을 비롯한 여러 대학들이 모인 대학가가 나온다. 주말이라 한적했던 대학가를 살짝 돌아보고 다시 '유니버시티 다리(Pont de L'Universite)'로 론강을 건넜다. 돌아 돌아서 관광안내소가 있는 '벨쿠르 광장(Bellecour)'에 도착했지만 숙소로 돌아갈 길이 벌써부터 걱정됐다.


| 벨쿠르 광장(Place Bellecour)

리옹에서 가장 큰 광장이라는 '벨쿠르 광장'에는 시간을 알려주는 종탑과 루이 14세의 기마상, 푸른 잔디밭과 분수, 널찍한 관광안내소까지 많은 것들이 있었다. 광장을 둘러싼 수많은 상점과 레스토랑에는 토요일을 즐기는 가족, 커플들이 넘쳐났다. 


리옹은 어린 왕자를 쓴 생텍쥐페리의 고향이기도 해서 관련된 동상과 벽화들도 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나는 찾아내지 못했다. 관광안내소에서 확인해보니 멀리 보이는 푸비에르 언덕의 노트르담 성당을 향해 10분 정도 걸으면 구시가지, '비유 리옹(Vieux Lyon)'이 나온다고 했다. 

벨쿠르 광장과 구시가지 사이를 흐르는 손강

광장에서 손강을 건너 오른쪽으로 5분 정도만 걸으면 '리옹 대성당'이 나온다. 성당 옆에는 작은 공터가 있는데 바닥의 돌이며, 남아있는 기둥이 '비유리옹'에 온 것을 실감하게 했다. 불어로는 'Jardin Archeologique', 직역하면 '고고학 정원'이었는데 수백 년은 되어 보이는 돌 위에서 사람들이 쉬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리옹 고고학 정원(Jardin Archeologique)

| 리옹 대성당(Cathedral Saint-Jean-Baptiste)

리옹대성당 정문

'고고학 정원'에서 모퉁이를 돌면 '리옹 대성당(Cathedral Saint-Jean-Baptiste)', '세례자 요한 성당'이다. 내부 공사는 끝났지만 외부 공사가 아직 진행 중이었다. 앞에는 세례자 요한을 나타내는 식수대가 보였다.

리옹대성당 내부와 천문시계

성당 내부 곳곳에 스테인드글라스로 들어오는 빛이 정말 아름다웠다. 성당 왼편에 사람들이 몰려있어 가보니 엄청난 크기의 정교한 시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14세기의 천문시계라고 한다. 시간뿐 아니라 연도와 날짜로 전례력까지 확인할 수 있는데 고장 난 상태였다. 고치는 데에만 몇 년이 걸린다는 말이 보기만 해도 이해됐다.


| 리옹 푸비에르 언덕 오르는 길 

'리옹 대성당' 정문으로 나오면 언덕 위에 성당이 하나 더 보인다. '푸비에르 노트르담 성당'이다. 올라갈 수 있는 케이블카가 있다고 들었는데 정류장도 못 찾겠고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거리라고 해서 도전해봤다.  

푸비에르 언덕 오르는 길

밥시간도 애매해서 치즈와 햄을 넣은 크레페를 사 입에 물고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10-15분 정도면 된다더니 경사도 가파르고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다시 아파오는 발을 질질 끌고 언덕을 올랐다. 로마시대의 원형경기장도 있다는데 찾아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4월의 프랑스, 아름답게 핀 벚꽃

2/3 지점 정도에 다다르니 4월 중순, 벚꽃이 너무 예쁘게 피어있었다. 사진을 찍어도 힘든 표정이 역력하다. 올라오는 길에 길을 물었던 사람들마다 5분 정도만 더 가면 된다고 했는데, 30분도 넘게 걸려 '푸비에르 노트르담 성당'이 완전하게 눈에 들어왔다.


| 푸비에르 노트르담 성당(Basilica Notre-Dame de Fourvie)

'푸비에르 노트르담 성당(Basilica Notre-Dame de Fourvie)'은 리옹을 전염병에서 구했다고 전해지는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하기 위해 19세기에 세워진 성당이다. 대리석과 모자이크가 어우러진 비잔틴 양식으로 내외부 모두 화려하다. 

주말이라 근처에 사는 프랑스인들도 많이 찾은 것 같고 사람이 정말 많았다. 성당 주위는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성당내부, 경당, 아래성당

인파를 뚫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 입이 딱 벌어졌다. 루르드 성지의 성당들도 화려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봤던 성당들 중에서 가장 화려했다. 마치 베르사유 궁전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기까지 했다.

푸비에르 노트르담 성당의 화려한 내부
세계 각국의 성모마리아상

지하에 있는 성당에는 '노트르담(성모 마리아)성당'이라는 이름답게 전 세계 성모 마리아상이 다 모여있었다. 성당 밖에는 미니 에펠탑과 리옹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엄청난 뷰가 나를 기다렸다.

푸비에르 성당 외부와 내려다 보이는 리옹 시내

이 날은 부활절을 일주일 앞둔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전날이었다. 루르드에서는 하루에도 두세 번씩 미사를 드리다가 어제 하루 그냥 지나갔다고 마음이 쓰였었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 특전 미사가 있다고 해서 좀 더 머물다 미사를 드리고 가기로 했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날부터 예루살렘 입성 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게 되는 주님의 수난을 기억하는 '성주간(고난주간)'이 시작된다. 미사에서는 군중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구하소서'라는 뜻이 담긴 히브리어)'를 외쳤던 예루살렘 입성 당시의 상황을 재현한다. 

시간이 너무 늦어지는 것이 걱정이었지만 미사까지 마치고 나오니 기분이 한결 개운했다. 내려오는 길에는 미사를 마친 사람들이 우르르 움직이는 곳을 따라갔더니 자연스럽게 '푸니쿨라'도 탈 수 있었다.


| 집으로 가는 길은 편하게 '푸니쿨라(Funicular)'?!

리옹 푸비에르 푸니쿨라

푸니쿨라는 높은 언덕을 오르내리는 산악용 케이블을 말한다. 푸비에르 언덕은 경사가 급해서 푸니쿨라가 유용하다. 이렇게 편하게 내려오다니 올라갈 때 고생했던 게 생각나 허무했다. 가격은 1.9유로다.

다시 손강을 건너 숙소로

저녁 7시, 이제 구시가지에서 손강을 건너 '벨쿠르 광장'쪽으로, 다시 난민 텐트를 지나 숙소까지 무사히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낮에도 어두웠던 그곳을 가려니 겁부터 났지만 우선 사람 많은 광장까지 나오는데만 30여분이 걸렸다. 광장에서 만난 경찰에게 상황을 설명했더니 '리옹 중앙역(Gare de Lyon-Perrache)'을 통해서 숙소로 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알려주었다. 


지하도를 통하는 게 가장 빠른 길이지만 알려준 길로 가는 게 안전할 거라고 했다. 8시가 가까워지자 어둑어둑 해지는 주변을 보며, 발 아프고 배고픈 것을 애써 지우고 빠른 걸음으로 구역을 넘었다. 그렇게 숙소에 도착하니 완전한 밤이 되었다. 밥 먹는 것보다 발이 더 아파 우선 방으로 가서 쉬기로 했다. 


| 리옹 부숑과 '유심 사건(?!)'의 전말

파리 다음으로 미슐랭 레스토랑이 많은 리옹은 미식의 도시로 불린다. 리옹에는 '부숑(Bouchon Lyonnais)' 레스토랑이 있는데 우리로 치면 백반집처럼 서민들이 먹던 소박한 리옹 전통음식들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리옹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한다길래 하루 종일 굶다시피 하며 저녁을 기다렸는데 어둡기 전에 숙소에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기회를 놓쳐버렸다. 부숑으로 유명한 식당들은 구시가지와 광장 쪽에 많았다. 


이왕 늦은 거 침대에 누워 쉬면서 갈아 끼울 때가 된 유심칩부터 살펴봤다. 한국에서 구입해간 유심이 2GB짜리, 8GB짜리 각각 하나씩이었는데 먼저 사용했던 2GB 유심칩이 꽤 오래갔다. 어차피 내일 이동하다 보면 갈아 끼울 시간도 부족할 테니까 미리 교체하기로 마음먹고 남은 무료통화까지 모두 사용해버렸다. 그렇게 하고 8GB짜리로 바꾼 후에 개통절차를 따라 요청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개통되었다는 알림 문자가 오지 않았다. 늦어도 10분 정도면 충분했는데 뭔가 잘못되어가는 게 분명했다. 점점 불안했다. 구입한 한국업체도 주말이고 영업시간이 지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 어쩐지 요 며칠 아무 일 없이 지나간다 싶었다. 이동하는 날은 길도 찾고 검색할 것도 많아서 데이터가 꼭 필요한데 막막했다. 우선 무료 wi-fi가 되는 숙소에서 내일 사용할 기차표와 지도 등을 미리 캡처해 두었다. 

장기간 유럽 여행을 갈 때는 비싼 해외 로밍 요금제 대신 현지 유심칩을 사서 끼운다. 일정 금액으로 데이터와 무료통화 문자 등을 사용할 수 있는데 한국의 대행업체나 현지에서 구입할 수 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밤 9시가 넘어서야 배가 너무 고파 밖으로 나갔다. 리옹 코스를 파는 고급 레스토랑과 벌써 취한 사람들이 많아 보이던 바, 그리고 아프리칸 버거집이 있었다. 어제오늘 제대로 된 밥 한 끼 못 먹은 것 같아서 속상했지만 빨리 먹고 들어가고 싶어서 버거집을 선택했다. 흑인 아르바이트생에 손님도 나 빼고 모두 아프리카계였다. 다른 곳을 찾아갈 힘도 없고 아르바이트생이 친절하고 영어도 가능해서 그냥 주문했다. 

아프리칸 전통 소스를 담은 버거와 아프리카 전통 음료, 바나나 튀김이 사이드로 한 세트였다. 단짠단짠이 아니라 '단단단'세트였다. 우선 버거를 꾸역꾸역 뱃속에 밀어 넣고 음료와 튀김을 들고 나와 숙소로 향했다. 배는 더부룩하고 마음은 더 더부룩했다. 


고난주간의 시작다운 마무리인가요?! 떼제에서의 부활을 맞기 위해 이 정도 고생은 기쁘게 받아야 하는 걸까요?!... 몸의 치유가 일어났던 루르드를 뒤로하고 마음의 엄청난 치유를 받은 떼제로 가는 길은 역시나 쉽지 않았는데요. 깁스하고 떠난 40일간의 순례 기록 <이상한 순례길> 다음 편은 드디어 '떼제'! 이번에도 같이 걸어주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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