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당신을 환영해준 사람, 누구였나요? 프랑스 떼제의 첫날

깁스하고 떠난 40일간의 산티아고 순례

[순례 14일 차, 19.04.14. 일요일]
AM 08:04_리옹 출발(마콩행 TGV)
AM 08:29_마콩 도착(떼제행 버스)
AM 09:30_떼제 도착

내 '이상한 순례길'은 급기야 출발점을 역행해서 나를 완전 반대방향으로 이끌었다. 지금까지 이동한 거리는 총 1,633km, 리옹에서 떼제까지는 100km였다. 리옹에서 마콩까지 테제베(TGV)로 25분, 마콩에서 버스를 타고 50분 정도 더 올라가야 떼제에 도착할 수 있었다.  

떼제(Taizé)는 프랑스의 한 마을 이름이다. 1940년 스위스 출신의 개신교 수도자 '로제(Roger Schutz; 1915~2005)'수사가 프랑스 동부의 오랜 수도원이 있던 '클뤼니(Clunny)' 근처 마을 떼제에 정착하면서 시작된 초교파적 수도 공동체(Community)가 바로 '떼제 공동체(Taize Community)'이다.
파리-바욘-루르드-툴루즈-리옹-떼제 여정
스위스 작은 마을의 목사였던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로제슈츠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프랑스 떼제로 건너왔다. 2년여간 떼제에 집을 얻어 살면서 나치를 피해 도망 다니는 유다인들과 피난민들을 수용했다. 독일 나치군이 이 지역을 점령하자 스위스 제네바로 이동했다가, 1944년 다시 떼제로 돌아와 정식으로 공동체 생활을 하였고, 1949년 7명의 첫 수도 서원자들을 배출했다.

개신교, 가톨릭 등 여러 그리스도교파 출신 수사들이 그리스도교 일치를 실현하며 수도생활을 하고 있다. 현재는 가톨릭 출신의 '알로이스 수사(Brother Alois)'가 원장을 맡고 있다. 공동생활과 독신, 단순하고 소박한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종신 서약을 한 형제들의 수도 공동체에는 청년들을 중심으로 남녀노소 전 세계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떼제로 떠나기 전,
나에게는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1. 유럽 유심 개통

'Thank you for asking us to add a Big Value Bundle to your account. You'll receive a success message when this is added.' '저희 보다폰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개통 요청이 접수되었습니다.' 정도로 해석이 가능할까. 접수는 된 것 같은데 아침이 되도록 '개통 성공 문자'는 안 오고 데이터와 전화는 여전히 먹통이었다.


오전 7시 반, '8시 4분 떼제행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숙소에서 나가야 하는 기가 막힌 타이밍에 가까스로 온라인 상담원과 채팅 연결이 되었다. 접속 코드를 입력하고 전화번호를 확인하는 복잡하게 느껴지는 절차를 마치고 답변을 기다리는데 시계를 보니 벌써 7시 45분. 숙소를 벗어나면 인터넷이 끊길 텐데 복잡한 구조의 건물 꼭대기 구석방에서 로비까지 가서 체크아웃을 하고 기차역 플랫폼까지 가기에 촉박하게 느껴졌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서 답변도 받지 못한 채 무용지물이 된 휴대전화를 챙겨 숙소를 나섰다. 배낭을 메고 서둘러 기차역으로 뛰었다. '그래도 역이 가까워서 다행이다'생각하며 티켓에 적힌 플랫폼에 출발 5분 전에 도착했다. '휴... 다행이다' 안도의 숨을 내쉬는 사이, 출발시간인 8시 4분이 지나가는데도 기차가 오지 않았다.


2. 리옹에서 기차 타기

마콩 가는 첫 번째 티켓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직감하고 캡처해둔 티켓을 보여주며 주변 사람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마콩 가는 테제베 여기서 타는 거 아닌가요?" 영어를 하는 사람은 길을 모르고, 길을 아는 사람은 영어를 몰랐다. 급기야 직원이 두 명이나 왔는데 나를 앞에 두고 자기들끼리 한참을 이야기했다. 못 알아듣겠는 아저씨들의 말속에서 정보를 조합해보면 대충 이랬다. "이 티켓은 여기서 쓸 수 없다", "이미 이 기차 시간은 지났다", "밖으로 나가서 1층으로 내려가면 티켓 기계가 있다", "테제베가 없다."  


'하.. 또 사고 쳤네...' 내 티켓은 'Lyon Part Dieu'역에서 'Macon Loche'로 가는 테제베(TGV)였는데 나는 툴루즈에서 리옹으로 올 때 이용했던 'Lyon Perrache'역만 생각하고 '잘못된 기차역'에 가 있었던 것이다.

리옹 Perrache역에서 Part Dieu역까지

지금 생각해보면 아저씨들은 '지금 바로 출발하는 테제베가 여기서는 없으니 일반 기차를 타야 하며, 티켓은 밖으로 나가 기계에서 구입할 수 있다. 바로 테제베를 타려면 'Lyon Part Dieu'역으로 가야 한다'고 말해준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의 프랑스식 영어와 나의 당황함은 '여기서 지금 테제베로 마콩을 갈 수 없다.'는 말만 받아들인 채 택시정류장으로 나를 뛰게 만들었다.   


참고로 리옹에서 마콩까지 테제베로 25분, 일반열차로는 50분이 걸리고, 내가 있던 Lyon Perrache역에서 Lyon Part Dieu 역까지는 4km, 차로 10분 정도의 거리이다.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누구에게 물어보지 않고도 다음 기차 시간을 검색해서 내가 있던 Lyon Perrache 역의 티켓을 구입하고 일반열차로 마콩에 가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들었지만 기차를 놓쳤으면 따로 티켓 구입 없이도 다음 열차 정도는 탈 수 있고 기차 안에서도 직원에게 직접 티켓을 구입할 수 있다. 


3. Lyon Part Dieu역에서 기차 타기

마콩 가는 두 번째 세 번째 티켓

8시 50분, 기차표보다 더 비싼 택시비 17.8유로를 지불하고 헐레벌떡 Lyon Part Dieu역에 도착했고 티켓 판매 기계에서 가장 빨리 출발하는 열차표를 14.1유로에 구입했다. 테제베 시간은 맞는 게 없어 9시 16분에 출발하는 일반열차 티켓을 샀다. 이번에도 놓칠까 봐 플랫폼을 확인하고 바로 찾아갔다. 오랜만에 내 몸만 한 10kg짜리 배낭을 메고 여기저기 뛰어다녔더니 발이 너무 아팠다. 플랫폼 끝자락의 벤치까지 걸어가 배낭을 바닥에 던져놓고 철퍼덕 앉아 기다렸다. 여전히 휴대전화로는 시간밖에 확인할 수 없었다.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Lyon Part-Dieu역 플랫폼

그런데 출발시간인 9시 16분이 다 되어가는데도 기차가 또 오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도 처음보다 줄어든 것 같았다. '열 번 넘게 플랫폼을 확인했는데 무슨 일이지?' 사람들에게 물어보기 시작했지만 그 플랫폼에서 나처럼 마콩행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티켓 판매 기계와 큰 전광판이 있던 쪽으로 다시 쩔뚝거리며 걸었다.


직원으로 보이는 유니폼을 입은 아저씨가 보였다. 티켓을 보여주며 "분명히 이 플랫폼인 걸 확인하고 기다렸는데 기차가 안 온다"라고 이야기했다. 


아저씨는 유창한 영어와 친절한 미소, 그리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앗, 이 기차는 출발했어요. 갑자기 플랫폼이 바뀌어서 안내방송 했을텐데요?!" 


당황한 내 표정을 보고 무전기로 여기저기 확인을 한 아저씨는 티켓에 다음 열차시간과 목적지를 적어주며 말했다. "여기선 이렇게 플랫폼이 갑자기 바뀌는 일이 많아요. 11시 16분에 Dijon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Macon Ville에서 내리면 됩니다. 티켓은 다시 사지 않아도 돼요. 표 확인할 때 제가 적어준 걸 보여주세요. 그리고 이번에 탈 때는 꼭 출발 5분 전까지 전광판 앞에서 플랫폼이 변경되는지 확인하고 나서 움직여요~ 또 바뀔 수도 있으니까요~ 행운을 빌어요!"


오전 9시 30분

떼제에 도착하기로 했던 시간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리옹이고 휴대전화도 여전히 불통이었다. 대합실에 무료 wi-fi가 있었지만 신호가 약해 인터넷 검색도 어려웠다. 떼제에도 늦는다고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늦어서 예약이 취소되는 건 아니겠지?!', '그럼 오늘 어디서 자야 하지?!' 복잡한 역만큼이나 내 머릿속도 복잡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멍하게 앉아있다가 11시 16분, 드디어 마콩으로 가는 일반열차에 몸을 실었다. 프랑스의 일반열차와 테제베는 차이가 많이 난다. 속도뿐 아니라 객실 청결면에서도 훨씬 불편하다. 얼룩덜룩한 시트에서 베드버그가 기어 나올 것 같았지만 견대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한 시간이 일 년처럼 느껴졌다.  


4. 마콩에서 떼제 가기

Macon-Ville 역 플랫폼

낮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 내가 탄 기차는 지나는 모든 역에 정차한 뒤, 드디어 '마콩 빌레(Macon Ville)'에 도착했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클뤼니 방향으로 한 시간 정도 더 가야 하는 미션만 남았다. 


마콩 역은 리옹에 비하면 정말 한산했다. 문제는 일요일이라 안내센터도 문을 닫고 직원도 없는데 너무 한산해서 길을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루르드에서 나에게 떼제를 소개해줬던 친구는 버스정류장이 하나밖에 없어서 못 찾을 수가 없을 거라고 했는데, 아침에 기차를 두대나 놓치고 넋이 나갔을 때라 그런지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과제였다. 게다가 주말이라 배차 간격이 2-3시간이나 되는 버스를 놓치기 싫어 마음이 급했다. 


100kg로 느껴지는 배낭을 메고 역 여기저기를 종종 대며 뛰었다. 정문 앞에도 시내로 가는 것 같은 버스정류장들이 여러 개 보였고 정문 맞은편에 버스 주차장처럼 보이는 곳에도 버스가 한 대 서 있었다. 


그 버스 옆에 쓰레기통을 둘러싸고 남자 둘, 여자 한 명이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뚱뚱한 몸매에 선글라스를 낀 아저씨는 운전기사처럼 보였다. 리옹에서 나를 도와준 천사 같은 역무원 아저씨와의 대화를 끝으로 묵언수행 중이던 나는 용기를 내서 그 사람들 곁으로 갔다. "혹시 영어 할 줄 아세요? 이 버스 떼제 가는 것 맞나요?" 그들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는 순간 내가 잘못 판단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구걸하며 살아가는 집시나 홈리스처럼 보였다. 영화 캐리비언의 해적에 나오는 해적들처럼 몇 년은 안 씻은 것 같은 떼 낀 피부에 꼬릿 한 냄새가 풍겼다. 그중 빼빼 마른 남자가 "떼제? 찾는다고?" 어설픈 영어를 하며 다가왔다. 남자는 버스 시간표가 붙어있는 벽 쪽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알 수 없는 말들을 하며 웃는데 치아 사이에 뭔가 잔뜩 끼어있었다. 너무 무서웠지만 도망가는 과민반응을 보이면 더 자극시킬 것 같아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때, 내 또래로 보이는 키 큰 청년이 배낭을 메고 시간표 쪽으로 다가왔다. 내가 잽싸게 물었다. "너 혹시 떼제가니?!" "응, 너도?!" "응응응!" 속으로 안도의 한숨이 크게 나왔다. 독일에서 혼자 왔다는 히피 스타일의 뽀글 머리 남학생이었다. 자기도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둘이 시간표를 열심히 보고 있는데 이번엔 또 까만 뽀글 머리 여자애가 "떼제 가니?! 여기서 버스 타는 거 맞아"라고 말하며 등장했다. 


그 친구는 떼제에 벌써 여러 번 와봤단다. 경험자 등장에 둘 다 안심했고 그 빼빼 마른 집시 아저씨는 머쓱해져서 담배 피우던 쓰레기통 옆으로 돌아갔다. 그러고 나서 '여기... 떼제...?'라는 말과 함께 하나 둘 버스정류장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커다란 짐가방에 설렘을 담은 밝은 미소! 남녀노소 연령대와 성별은 다양했지만 사람들의 차림새와 얼굴에는 '나 떼제로 가요'라고 쓰여 있었다. 큰 버스가 가득 차서 곧 출발했다. 


마콩에는 Macon Ville와 Macon Loche, 두 군데의 기차역이 있다. 떼제로 가는 Mobigo 701번 버스는 두 곳 모두 들르기 때문에 어느 곳으로 오든 상관없다. 다만 요일별로 시간이 다르고 주말에는 배차간격이 2-3시간이라서 미리 홈페이지(www.viamobigo.fr)에서 시간표를 다운로드하여 타이밍을 잡으면 좋다. 마콩 빌레 기차역의 떼제행 버스, 'Mobigo 701번'은 대합실에서 밖으로 나가는 큰 문이 아니라, 그 출입문 맞은편에 고속버스 승강장 같이 생긴 주차장에서 출발한다. 


인도계 프랑스인 엄마와 독일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살다 프랑스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는 뽀글 머리 여자애는 자연스럽게(?!)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6개 국어를 한다고 했다. 부모님이 떼제에서 만나 결혼하셔서 떼제와는 날 때부터 인연이 깊단다. 그녀와 버스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친절하고 따뜻한 표정으로 호기심 어린 질문을 해대던 그녀는 오늘 아침 나에게 일어난 일들과,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러 한국에서 온 내가 떼제로 가고 있는 이야기를 듣더니 "떼제로 잘 왔어! 떼제는 너 같은 사람들을 위한 곳이야. 떼제에서 나갈 때는 다 좋아질 거야! 난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어. 그래서 내가 떼제를 좋아하고 그리워하고 또 자주 오는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며 애써 웃어 보였다.


그러는 사이,
버스가 떼제에 도착했다 
떼제 버스정류장과 바로 앞 사무소

홈페이지 예약 때 적어둔 내 도착 예정시간은 9시 반이었는데 벌써 2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1층짜리 허름한 사무실은 닫혀있었고 3시 반부터 접수가 가능하다는 표지판만 서 있었다. 떼제 다경험자인 뽀글 머리 여자애가 리더가 됐다. "어차피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없어. 텐트 R에 짐 두고 저기 연못에 가볼래? 내가 길 알아" 

떼제 입구 '접수처' 사무실

내 머릿속에서는 '난 아침에 온다고 예약했는데 늦어서 예약이 취소됐을지도 몰라. 접수 시작했는데 명단에 내 이름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 근처에 숙박시설이 따로 없을 것 같은데. 핸드폰도 해결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는데.'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지만 무리에서 이탈하면 안 될 것만 같아 그냥 따라나섰다. 


커다란 종탑을 지나면 흰색 천막들과 나무로 된 오두막들이 쭉 나온다. 무슨 보이스카웃 캠프하는 곳에 온 것 같았다. '헐... 저런 데서 자는 건가..?!' 가방들이 모여있는 대형 텐트에 배낭을 두고 뽀글 머리 리더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휴... 힘드네... 난 그냥 쉴걸 그랬나?! 내가 없는 사이에 직원이 왔다 가면 어떻게 하지? 지금 구경이나 다녀도 되나?!' 자꾸 까만 감정들이 올라와 나를 괴롭혔다. 

떼제 입구 종탑과 숲길

입구부터 10분 넘게 걸었더니 숲길이 나왔다. 꽤 울창하고 바닥은 흙과 자갈이 섞여있었다. 다쳤던 발의 고통이 점점 심했다. 돌아가고 싶었지만 여기서 또 입구까지 혼자 찾아갈 자신은 없어서 천천히 따라 내려갔다. 


남자 하나 여자 셋, 발이 불편한 내 속도에 맞춰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독일에서 혼자 온 여학생, 프랑스 다른 지역에서 혼자 온 남학생, 우리의 리더 뽀글 머리 여학생, 취업고민, 인턴 이야기 등을 나누었다. 그런데 또 '나 빼고 다 대학생이네. 내가 여기서 나이가 젤 많으면 어떻게 하지?!'이런 못난 감정들이 계속 따라왔다. 한참을 내려가니 작은 호수와 그 곁에 오두막 채플이 있었다. 내 머릿속과는 반대로 고요했다. 

생 엔티엔 샘(Source St. Etienne)

뽀글 머리 리더는 초록초록한 풀밭을 발로 몇 번 밟아보더니 "약간 축축하긴 한데 햇빛 있는 데는 앉아도 될 것 같아. 좀 앉을까?!"라고 했다. 다른 유럽 친구들은 모두 동의하며 바닥에 앉거나 팔베개를 하고 누웠다. 


그런데 나는 '응?! 여기 앉는다고?! 풀밭에 신문지 같은 것도 안 깔고 그냥 앉는다고?! 개미도 있고 벌레도 있는 것 같은데... ' 내 안에 못난이가 오늘은 아주 열심히 활동을 했다. 머뭇거리는 내 맘을 눈치챘는지 뽀글 머리 리더는 "불편하면 저 옆에 나무 부분에 앉아도 돼~ 아님 다시 올라갈까?!"라고 웃으며 말해주었다. 

떼제 안 푸른 풀밭들

'어린데도 착하고 배려심 있네?! 그냥 앉을까?! 엉덩이 젖는 건 싫은데' 결국 어정쩡한 자세로 나무데크에 걸터앉았다. 그러면서도 이런 내 태도와 '나이 많은 동양 여자'라는 내 존재 자체가 나머지 친구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작동하지 않는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며 대화에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다.


시간은 금방 가서 다시 입구 쪽으로 돌아가야 했다. 호수에서 올라오니 어느새 북적거렸다. '티타임'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플라스틱 국그릇 같은데 뜨거운 차를 받고 있었다. 카스테라 같은 것과 함께 길게 줄을 서서 배식을 받는데 구호물품을 나누어주는 풍경 같았다. 아침부터 난리통에 오후 3시가 넘어가는 이 시간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한 난 무척 배고팠지만 "괜찮다"고 말했다. 뽀글 머리 리더는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차와 빵을 받으며 "너도 나중에는 좋아하게 될 거야"하고 미소 지었다. 


그렇게 우리는 대형 텐트로 돌아가 가방을 찾고 나이와 단체, 국적 등으로 분류된 지정장소를 향해 흩어졌다. 


어서 와 떼제는 처음이지?

지정받은 오두막에 줄을 서서 들어가면 긴 나무의자 네 개를 붙여 네모나게 만든 그룹 자리로 랜덤 배정된다. 5-6명 정도 그룹이 지어지면 봉사자가 떼제 공동체에 대한 소개와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알려주고 지도를 포함해 출신국가 언어로 된 자료들을 나눠준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면 숙소를 배정받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출신국가와 나이 등에 맞춰 제안받는 범위 안에서 원하는 만큼 접수비를 내면 절차가 끝난다.
첫날 받은 떼제의 한국어 자료들

그새 예약이 취소됐을까봐 "원래는 오전 9시 반에 오기로 했는데 사정이 있어 지금 왔다"라고 안내 봉사자에게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하며 들어갔다. 그런 건 아무 문제없다는 듯 웃어 보이는 그녀는 "괜찮다"며 나를 맨 앞쪽 그룹으로 안내했다. 주황색 단발에 뽀글 머리, 안경을 낀 여자 봉사자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맞아 주었다. 이미 의자에는 4명 정도가 앉아 있었다. 프랑스 다른 지역에서 사서로 일하는 줄리엣, 나처럼 퇴사하고 왔다는 캐나다인 세라, 독일 선생님 키야,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호주 간호사, 다양한 조합이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마치고 떼제에 온 이유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산티아고를 가려다 발이 다쳐서 루르드를 거쳐 떼제까지 온 내 이야기는 역시 모두가 흥미로워했다. 특히 오늘 아침 핸드폰이 무용지물이 되고 리옹에서 기차를 2대나 놓치고 마콩에서는 집시에게 길을 물어본 내 '멍청이 스토리'는 인기 만점이었다.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봉사자가 나에게 따로 와서 물었다. "너 괜찮니?!" 이 아무것도 아닌 말에 내 안에 뭉쳐있던 힘듦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아니 안 괜찮아. 하나도 안 괜찮아." 오늘 하루 동안에만 수십 번 직면해야 했던 '멍청하고 못난 나'에 대해서, 다리가 다치던 날, 그리고 퇴사하던 이야기까지 다 털어놓게 되었다.

떼제 입구 옆 작은 교회

그 친구는 "네 마음 너무 잘 알 것 같아. 나도 일에 너무 지쳐서 여기 왔거든. 내 첫날을 보는 것 같아. 떼제에 잘 왔어. 떼제는 이런 우리들을 위한 곳이야. 이곳에서 분명 다시 살아갈 힘을 얻어 나갈 수 있을 거야. 나처럼. 너에겐 지금 따뜻한 차가 필요할 것 같아." 아까 봤던 플라스틱 그릇에 차를 내어주고는 말을 덧붙였다. "너 오늘 너무 많은 일들을 겪은 것, 알고 있지?! 많이 지치고 힘들었을 텐데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침대에 누워 자거나 쉬는 거 어때?! 프로그램들이 많지만 떼제에서 '꼭 해야만 하는 것'은 없어. 네 안에서 시키는 대로 해봐. 잠이 필요하다면 자고, 걷고 싶으면 걷고, 기도하고 싶으면 기도하고"


함께 울다 웃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따뜻한 차'는 바닥을 드러냈다. 마음속까지 그 따뜻함이 전달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눈이 팅팅 붓고 나서야 진정을 하고 활짝 웃을 수 있었다. 그 친구도 활짝 웃으며 나를 꼭 안아 주었다. 고맙다는 말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하다는 내 말을 듣고 그 친구는 "오늘부터 난 침묵 피정에 들어갈 거라서 다른 마을로 이동해. 그래도 기도시간에는 볼 수 있을 거야. 말은 못 하겠지만. 기도할게. 또 보자!"라고 말했다. 침묵 피정이 뭔지, 기도시간은 뭔지, 잘 몰랐지만 그냥 웃어주었다. 


함께 오리엔테이션을 받은 친구들이 숙소로 함께 가자며 내가 등록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10분 정도를 걸어갔더니 숙소가 나왔다. 2층 침대가 3개 있는 6인실 오두막이었다. 

떼제 숙소 출입문

프랑스 사서 '줄리엣'과 같은 방을 쓰게 됐는데 걸음이 느린 나보다 빨리 방에 도착한 그녀는 침대 1층을 차지하고 있던 포르투갈 친구들에게 발 다친 내 사정을 이야기하고 1층 자리를 확보해주었다.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방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온 가족이 떼제에서 부활을 보내기 위해 왔다는 이탈리아 할머니와 남편, 아들과 함께 왔다는 호주 의사 아줌마, 포르투갈인 두 명, 줄리엣, 나까지, 부활절을 함께할 룸메이트가 되었다. 


떼제의 첫날밤

1. 떼제 투어

저녁식사 시간까지 시간이 좀 있어서 떼제 유경험자인 줄리엣을 따라 오리엔테이션 멤버가 모두 다시 모였다. 기도하는 채플, 매점 '오약(OYAK)', 떼제를 설립한 로제수사가 묻혀있다는 작은 예배당, 사무실 'Casa' 등의 위치를 파악하며 우리만의 '떼제 투어'를 다녔다. 


2. WIFI

오약 근처에서는 무료 Wifi가 가능했는데 하나의 이메일 계정으로 하루에 정해진 시간 내에 10분씩만 사용할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연락 두절이었던 한국의 부모님께 보이스톡이라도 해보려고 했지만 신호가 약해서인지 불가능했다. 통화는 포기하고 깨톡으로 '잘 도착했고 여기 있는 동안 전화는 불가능할 것 같다'라고 말씀드렸다. 여전히 휴대전화와 데이터는 개통이 안되었다. 전화는 포기했다.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3. 저녁식사

우리는 다시 방으로 돌아가서 각자 쉬다가 밥 먹을 때 다시 만나기로 했다. 짐을 풀고 옷을 갈아입는데 온몸에서 하루 동안 고생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제대로 쉬지도 못한 것 같은데 금세 저녁 식사시간이 되었다고 줄리엣이 식당으로 나를 이끌었다. 

떼제의 첫끼

식당이라기 보다는 대형 텐트였다. 배식을 받아 테이블도 없이 긴 나무의자에 나란히 앉아 먹거나 잔디밭에 모여 앉아 식사했다. 잔디에 앉는 것도 불편했는데 플라스틱 그릇에 차가운 콩죽이 전부였다. 줄리엣은 프랑스에선 손님이 오면 첫 음식으로 이런 차가운 콩 요리를 낸다고 했다. 아직 쌀쌀한 4월 저녁, 하루의 피곤함이 다시 몰려오는 것 같았다. 오늘 첫 끼였지만 몇 입 먹지 못했다. 유럽 친구들은 '건강한 음식'이라며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4. 저녁기도

떼제 성당

8시 반, 저녁기도 시간이 되었다. 하루가 끝날 생각을 않고 너무 길었다. 독일 친구 키야는 너무 피곤하다며 숙소에 남아서 잔다고 했지만 나는 어째서인지 무리를 벗어날 용기는 아직 나지 않았다. 나에게 주어진 일정은 소화해야 한다는 이상한 책임감과 호기심을 가지고 '성당(Church of Reconciliation)'으로 갔다. 


알록달록 예쁜 촛불들, 바닥에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아있는 서양인들, 다 함께 반복해서 부르는 떼제 노래, 모든 게 어색했지만 신기하게 아름다웠다. 끝나지 않는 떼제 노래를 뒤로하고 줄리엣과 나는 내일 아침 일찍 가톨릭 미사에 참여하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떼제의 밤하늘엔 별들이 수없이 박혀있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침대 위에 깔아놓은 침낭으로 쏙 들어갔다. 끝날 것 같지 않던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아침부의 상황들이 필름처럼 지나갔다. 천국과 지옥을 몇 번이나 오갔는지 황당해서 웃음이 났다. 그렇게 인생의 문제들은 꼭 한꺼번에 달려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얼마나 맞아야 쓰러지는지 어디 한번 보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매일이 도전이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 투성이지만 그렇게 헤맸어도 결국 이렇게 도착한 것처럼, 헤매고 있는 인생길도 언젠가는 내가 있어야 할 어느 곳엔가 닿을 수 있길 기도했다.


깁스하고 떠난 40일간의 순례 기록 <이상한 순례길> 떼제에서는 부활절을 전후로 해서 꼬박 보름을 있었네요. 그런데 신기한 게 사진은 가장 적어요. 너무 힘들 때나 너무 기쁠 때는 카메라가 아닌 온몸으로 기억을 하게 되는 걸까요?! 몸으로 기억해내는 '떼제의 성삼일, 부활절', 그리고 '침묵 피정'까지! 계속 함께해요=) 

이전 15화 [툴루즈에서 리옹으로] 1박 2일 Only Lyon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