깁스하고 떠난 40일간의 산티아고 순례
6:30 AM
10:00 AM
Bible Reflection_성경공부?인생공부!
나는 휴대전화 개통을 확인하기 위해서 와이파이가 되는 오약으로 갔다.
밥을 먹고 나면 매번 이렇게 즉흥 공연이 펼쳐졌다. 내 첫 떼제 생활을 이 독일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던 건 행운이었다. 하프를 연주하는 엄마와, 클라리넷을 부는 경찰 아들, 기타를 치는 아버지가 함께 떼제에서 부활을 맞기 위해 캠핑카를 끌고 왔다고 했다. 이 가족의 연주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거나, 노래로 참여하거나, 박수를 치거나 각자의 방식으로 호응을 했다. 덕분에 매 식사시간은 천국이 되었다.
아침부터 미사도 드리고, 기도도 하고, 밥도 먹고, 무엇보다도 나를 지옥에 빠뜨렸던 '핸드폰 문제'까지 해결되고(정작 쓸 일은 별로 없었지만;;), 정말 천국이 찾아왔다.
쉼
밥을 먹고 그룹 나눔으로 약속한 'fifteen fifteen(15:15)'까지는 온전한 혼자만의 시간이다. 물론 혼자 다녀도 좋고 함께 다녀도 좋다. 떼제에 '해야만 하는 것'은 없으니까.
나는 혼자서 천천히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뜨거운 햇빛을 피할 수 있는 작은 오두막을 발견하고 아지트로 삼았다. 작은 의자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보는데 알 수 없는 새소리와 바람에 흔들리고 햇빛에 반짝이는 연두색 나뭇잎이 천국의 것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가만히 앉아있다가 오늘 받은 묵상 말씀 종이를 꺼냈다.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루카 15.20)"
자기 몫을 챙겨 집을 나갔다가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작은아들. 돌아왔지만 멀리서 아버지 눈치를 살피고 있는 그 모습이 나와 겹쳤다. 돌아오려고 결심했지만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가엾은 마음으로 먼저 달려가 안아주고 환영해준 사람, 내가 떼제에 오던 날 만났던 주황색 뽀글 머리 봉사자가 생각났다.
이어지는 질문, "What am I looking for now in my life?" 나는 무엇을 찾기에 그렇게 원하던 방송일을 때려치우고 홍보대행사로 이직을 했으며, 또 무엇을 위해 그 어려운 결정을 뒤엎고 1년 5개월이라는 애매한 경력과 함께 퇴사를 한 걸까? 무엇을 위해 봉사하고, 무엇을 위해 이곳에 왔을까. 또다시 눈물이 났다. 내가 모든 것을 잃었든 어쨌든 간에 내 존재 자체만 보시고 꼭 안아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 봉사자는 처음 보는 사람을 어떻게 그런 진심 어린 표정으로 맞을 수 있었을까. '처음 떼제에 왔던 나 자신이 생각나서 그래' 봉사자의 말이 맴돌았다. 그녀의 엄청난 환대에 오히려 좀 놀랐지만 그 손길을 받아들이고 나서 아이처럼 품에 안겨 울었던 내 모습도 생각났다. 폭풍 같은 날들 후에 만난 떼제는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여기에서 쉬어. 너를 있는 그대로 환영하고 안아줄게'라고 하는 것 같이 너무 평온하고 아름다웠다.
3:15 PM
Group Sharing_그룹 나눔
세계 곳곳에서 온 또래 친구들의 상황도 비슷했다. 나랑 동갑인 세라는 병원에서 방사선 치료사로 일했다고 한다. 다니던 병원을 그만두고 떼제에 왔으며, 떼제를 시작으로 6개월간 아프리카 등지를 여행하고 캐나다로 돌아갈 거라고 했다. 독일에서 선생님 겸 빅사이즈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키야는 오래 만나던 사람과 결혼까지 고민하다가 헤어지고 떼제를 찾았다. 키야의 부모님도 떼제에서 만나 결혼하셨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온 마리아는 패션 디자이너로 이탈리아에서 일했다. 그녀는 업계의 불합리함을 못 견디고 고향으로 돌아와 초등학교 보육교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2019년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30세부터 35세까지, 나라는 다르지만 'Young Adult(어른 아이)', 줄리엣이 이름 붙이기로는 'Baby Adult'인 우리는 어른이지만 아직은 미숙했고, 아이 같지만 나이로는 이미 어른에 속하는 여기도 저기도 끼지 못하는 상태였다. 떼제에서도 우리는 30세 이상 그룹에 속해 식사를 했는데 그중에서는 나이가 어려서 배식이나, 청소 등의 봉사활동 당번에서 제외되었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못한 'Young Adult', 'Baby Adult'인 우리는 저마다의 무언가를 찾기 위해 떼제로 모였다. 그런 우리에게 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단순하고 소박한 삶 속에서 그냥 쉬라고. 달려와 우리를 환영하며 안아주는 것이었다.
둘째 날, 화요일의 주제는 'Be attentive to Christ's presence in our lives(우리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에 주의를 기울입시다)'였다. 요한 묵시록 3장 '라오디케이아 신자들에게 보내는 말씀(Revelation 3.14-22)'를 읽고는 'lukewarm(차지도 뜨겁지도 않음)'에 대한 열띤 토론이 있었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묵시 3.15-16)"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묵시 3. 20)"
신은 단호하고 무서운 모습으로 미지근한 태도를 버리고 뜨겁거나 차갑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미지근한 것보다 오히려 차가운 것을 선택하라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동양문화권의 '중용'개념부터 스웨덴 사람들은 날씨만큼이나 차갑고 이성적이라는 말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우리의 결론은 "'lukewarm'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태도' 아닐까"였다. 인생의 문제들에 대해 아무런 결정, 선택도 하지 못한 채 주저앉아 불평만 늘어놓을 때가 있다.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과감하게 받아들일지 거부할지 선택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 슬퍼하고 힘들어하면서 가만히 멈춰있지는 말라는 말씀이 아닐까.
포르투갈인 '안나'는 그 험한 인생길을 나 혼자 돌 맞으며 걷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지만 신이 나를 안아 들고 더 많은 돌들을 대신 맞아주며 함께 걷고 있는 이미지에 대해 말했다. 신은 언제든 도와주려고 옆에서 기다리며 말을 거는데 우리가 늘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도 깁스를 하고 여기까지 온 길에 대해 말했다. 두려움을 이기고 자존심을 내려놓고 도움의 손길을 받아들이는 법, '감사하게 받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건 자연스럽게 세 번째 주제와 연결됐다. 마태오복음(Matthew 11.25-30)의 'Welcome our gifts and our limitations too(우리의 은사와 우리의 한계를 받아들입시다)'였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태 11. 28-30)"
나의 약함, 단점, '멍에(Yoke)'들이 오히려 신과 가까워지게 하는 것 같다. 우리는 주로 힘들 때 신을 찾으니까. 내 한계까지 감사하는 일은 너무 어렵지만 이런 멍에를 어깨에 메고 신과 함께 걷게 된 것은 감사할 일이다.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이 아니라 나 같은 모지리, 철부지들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여주시는 주님 안에서 나 스스로가 먼저 자신의 단점과 약함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우린 자기 자신에게 너무 냉정하니까.
8: 30 PM
저녁기도
우리는 종종 워크숍을 다 빼먹고 티타임 시간과 저녁 식사시간까지 함께하며 나눔을 이어갔다. 나눔을 시작하고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8시 30분, 저녁 기도 시간이었다. 저녁기도는 보통 9시 반에서 10시 사이에 끝나는데 그 이후 시간은 무엇을 하든 역시 자유다. 10시 반까지 운영하는 매점, '오약'에서 피자에 맥주를 먹을 수도 있고 일찍 잠자리에 들 수도 있고 성당에 끝까지 남아있기도 한다.
이번 편은 말씀으로 저에게 매일 말을 걸어주시는 신의 디테일한 손길을 느꼈던 떼제에서의 말씀과 묵상에 대한 기록이라 조금은 조심스럽네요. 하지만 떼제에서 그랬던 것처럼 종교를 떠나 우리를 이 세상에 오게 한 어떤 존재에 대한 이야기,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주세요. 늘 신은 이렇게 우리 마음을 두드리죠. 여기에 응답할지, 그냥 지나칠지 또한 우리의 선택이구요. 'lukewarm'하지말고 선택하는 삶을 살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