깁스하고 떠난 40일간의 산티아고 순례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 11.29)" 'Yoke(멍에)'에 대해 그룹 나눔을 마치고 수사님과 다른 그룹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종합해보는 시간이었다. "'모험을 하다'라는 뜻의 'take a risk'는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떠한 것을 하는 것을 말한다. 어느 나라든 '모험'이라는 말 안에는 '위험'이 들어 있다. 해로움이나 손실이 생길 우려를 가지고서야 모험을 할 수 있다. '믿음'도 그렇지 않을까?"
"신을 '믿는다'는 것 안에는 편안하고 좋은 것들만 있을까? 모험이라는 말에 위험이 담겨있듯, 믿음 안에는 '멍에'가 담겨있고 그걸 기꺼이 받아 안고 가는 삶의 태도가 '믿음'아닐까. 그렇게 해서 진짜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것 아닐까." 하지만 수사님은 이어서 "그 믿음은 우리 모두가 이미 가지고 있다. 내 안의 '바람'을 잘 듣고, 믿고, 기꺼이 모험을 해보자."라고 하셨다.
떼제에서의 하루하루는 단순하고 소박했지만 마음만은 풍요롭게 가득 찰 때가 많았다. 매일 아침 일어나 아름다운 자연을 선물해준 신께 감사하며 미사를 드리고 기도를 했으며, 익숙해진 '떼제식 식사'를 마치고는 잔디에 눕거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혼자 멍하니 천국 같은 음악소리를 듣곤 했다.
하지만 'holy'하고 'good'한 고난주간이 끝나 부활이 다가올수록 '이제 정말 떼제를 떠나면 어디로 갈지' 결정해야 했기에, 다음 루트를 계획하고, 이동과 숙박을 예약하는 일 때문에 마음이 요동치고 예민해지도 했다. 이럴 때는 말도 안 되게 아름다운 자연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친구들과의 나눔도 즐겁지 않았다. '멍에'를 메고 '안식'을 얻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머리가 혼란스럽던 어느 날, 평소처럼 잔디에 동그랗게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데 우크라이나에서 왔다는 한 여자애가 내 옆에 앉아도 되겠냐고 했다. 우린 식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떼제에 셀 수 없이 여러 번 왔었고 봉사자로도 여러 번 활동한 적이 있다고 했다. 떼제가 처음이라는 내게 오히려 이것저것 질문을 해댔는데 내 오른쪽 발목의 보호대를 보더니 이유를 물었다.
자연스럽게 내 풀스토리가 공유되었다. 인형같이 큰 눈과 흥미로운 표정으로 내 얘기를 듣던 그녀는 "떼제에 언제까지 머물거니? 2주 차에 침묵 피정 있는 거 알지?! 너 그거 하면 정말 좋겠다! 그거 정말 좋아!"라고 했다. 나는 "침묵 피정? 일주일이나 아무 말도 안 하고 지낸다고?! 그게 가능해?! 근데 메일로 처음 등록할 때 오래 머물 수 있는지 물어봤는데 내가 서른이 넘어서 일주일 이상은 머물 수 없다더라."하고 말했다.
그녀는 말도 안 된다면서 "내가 아는 떼제는 그런 곳이 아니야! 너 같은 사람을 위한 곳이라고! 내가 알아봐 줄게 수녀님한테 가보자!"며 식사를 마치고 나를 수녀님께로 데려갔다. 수녀님은 내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2주 차 침묵 피정을 허락해주셨다. 다만 지금 당장 결정하기보다는 원래 떠나기로 했던 부활 후 첫 월요일까지 생각해보고 그때까지 침묵 피정을 원하는 마음이 들면 정해진 시간까지 이곳에 다시 오라고 하셨다.
떼제에서의 침묵 피정이라니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고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루르드에서 만난 한국인 수녀님이 이야기해주신 게 생각났다. "율리안나, 떼제 후의 일정은 거기 가면 또 누가 알려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 이번 여행에서는 내 고집 피우지 말고 그분이 이끄시는 대로 한번 따라가 봐"
떼제 이후에 '어디로 갈지, 어떻게 할지' 수많은 고민과 스트레스가 무색해졌지만, 한편으로는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긴 것 같아 혼란스러웠다. 수사님 말씀대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주라'라고 신이 사인을 보내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의 삶처럼, '이렇게 많은 프로그램과 참여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어. 넌 모든 것을 해도 되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되지. 넌 뭘 하고 싶니? 어떻게 하루를 채워가고 싶니? 네 마음 깊은 곳에서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들어봐. 행운을 빌어.'라고 말이다.
가톨릭에서 성주 간의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은 '성삼일(聖三日)'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기념하는데 떼제에서도 각 요일마다 특별한 예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성목요일 밤 저녁기도에서는 성체를 영하는 '영성체'의식과 함께 '발 씻김 예식'이 있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 제자들의 발을 손수 닦아 주신 것처럼, 떼제의 수사님들이 수건을 두르고 허리를 굽혀 성당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발을 하나하나 손수 닦아주신다.
물론 하루 세 번 기도시간과 그룹 나눔, 성경공부, 워크숍 등은 계속 이어졌고, 특히 우리 '사랑합니다' 그룹은 모두가 떠나는 '부활절 월요일(Easter Monday)'까지 그룸 모임을 했다.
넷째 날의 주제는 요한복음 19장의 말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장면'과 'Find in the Church a place of friendship(교회 안에서 우정의 장소를 발견합시다)'였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John 19.16-27)"
우리는 '교회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며 활동하고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안 좋은 상황을 통해서도 좋은 것이 올 수 있을지', '나와 매우 다른 사람들과 생활하며 어려움을 느낀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 나라의 신앙공동체와 분위기, 우리 또래의 활동들에 대해 들었다. '나라는 달라도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은 마찬가지구나, 심지어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곳에서도.'를 서로 확인하며 씁쓸함을 느꼈다.
특히 이날은 저녁에 진행되는 '발 씻김 예식'으로 묵상 주제를 하나 더 받았는데 요한복음 13장 1절부터 15절까지의 말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다'였다. 이건 다섯 번째 주제 "Practice a generous hospitality(드넓은 환대를 실천합시다)"와 연결되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John 13.14-15)"
예수님은 유다가 자신을 팔아넘길 것을 아시고도 그의 발까지 씻어주셨을까? 처음에는 자기 발을 씻지 못하게 하던 베드로가 "제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십시오"하는 부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항상 두꺼운 성경책을 들고 와 생각지 못한 부분들까지 짚어주던 스웨덴 간호사 틸다는 이번에도 프린트 물에 없던 마지막 구절이 맘에 든다며 읽어주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John 13.20)"
자존심 세고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은 빚지는 것 같아 극도로 경계하던 내가 다친 발로 여기까지 오면서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나중에는 나를 내려놓고 도움의 손길이 왔을 때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도 또다시 공유되었다.
그런데 자꾸 마음속의 못난이가 불쑥불쑥 나왔다. 누구 하나 뭐라 하지도 않는데 내 모든 나눔이 결국 다친 이야기로 귀결되는 것 같고, 영어로 깊이 있는 마음을 표현하는데 한계를 느껴 자꾸 움츠러들었다. '침묵 피정을 할까, 말까', '안 하면 어디로 가지?', '하면 그다음엔 어떻게 하지?' 미래의 일까지 걱정하느라 집중도 안되었다. 독일 영어 선생님 피오나가 "보경은 왜 이렇게 말이 없어졌어? 괜찮아?"하고 몇 번이나 물어볼 정도였다.
성삼일부터는 '부활까지 4일간이라도' 떼제에서 보내려는 사람들이 몰려오면서 마을 전체가 어수선하고 북적이는 분위기였다. 피오나는 친구가 오고, 줄리엣은 친동생이 왔다고 기도시간에도 모두 따로 움직였다. 혼자 보내는 시간들이 늘었는데 많아진 사람들만큼 외로운 마음이 커져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남의 도움의 손길'은커녕 '나 자신의 너무나도 못생겨 보이는 마음'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부터도 너무 어려웠다. 기차표와 일정을 검색하다 때를 놓쳐 저녁도 혼자 먹게 되었는데 홍콩인 '리타'가 옆에 앉았다.
내가 걸어 다닐 때 종종 사용했던 등산스틱을 눈여겨봤다는 리타는 조심스레 내 발에 대해 물어봤다. 이 부분만큼은 완벽한 영어로 줄줄줄 이야기했고 내 다친 발로 '또 한 명의 친구'가 생겼다. ''안 좋은 일이 좋은 것을 가져올 때'가 이럴 때일까?' 생각했다. 다친 발을 통해 또 한 명의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 말이다.
리타는 프랑스에서 대학원을 다녔고 현재는 캐나다의 외국계 회사에서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가 떼제에서의 부활에 맞춰 휴가를 받아 왔다고 했다. 프랑스어는 물론, 모국어인 중국어, 영어까지 유창했는데 '떼제의 성삼일'간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나와 계속 마주쳤고 그때마다 살뜰하게 배려해주고 챙겨주었다.
유럽인들이 대다수였던 이곳에서 만난 동양인은 더욱 반가웠다. 리타는 한국에도 몇 번 와봤다고 하면서 감자탕과 찜질방, 부산 해운대와 한강 치맥을 사랑한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떼제의 부활을 기다리는 수많은 군중들 속에서 오히려 '외롭고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리타가 나타났고 자연스레 동행하게 되었다.
떼제에 세 번째라는 그녀는 자기도 다리가 잘 삐어서 늘 가지고 다닌다며 근육통 크림과 압박붕대를 챙겨주었고 '발 씻김 예식'때에도 수사님에게 프랑스어로 내가 발이 다쳐서 이곳까지 왔다며 오른쪽 발목을 특히 잘 닦아달라고 내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열심히 설명을 했다.
우리가 '발 씻김 예식' 때 함께 불렀던 떼제 노래 중에 'Il Signore ti ristora'의 사진이 남아있었다.
가사는 이렇다. "Dio non allontana, Il Signore viene ad incontrarti, viene ad incontrarti", 영어는 " The lord restores you. god does not push you away. the lord comes to meet you.", 한국어로는 '주는 당신을 회복시켜주고, 밀어내지 않으며, 주님이 당신을 만나러 오십니다.'로 해석이 가능할까.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내 양쪽 발을 모두 닦아주고 계신 수사님과, 든든하게 내 옆을 지켜주고 있는 홍콩 친구 리타. '내가 내 못난 모습까지도 누군가에게 내어 보이고 도움의 손길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에, 그 누군가의 모습으로 신이 내게 직접 와주시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히 그분 앞에 당당하게 서지 못하는 나를 위해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가장 친근한 모습으로 내게 먼저 다가와 주신 그분의 존재가 너무 크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서 만난 수많은 예수님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날, 떼제 침묵 피정 후에 프랑스 '아를'을 거쳐 스페인 '바르셀로나'까지 가는 기차와 아를에서 이틀간 묵을 숙소를 예약했다. 우선 스페인으로 넘어가자는 결심이었고 중간에 한번 쉬어 갔으면 했는데 내가 사랑하는 고흐 마을인 프랑스 남부 '아를'이 지도에서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정해놓은 일정도 영향을 주었다. 순례길을 다 돌고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독일 뮌헨 친구네를 들러 파리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 어떤 발자취를 남기든 끝까지 '이 40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하고픈 '내 마음속 바람'을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