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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제의 성금요일_'십자가 그 사랑'

깁스하고 떠난 40일간의 산티아고 순례

| 프랑스 떼제의 성삼일()_성금요일

평소처럼 기도하고, 아침 먹고, 수사님과 함께하는 성경 나눔 시간에 참여했다. 예수님 죽음을 묵상하는 '주님 수난 성금요일(Good Friday)'에는 공식적인 그룹 나눔은 없다고 하셨다. 다만, 예수님이 돌아가신 시간 오후 3시에 떼제 입구 종탑에서 3분간 종이 울린다고 했다. 이 시간만큼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든 침묵 중에서 다 함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말,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를 기억해보자고 하셨다.

성금요일 일정과 떼제의 종탑

"낮 열두 시쯤 되자 어둠이 온 땅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해가 어두워진 것이다. 그때에 성전 휘장 한가운데가 두 갈래로 찢어졌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외치셨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숨을 거두셨다. (Luke 23. 44-46)"

그날처럼 어두워지던 해

우리 열성적인 '사랑합니다'그룹은 공식적인 일정에는 없어도 'fifteen, fifteen(15시 15분)'에 모여 무엇이든 나눔을 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나는 내 일정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기 위해
아지트로 향했다
떼제의 흔한 풍경 1

결국, 내 일정은 '떼제 2주 차 침묵 피정-아를-바르셀로나-산티아고 콤포스텔라-마드리드-뮌헨-파리-한국'. '어떻게 해서라도 내 목적지였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가보고 싶어'라고 마음에서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까지는 기차로 이동하고, 바르셀로나에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는 비행기로 갔다가 미리 정해놓았던 마지막 일정에 맞추어 산티아고에서 마드리드로 가서 나머지 일정을 소화하고 예정대로 한국에 돌아오는 40일간의 루트가 드디어 손에 잡혔다


하지만, 문제는 늘 생기지.
떼제의 철 십자가를 찾아보세요~!

내친김에 이동 편까지 예약을 하려는데 휴대전화가 또 말썽이었다. 유심을 갈아 끼우면서 내 전화번호가 변경되었고 애플리케이션에 다시 입력을 해야 결제가 되는데 이렇게 저렇게 해봐도 틀린 번호라고 나왔다. 


그때 마침 지나가던 키야와 세라가 또다시 휴대전화를 들고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셋이 머리를 모아 다시 해봤지만 잘 안되었다. 큰 키만큼 마음도 큰 키야는 내 휴대전화와 유심을 들고 여러 사람이 모여있는 매점, '오약'으로 가서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큰소리로 도움을 요청했고 1분도 안되어서 문제는 해결됐다.


항상 문제와 함께 문제 푸는 것을 도와주는 사람이나 해결방법도 같이 온다는 것을 배웠다. 내가 스스로 인내심과 지혜를 가지고 노력하고 있다면 말이다. 이제 스페인에서 머물 숙소들만 마련하면 되었지만 그새 그룹 나눔을 하기로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서 숙소 예약은 내일로 미루고 세라, 키야와 함께 이동했다. 


우리 '사랑합니다'그룹
떼제의 흔한 풍경2

'사랑합니다'그룹은 늘 그렇듯 풀밭에 앉거나 눕거나 구르거나 하면서 신이 만든 자연 속에서 그분의 말씀에 대해 이야기하는 감사한 시간을 가졌다. 정말 신기한 게 '잔디를 밟지 마시오', '쯔쯔가무시병', '풀독' 등을 떠올리며 풀과 벌레들을 무서워하던 나도 어느 순간부터인가 자연스럽게 자연과 하나 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제가 여러 개라 상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던 어제의 나눔을 보충했다. 특히 '환대를 실천하자는 떼제의 제안',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환대는 요청이기도 하다는 것, 우리가 바라는 대로 바꾸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맞이하는 것, 우리 방식대로 가 아니라 그들의 방식대로 우리를 맞이하는 것조차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이건 비단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자연에게도 마찬가지라는 것까지 모두 동의했다.

떼제의 흔한 풍경 3

아프리카에 가서 의료봉사를 했던 틸다의 이야기와 난민을 받아들여 가족으로 입양했다는 어느 독일 가정의 이야기에 내가 리옹에서 목격했던 난민 이야기까지 더해져 우리의 나눔은 더욱 넓어졌다. 우리는 이날도 워크숍을 모두 빠지고 티타임을 다 함께 하며 저녁식사시간까지 나눔을 이어갔다. 그렇게 저녁기도시간이 왔다. 


떼제의 성금요일 저녁기도 

다시 무언가를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생김에 감사하다. 여기선 모든 시계가 멈춘 것 같다. 음악소리와 새소리를 들을 때, 향기로운 냄새를 맡을 때 '천국'같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여전히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일어나고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도 존재한다.

'환대' 여기서 배운 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이렇게 느끼게 해 주신 걸 끝까지 지키고 실천할 수 있을까? 제자리로 돌아온 것처럼 느껴질 때 '낙심하지 않고 계속 좋은 일을 할 수 있기를' 잠시 슬퍼하고 주저앉을 수 있지만 너무 오랫동안 힘들어하진 않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빛으로 나아가기를. 이게 예수님께 배워야 하는 것 아닐까.

예수님이 붙잡히셨을 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하는 장면이 독서 말씀으로 선포되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울기 시작하였다. (마르코 14. 72)"


베드로가 자신을 부인할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사랑해주시던 예수님의 모습, 돌아가시면서도 끝까지 사랑을 놓지 않으셨던 그분의 '십자가 사랑'이 너무 가슴 아팠다. 


#성금요일_'십자가 예식'

떼제의 성금요일, 십자가 예식

저녁기도 후에도 떼제 노래가 계속됐다. 앞에 있던 십자가가 수사님들이 앉아계시던 가운데 통로에 놓이면 십자가 주위에 앉아 십자가에 손을 얹고 기도하기 위해 모두가 차례로 줄을 선다. 마지막 사람이 기도를 마칠 때까지 떼제 노래는 이어진다. 처음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홍콩 친구 리타와 함께 오른쪽 계단에 앉아있던 나는 십자가 앞으로 나아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애플리케이션으로 말씀들을 찾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요한 21. 17)"


베드로가 자신을 부인할 때처럼 불을 쬐며 앉아있는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예수님의 디테일한 손길이 너무 놀라웠다. 그때 계단 아래 앉아있던 누군가가 일어나 내게로 성큼성큼 왔다. 떼제의 첫날 멘붕인 나에게 따뜻한 차를 내어주었던 그 독일 주황색 뽀글 머리 봉사자였다. 나에게 종이를 건네고는 씩 웃으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그녀의 미소는 여전히 따뜻했다.  

독일 봉사자가 적어준 떼제 노래 가사와 편지

반으로 접힌 종이를 펴보니 떼제 노래 가사들이 여러 나라 말로 적혀있었다. 한국어를 보고 따라 그렸을 그녀의 표정이 상상되었다. 가운데에는 짧지만 강한 편지가 적혀 있었다. "그래서 신이 너에게 말한대, 두려워하지 말라고, 네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요한 14.1)" 또다시 감사와 눈물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늘 그렇듯 한참 뜸을 들이다가 드디어 십자가 앞에 섰다. 한 번에 열명 정도씩 십자가를 잡고 기도했는데 각자의 기도가 끝나면 옆으로 빠져나가고 빈자리를 차례로 채우고 있었다. 어느 자리에 가게 될까.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의 발에 손을 얹고 기도하게 되었다. '주님, 당신은 제 모든 것을 아시죠.' 눈물이 흘렀다. 너무나도 섬세한 손길로 나를 이곳까지 이끌어 주시고 보살펴주시는 게 느껴져 마음 아프게 감사했다.   

새벽 1시, 십자가 예식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눈물을 훔치며 자리로 돌아오니 먼저 예식을 마치고 자리로 와서 수첩에 메모를 하고 있던 홍콩 친구 리타도 눈물을 훔치며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뭔지 안다는 듯 마주 보며 지긋이 웃었다. 리타와 함께 성당을 나오니 달이 밝아서 한 낮처럼 하늘이 푸르러 보였다.


새벽 한 시가 다 되었을 때였는데 그때까지도 성당 안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 앞에 기도하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기도부터 십자가 예식 내내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과 '십자가 사랑'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마음으로 다가왔고 가슴 아프고 가슴 시리게 감사했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이 주시던 말씀이 밤새도록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너를 이렇게 많이 사랑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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