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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제의 성토요일_파스카 성야 '누구를 찾고 있느냐?'

깁스하고 떠난 40일간의 산티아고 순례

아침에 가톨릭 미사가 없어서 나와 줄리엣은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물론 8시 반, 아침 기도에는 늦지 않았다.

어젯밤 늦게까지 십자가 앞에서, 오늘 아침 기도에서도 계속 떠오르는 말은 "사랑한다. 내가 너를 많이 사랑한다." 본격적으로 성당 활동과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26살부터 지금까지, 아니 내발로 처음 성당에 돌아왔다고 생각했던 22살 때, '마음의 평화'를 찾아 성당으로 올 수 있도록 '먼저 불러주신 것'도 그분이 아니었을까. 내가 가장 낮은 곳에서 허우적 댈 때 미국 교환학생이라는 빛나는 1년의 시간을 선물해주신 것도.

지난 10년간 꿈을 좇아, 돈을 좇아, 방향을 못 잡고 그저 치열하게만 살아왔던 날들. 그 시간들에 일어났던 수많은 일들과 상처 속에서도 나를 끝까지 사랑해주신 그분을 나는 믿게 되었다.


| 프랑스 떼제의 성삼일()_성토요일

평소처럼 아침 기도 후에 빠르게 식사를 하고 수사님과 함께하는 성경공부에 갔다. 내일 새벽 6시 반부터 있는 '부활을 기념하는 영성체 예식' 후에 바로 떼제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서 모두 함께 나눔을 할 수 있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하셨다. 마지막 나눔의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신 요한복음(John 20.11-18)의 장면이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John 20.18)"


수사님은 떼제의 아름다운 자연과 웃어주고 배려해주는 사람들, 말씀과 기도, 묵상 안에서 살아가다가 현실로 돌아가면 어떨 것 같냐 질문을 던지셨다.

4월 떼제의 나무 꽃다발

전 세계 어디서나 현실은 늘 차갑고 냉정해서 떼제에서 처럼 누군가에게 웃어줬다가는 오히려 큰 오해를 받을 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늘 그렇듯 재밌게 말씀을 이어가셨다. 떼제에 있다가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라고, 어느 누구도 이 소중했던 시간을 빼앗아 갈 수 없을 거라고, 비록 조금씩 기억이 사라지고 편집되겠지만, 그리고 여전히 현실은 차갑고 냉정하겠지만 여러분들이 변했으니, 세상도 아주 조금은 변한 거라고. 


언젠가 또다시 삶이 힘들어질 때, 연인과 헤어지거나, 직장을 잃었거나, 인생이 바닥을 쳤을 때, 떼제를 기억해달라고. 우리의 시간을 기억하고 그것도 안 되면 다시 찾아달라고. 물론 새로운 가족과 오는걸 더 환영한다고. 


수사님은 끝까지 유머를 잃지 않으시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서 떼제에서 배운 것들을 실천해달라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전해달라고 하셨다. 웃기면서도 가슴에 콕콕 박히던 수사님의 말씀도 이제 듣지 못한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부활에 대한 수화를 배우고 우린 다시 흩어졌다.


마지막 예약, '다 이루었다'
떼제의 아름다운 4월 벚꽃

마지막까지 변함없는 '사랑합니다 그룹'의 나눔 시간, 'fifteen-fifteen(15시 15분)'전까지는 늘 그렇듯 나만의 시간이고 '일정 예약의 시간'이었다. '떼제 침묵 피정-아를-바르셀로나-산티아고 콤포스텔라-마드리드-뮌헨-파리-한국'일정이 어제 완성되었고 마지막으로 콤포스텔라와 마드리드에서 묵을 숙소까지 예약을 마쳤다. 드디어 모든 일정과 예약이 끝났고 변수가 생겼을 때만 잘 대처하면 될 일이었다. 감사의 화살기도를 드렸다. 마지막 그룹 나눔을 이렇게 감사의 마음으로 준비할 수 있음에 또 한 번 감사했다.  


마지막 그룹 나눔 주제
'누구를 찾고 있느냐?'
4월의 떼제

우리 '사랑합니다 그룹'은 또다시 떼제의 자연 속으로 들어가 마지막 나눔을 준비했다. 모두가 실감 나지 않는다고 말하며 시작부터 눈시울을 붉혔다. 우는 건 맨 마지막에 하자고 줄리엣이 프랑스식 유머를 날리고 나서야 모두 진정을 하고 오늘의 말씀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요한복음의(John 20.11-18)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시다' 부분을 영어로, 프랑스어로, 독일어로, 스페인어로, 포르투갈어로, 스웨덴어로, 그리고 한국어로 읽었다. 모두가 다른 언어를 쓰면서도 서로 말씀을 이해했다는 성경의 또 다른 장면이 생각난다고 누군가 그랬다. 우리는 틈만 나면 울컥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가겠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John 20.14-16)"

성토요일 일정과 마지막 나눔 묵상지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던 마리아는 예수님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한다. '믿음'이라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수사님 말씀대로 우리 안에 이미 가지고 있었지만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처럼 말이다. 자신을 못 알아보는 마리아에게 직접 이름을 불러주신 예수님, 그제야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 마리아. 그녀처럼 우리가 어떠한 것을 발견하고 깨닫고 온전히 이해하게 되는 것도 그분이 보여주시는 그때에, 불러주시는 때에, 가능한 것 같다고. 아마 그때는 우리가 비로소 모든 것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있을 때가 아닐까. 하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때때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을 겪지. 지금은 아무리 울며 버둥거려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나중에,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 말이야. 그때까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준비하는 거지 뭐. 첫날에 우리가 이렇게 서로 사랑 가득하게 울면서 헤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잖아! 하지만 우리 안에 이미 사랑이 있었고 우리를 이곳 떼제로 불러주신 그분 덕분에 서로를 통해 그분을 만나고 위로받고 이곳으로 불러주신 이유를 이해하게 됐잖아. 처음에는 전혀 못 몰랐지만 말야~하하


나는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구절을 소개하고 뜻을 설명해주었다. '필기 왕' 틸다와 키야는 마음에 든다며 노트에 적어가기까지 했다. 무엇을 찾아 이곳으로 왔든 우리는 사랑으로 서로가 서로의 꽃이 되고 있었다.

떼제 마을 초입

고통스럽고 힘든 상황 후에 새로운 시작을 해본 경험이 있냐는 질문에는 대부분 이번 떼제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사촌을 잃은 지 얼마 안 되어 나눔 때마다 죽음과 가족에 대해 묵상하게 해 주었던 안나, 이직과 이혼,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삼단콤보에 어떠한 나눔에서든 '사랑합니다'그룹을 만나 나눔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눈물 흘리며 마무리하던 마리아, 결혼할 사람을 만난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던 키야, 오래 하던 일을 그만두고 긴 여행을 앞두고 있는 사라, 항상 프랑스식 유머로 분위기 메이커를 해주었던 줄리엣과 유창한 영어와 깊이 있는 나눔으로 항상 모두를 놀라게 했던 피오나까지도, 우리 모두가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있었다.


상처 받은 우리들이 떼제라는 천국에 모여서 함께했던 일주일은 정말 너무나도 큰 축복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예수님이 되어주려 했고 상대방을 통해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무진 애썼던 일주일이 지나고 이제 정말 부활절과 함께 시작될 우리 모두의 '새로운 출발'만 남겨 놓고 있었다.


첫날에는 정말 상상하지도 못했다. 우리가 이렇게 깊어지고 서로 사랑하게 될 줄은. 너무 고맙고 평생 잊지 못할 거라고. 늘 우리를 묵묵히 지켜보다 한 마디씩 하던 청일점 토마스 까지도 눈물을 글썽였다. 그늘에 있던 키야는 갑자기 선글라스를 끼고, 나는 햇빛이 많다며 뒤돌아서 자리를 고쳐 앉았다. 태양이 우리만 비추는 듯 정말 너무 밝고 따뜻한 4월의 떼제였다. 

떼제 마을 초입

떼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당연히 우리 '사랑합니다'그룹이라고 입을 모았다. 나는 지난밤 십자가 예식 때 느꼈던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나누었다. '내가 너를 많이 사랑한다'는 말이 계속 떠올랐다고. 그랬더니 키야는 실제로 음성이 들렸냐고 물었다. 나는 아쉽지만 그런 건 아니라고 웃으며 말했다.


키야는 언젠가 주변 친구들은 직접적인 체험으로 그분을 느꼈다는데 자신은 그래 본 적이 없어 서운하다고, 믿음이 약해서 그런 것 같다고 나눔 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신이 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지난밤 십자가 예식 때 앉아서 떼제 노래를 부르는데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와 얼굴을 간지럽혔고 그분의 손길인 것 같아서 눈물 나게 감사했다는 것이다. 우린 '누군가 창문을 연거 아니냐'고 '앞사람이 후~하고 입김을 분거 아니냐'고 장난을 쳤지만 원하던 것을 선물 받은 키야를 축하해주었다.


나의 떼제 이후 일정 확정과 예약을 모두 마친 소식도 축하를 받았다. 바르셀로나에서 온 마리아는 자기네 집에서 자도 되는데 왜 돈을 썼냐며 아쉬워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일주일 후에 바르셀로나에서 만나기로 했다.


일 년에 한 번씩 떼제로 모이자는 둥, 일 년에 한 번씩 각 나라에 가자는 둥, 아니 그러면 10년 넘게 걸리니까 한 달에 한 번 이어야 한다는 둥,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나눔을 마무리했다. 한국에 돌아온 지 6개월이 넘은 지금, 우리는 종종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수사님의 말씀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떼제에서 배우고 느꼈던 것들을 실천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성토요일_'파스카 성야, 빛의 예식'

부활 전, 고해성사를 보는 사람들

시간은 금방 흘러서 8시 반 '저녁기도 시간'이 되었다. 부활 전 마지막으로 고해성사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어 기다리는 줄이 아주 길었다. 원하면 수사님들과 상담도 할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의 마리아와 왼쪽 계단 옆에 앉았는데 바로 그 앞에서 고해가 진행되어 자꾸 나를 부르시는 것 같았다. 산티아고로 떠나올 때 한국의 한 신부님이 '산티아고 간 김에 고해 한번 하고 와야지'하셨던 것도 자꾸 생각났다. 하고 싶은 마음은 계속 들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더욱 열심히 노래만 부르며 파스카 성야 예식을 기다렸다.

'모든 것은 바뀔 수 있다'는 것 받아들이기. 사람도, 시간도, 기억도.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어둠 또한 그냥 지나가게 두기.

'시간이 지나면, 내가 알 때가 되면, 준비가 되면 알려주실 거야. 이해되지 않던 상황들이 온전히 이해되는 때가 오겠지. 이번 여행처럼 내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나에게 필요한 것을 챙겨주시는 그분만 보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되는 거야. 사람이 변해도. 기억이 변해도. 계획이 변해도. 그분 빼고는 모든 것이 변하고. 변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거니까. 이 모든 것들을 그냥 받아들이자.'

파스카 성야, 빛의 예식

11시가 가까이 돼서야 부활의 빛을 향해 성당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거의 뛰다시피 밖으로 나갔다. 나오다가 틸다와 세라를 만나 같이 뛰었다. 어둠을 지나 하나의 불빛만 따라갔다. 한참을 가니 공터에 모닥불이 준비되어 있고 떼제의 상징 '예수님과 사도' 성화가 가운데 놓여있었다. 수사님들의 말씀선포와 침묵 중에 묵상 시간이 이어졌다. 모닥불을 보니 나는 또 베드로 사도와 예수님의 이야기가 떠올라 울컥했다.


감기가 걸려 하루 종일 루돌프 사슴코로 지냈던 틸다는 모닥불이 점화되자마자 내일 새벽에 있을 부활 예식을 위해 먼저 들어가겠다고 했다. 세라도 11시 반 정도에 도저히 추워서 안 되겠다며 들어가고 나 혼자 남아서 보는데 12시 가까이 되니까 수사님들도 하나둘 들어가셨다. 약속한 것도 아닌데 옆을 보니 홍콩 친구 리타가 열심히 모닥불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숙소로 향했다.  


밤엔 많이 쌀쌀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뜨거운 물로 'hot shower'가 절실했던 이날 밤, 샤워장에 차가운 물만 나와서 모두가 제대로 씻지 못했다. 그런데도 모두가 별말 없이 각자의 방식대로 씻고 침대로 돌아갔다. 따뜻하지만 추운, 춥지만 따뜻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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