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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빛, 프랑스 떼제의 부활 대축일

깁스하고 떠난 40일간의 산티아고 순례

새벽 6시 반 '부활절 영성체 예식'에 참여하기 위해 숙소는 한 시간 전부터 전쟁이었다. 어젯밤에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아서 대충 씻고 잤던 많은 사람들이 새벽부터 샤워를 하려고 줄을 섰다. 하지만 여전히 따뜻한 물은 나오지 않았다. 고양이 세수를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성당을 향해 나섰다. 아직 밖은 어둑했다. 


우리는 성당 가는 길에 어제 배운 수화를 연습해 보았다. "Christ is risen!", "He is risen indeed!" 


| 프랑스 떼제의 부활절 

#부활 대축일 'Christ is risen', 'He is risen indeed!'

여러 나라의 말로 적혀있는 부활 인사들

바깥과 비슷하게 어둑한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서 한 명씩 작은 초와 오늘의 말씀, 악보 등 평소보다 많은 것들을 받았다. 특히 어떤 종이에는 각 나라의 말로 '부활 인사말'들이 적혀 있었다. 반가운 한국어도 세 번째로 적혀있었다. '그리스도 부활하셨네', '참으로 부활하셨네!' 그리고 또 한국어가 보였다. 


"평화의 하느님, 부활절 아침에 우리는, 예수께서 끝까지 사랑하시며 아무도 단죄하지 않으셨다는 신비를 묵상합니다. 사랑으로 그분은 미움을 이기셨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기쁨을 우리에게 전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삶을 내어 주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하나로 모으십니다. 교회라는 이 비길데 없는 친교의 공동체로 오늘 우리를 모아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교회는 비록 가난하고 불완전하지만 우리가 인류 가족 안에서 당신 사랑의 표징이 되도록 해 줍니다."


성당 안은 어느 날 보다도 사람들로 가득 찼다. 때문에 우리는 평소 앉던 곳보다 좀 뒤편으로 앉게 되어 아쉬워했었는데 이곳이 오히려 '부활초'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명당이었다.

떼제의 부활초

수사님 두 분이서 거대한 부활초를 들고 입장하셔서 예쁜 꽃 장식 위에 얹으셨다. 우리가 들고 있던 작은 초에도  불이 붙여졌다. 누군가 우리에게 빛을 주면, 우리도 그 빛을 받아 주변 사람들에게 빛을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성당 안에도 조명들이 켜졌다. 모두가 환호하며 외쳤다. "Happy Easter!"


"Christ is risen!", "He is risen indeed!" 영어, 불어, 독일어, 아랍어, 각 나라의 말로 끊임없는 부활 인사가 이어졌다. 한국어를 맡은 누군가가 어설픈 한국어로도 외쳤다. "그뤼쑤도 부활 하숏눼", 떼제의 모든 사람들이 알파벳으로 적혀있는 발음을 따라 외쳤다. "참으로 부활하셨네!" 부활 인사는 우리가 어제 배웠던 '수화'까지 모두가 함께 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평등했고 '하나'임이 느껴졌다.


우리가 부활의 기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 스리랑카에서는 성당에서 폭발이 일어나 20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는 소식이 있다며 수사님께서 기도 중에 함께 기억하자고 하셨다. 모두 숙연해졌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이 불타고 있다는 이야기를 기도시간에 들었던 게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는데 슬프고 안타까웠다.

떼제의 부활 촛불을 밝히다
지난 부활이 생각난다. 세월호 사고가 났던 4월 16일이 부활절이었던 그날. 또다시 올 것 같지 않던 어둠 속에 휩싸였을 때. 누구에게도 의지 할 수 없는 오롯이 혼자였던 밤. 왜 또다시 내 인생에 이런 장난을 치는 건지, 나에게 그동안 느끼게 해 준 건 무엇인지, 신이라는 당신이 정말 있는 건지, 나에게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건지, 너무 잔인하고 끔찍하다고. 너무 혼란스럽다고.

화가 잔뜩 나서 마지막으로 성당에 따지러 갔던 나는 십자가를 보고 눈물이 터져 엉엉 울고 말았다. 자리도 없어서 구석의 간이의자에 앉아 울고 있던 나에게 앞에 있는 아주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그리스도의 빛'하고 돌아보셨던 것. 그리고 초가 없는 날 보며 자신의 초를 기꺼이 내어주셨던 것.

그때, 다시 열심히 살겠다고, 살아 내겠다고 다짐했었다. 어떠한 어둠이 오더라도 말이다. 그런데도 난 너무 쉽게 다시 어둠에 휩싸여 한국을 떠나왔었다. 그런 나를 너무나 섬세한 손길로 이곳까지 이끌어주시고 말을 걸어주시고 위로해주시는 그분께 감사했다. 그리고 다시 결심했다. '꼭 살아내겠다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혹 모든 것이 잘못되어 전혀 예상치 못한 길로 가더라도, 내가 항상 너와 함께 있고, 내가 너의 벗이 되고, 함께 걸어줄 테니 걱정 말아라.'하고 말씀해주시는 것 같았다. 힘들 땐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가도 괜찮다는 것. 크게 심호흡 하기. 잘못된 길은 없다는 것 기억하기. '너의 모든 계획이 다 틀어지더라도 내가 함께 있고 내가 너를 많이 사랑한다.'최소한 이것만이라도 기억하기.


#떼제 수사님의 종신서원식

종신서원식 예식서

끝날 것 같지 않던 부활 인사가 끝나고 이어서 떼제의 수사님 중 한 분의 '종신서원식'이 진행되었다. '종신서원'은 일생을 마칠 때까지 하느님에게 자신을 바치기로 서원하는 일을 말한다. 제3세계 어느 국가 출신이셨는데 부활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종신서원하시는 모습을 보니 뭔가 뭉클했다. 


혼인서약식처럼 평생을 자신을 주님께 바친다는 상징으로 반지를 끼며 예식을 마쳤다. 우리는 '성경공부를 도와주시던 수사님도 반지를 끼고 계셔서 '결혼하셨나?'하고 생각했었는데 종신서원하신 반지였던 것 같다'며 서로 이야기하였다. 평소보다 길었던 아침 기도 시간을 마치고 다 함께 식사를 하러 갔다.

떼제의 부활 노래

#떼제의 부활절 식사

떼제의 '부활식'

아침 메뉴는 여전히 빵과 초콜릿, 버터, 가루 음료들이었지만, 부활절을 기념한 달걀 모양의 초콜릿이 나왔다. 역시 우리만의 제조법으로 언젠가 그리워질 것 같은 '떼제식 아침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이날은 매끼마다 계란이 함께 나왔다. 특히 부활을 맞이해 햄도 나왔다고 다들 아이처럼 좋아했다. 


아침 기도가 너무 일찍부터여서 다들 피곤해했지만 쉴 틈 없이 우리는 수사님과의 정말 마지막 만남을 위해 성당으로 돌아갔다. 수사님은 마지막 일정을 나눠주시고 '할 말은 어제 다 했으니 조심히 돌아가라'라고 하셨다. 마지막까지 유쾌했던 수사님과의 시간을 마치고 사진을 찍거나 수사님과 마지막 인사를 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 사랑합니다 그룹도 인사를 하고 성당 바로 옆 작은 잔디에 앉아 '정말 마지막 나눔'을 시작했다. 


#사랑합니다 그룹의 '정말 마지막 나눔'

우는 건 우리 어제 다 울었으니 그만하자고 해놓고도 돌아가며 한 마디씩 하는데 다들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생각도 못했는데 가장 먼저 집을 향해 출발하는 포르투갈 안나가 떼제 기념품샵에서 엽서를 사서 우리 모두에게 각각 손편지를 써 나눠주었다. 


안나와 마리아가 이제 곧 먼저 떠나고, 그다음에 줄리엣과 틸다, 세라가 저녁에 가고, 독일 삼 남매 키야, 피오나, 토마스가 내일 아침을 먹고 떠나기로 했다. 모두 보내고 내일은 나 혼자 남아 침묵 피정을 시작하게 되는 일정이었다. 생각만 해도 외롭고 두려웠다. 하지만 "언제든 바꿀 수 있댔어~"라고 말하며 애써 웃어 보였다. 다들 "그래 힘들면 바꾸면 되지~! 어땠는지 나중에 꼭 말해줘!"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안나와 마리아를 먼저 보내고 울며 웃으며 한참을 또 이야기하고 있는데 줄리엣과 그녀의 친동생이 나타나 우리에게 갈 곳이 있다며 우리를 일으켰다. 


#서프라이즈 '프랑스 부활절 놀이, 에그헌트'

부활 초콜릿 길과 화살표를 따라서

어디 갔었냐고 했더니 "빨리 오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마음이 급하니 서두르라고 하면서 "햇빛이 갑자기 너무 뜨거워져서 준비하는데 너무 힘들었다. '종'이 없어서 아쉽다"고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떠날 시간이 다 되어 그런가 보다' 하며 따라갔더니 계란 모양의 부활 초콜릿이 풀밭 꽃밭 여기저기 숨겨져 있었다.  

열심히 초콜릿을 찾는 틸다와 피오나

우리는 각자 경쟁이 붙어서 열심히 숨겨진 초콜릿을 찾기 시작했다. 초콜릿들은 모두 한 곳을 향했는데 그 끝에는 거대한 케이크가 준비되어 있었다. 캠핑카로 떼제에 온 어떤 가족이 직접 만든 케이크라고 했다. 풀밭에 또다시 옹기종기 둘러앉아 건강하게 맛있는 케이크를 함께 먹었다. 

떼제의 또 다른 누군가가 만든 케이크

줄리엣과 동생이 우리를 위해 프랑스에서 부활절에 하는 '에그 헌트(부활절 계란 찾기 놀이)'를 경험하게 해 주려고 준비를 하는데 이 모습을 본 할아버지와 그 가족이 함께 케이크를 나눠먹자고 제안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새로 자기소개를 하고 떼제 안에서 서로의 또 다른 가족이 되어 부활을 축하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부활절과 그다음 날인 '부활절 후 첫 월요일(Easter Monday)'까지를 휴일로 보낸다. 프랑스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부활절 아침에는 아이들이 숨겨진 '부활절 달걀'과 '종(bell)'을 찾는 '에그헌트'를 한다. 프랑스에서는 예수님의 수난을 기억하며 성금요일부터 '교회 종'을 치지 않았는데, 아이들에게는 이때 교회의 '종'이 로마까지 날아갔다가 부활절에 돌아오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한다. 이에 부활절 아침에 프랑스 아이들은 로마에서 날아올 종과 부활절 달걀을 찾는 놀이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 이어지는 이별의 시간

이별 선물들과 민들레 홀씨가 된 우리들

이제는 줄리엣, 틸다와도 작별인사를 해야 했다. 줄리엣은 40일간 여행 온 나보다도 더 큰 배낭을 챙겨서 마지막까지 웃음을 주고 떠났다. 틸다, 세라도 차례로 떠나고 키야는 열심히 데이지 꽃으로 작은 선물을 만들어 챙겨주었다. 방에 잠시 들렀더니 내 침대 위에 냅킨에 쓴 편지와 떼제를 상징하는 십자가를 그려놓은 돌이 함께 올려져 있었다. 매일 밤 코를 골며 피곤하게 곯아떨어지던 호주 의사 친구의 선물이었다. 


'우리 모두 하나의 꽃송이로 어울려 살다가, 바람이 불면 '민들레 홀씨'가 되어 온 땅 위에 퍼져간다'는 어느 노래가 떠올랐다.  


# '사랑합니다'유닛과

떼제의 마지막 '부활 저녁 기도'

8시 반 '저녁기도' 시간, 줄리엣이 가장 좋아하던 성화 밑에 나와 키야, 피오나, 토마스, 이렇게 넷이 나란히 앉았다. 성당은 오늘 아침에 비해서 확연히 사람들이 줄었다. 떼제 노래와 말씀선포, 묵상, 평소와 다름없는 기도시간이었지만, 이곳 어딘가에서 함께 기도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던 '사랑합니다 그룹'이 없다는 것은 큰 차이라고 서로 조용히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한편으로 난, 지금 내 옆에 있는 이들도 떠나면 내일 저녁기도 시간에는 온전히 혼자가 될 것을 떠올렸고 벌써부터 외로움과 슬픔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언제나 큰소리로 부르던 키야의 떼제 노래와 조용히 묵상하다 눈물을 흘리던 피오나, 언제나 존재 자체로 든든했던 토마스까지,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하늘색 키티 양말을 신고 발가락을 까딱까딱 움직이며 장난을 치던 키야가 갑자기 "앗,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야"라며 크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번 부활 주간 떼제에서는 특히 독일인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아마 그래서 독일어로 떼제 노래를 여러 곡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 


키야의 노래에 대한 화답송으로 나는 한국어로 '사랑의 나눔'이라는 제목으로 불리는 'Ubi caritas'를 한국어로 불러주었다. 피오나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떼제 노래'라며 한국어로도 불러주어 고맙다고 '사랑'이라는 단어는 알아듣겠다며 웃었다. 이날 우리는 밤늦게까지 성당에 남아 함께 떼제 노래를 끝없이 불렀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또다시 떼제의 첫날 만났던, 그 '주황색 뽀글 머리 봉사자'를 만났다. 그녀는 이제 침묵 피정을 마치고 내일 오전 떼제를 떠난다고 했다. 나는 너무 고마웠고 큰 힘이 됐다고 특히, 십자가 예식 때 건네준 편지는 정말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도 이제 내일부터 침묵 피정에 들어간다고 했다. 그녀는 "그럴 줄 알았다"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분이 너를 또 채워주시고 치유해주실 거라"고 이야기해주며 특유의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우리는 이메일 주소를 교환하고 서로 꼭 안아주고 헤어졌다. 


이전 20화 떼제의 성토요일_파스카 성야 '누구를 찾고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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