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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프랑스 떼제의 평범하게 아름다운 날들

깁스하고 떠난 40일간의 산티아고 순례

6:30 AM

격정적인 날을 보낸 덕분인지 오랜만에 꿀잠을 잤다. 7시 30분에 있다는 가톨릭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 6시 반에 일어나 씻으러 가는 길에 마주친 풍경.

떼제의 일출

핑크빛 일출로 떼제의 하루가 밝아오고 있었다. 알싸하게 차가운 온도와 촉촉한 공기, 새들의 쉴 새 없는 노래와 핑크색 하늘빛이 어우러졌다. 이 아름다운 풍경만으로도 치유받는 것 같았다.

떼제 아침 풍경 영상

멈춰 서서 한참을 해가 떠오르는 쪽을 바라보며 크게 심호흡해 공기를 들이마셨다. '들이마시고, 내쉬고, 들이마시고, 내쉬고' 이제 정말 살 것 같았다. 이제야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 다시 숨 쉴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여기 서 있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중얼거리며 성호경을 그었다. 눈물이 고였다. 


| 미사와 하루 세 번의 기도, 성경공부가 진행되는 '성당'

성당(Eglise Church)

나와 줄리엣은 거의 매일 눈 비비며 일어나 7시 반 가톨릭 미사를 보러 성당으로 향했다. 떼제에는 가톨릭뿐 아니라 개신교, 정교회, 무교 등 종교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아침 미사는 성당에 파티션을 세워 소박하게 진행된다. 하지만 나이와 국적을 불문한 사람들이 매일 아침 그 공간을 꽉 채웠다.


미사가 끝나면 바로 파티션 너머로 가서 8시 15분부터 진행되는 수사님들의 아침 기도시간에 함께했다. 역시 매 기도시간마다 그 넓은 공간이 꽉 찼다.

떼제의 아침 기도 시간

처음에는 작은 예배당에서 시작됐지만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면서 조금씩 성당을 넓히고 있다고 했다. 부활전, 고난주간에는 특히 독일인들이 많았는데 대다수가 유럽인들이었다. 서양인들이 바닥에 아빠 다리로 앉아서 1시간이 넘게 이어지는 기도시간 내내 진지한 표정으로 절실하게 기도하는 모습은 정말 새로운 풍경이었다.

성당 내부, 아침 기도 후

아침, 점심, 저녁 기도시간은 '떼제 노래'로 자연스럽게 시작된다. 수사님이 노래의 시작과 끝을 리드하면 사람들이 따라 하며 몇 마디 안 되는 짧은 떼제 곡을 다 함께 반복해서 부른다. 10번 넘게 한곡이 반복될 때도 있다. 종종 클라리넷, 바이올린, 기타, 플루트 등의 악기가 합주될 때도 있지만 대부분 다양한 사람들이 내는 다양한 음역대의 목소리와 수사님의 작은 오르간 소리만으로 아름다운 노래가 만들어진다.

떼제 노래집

가사는 성경말씀과 관련되어 있는데 떼제 책 안에는 노래마다 여러 나라의 언어로 가사가 가득 적혀있다. 한국어가 적혀있는 노래들도 8곡이 수록되어 있었다.

매 시즌 바뀐다는 떼제의 알록달록 촛불 장식

떼제 노래로 마음을 열면 '말씀선포'가 시작된다. 수사님들이 프랑스어, 영어, 독일어 등 여러 나라의 언어로 성경의 같은 구절을 읽어준다. 그리고 침묵과 함께 묵상과 기도, 떼제 노래가 다시 이어진다. 한 시간 정도의 아침 기도시간이 끝나면 숙소 옆으로 돌아가 빠르게 아침을 먹고 다시 성당으로 돌아온다.


10:00 AM
Bible Reflection_성경공부?인생공부!
떼제 성당 안의 또 다른 모습

그 사이 성당은 봉사자들에 의해 칸막이로 나뉜다. N, M, K 등 각각의 출입문으로 들어가면 연령대별로 나뉜 공간에서 '성경 묵상과 나눔(Bible reflection and sharing)'시간이 동시에 시작된다. 각 연령대마다 떼제 수사님 한 분이 들어오셔서 그날 생각해볼 주제를 성경을 통해 제시하고 묵상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다.


첫날의 주제는 'Discover the source of Hospitality in God(주님 안에서 환대의 원천을 발견합시다)'였다. 어색한 번역투의 한국어 안내문이 재밌게 느껴졌지만 묵상할 질문들은 심오했다. 루카복음 15장의 '되찾은 아들의 비유(Luke 15.11-24)', 보통 '돌아온 탕자 이야기'로 불리는 부분을 함께 읽고 나눔 해보자 하셨다.

'내가 지금 내 삶에서 찾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누군가에게 이렇게 환영받아본 적 있는지? 그런 경험으로 놀랐던 적이 있는지? 복음의 작은 아들처럼 다시 돌아와 본 경험이 있는지?' 내 얘기 같아서 질문만으로도 울컥했는데 수사님의 이런저런 추가 질문들을 듣다 보니 마음이 복잡해지고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매일 아침 이렇게 묵상 거리들을 받아 들고 각자 자유로운 방식으로 개인 묵상을 한 뒤에 오후에 그룹별로 모여 나눔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 같은 시간에 모여 수사님과 함께 각 그룹별로 나눈 이야기들을 종합하면서 깊이 있게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과정을 거친 뒤, 그날의 새로운 주제를 받는 방식이었다.   

성경 묵상이 끝나면 오후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에 대해서도 안내한다. 성가 연습, 다양한 주제의 세미나, 그림 그리기, 만들기 등의 워크숍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물론 아무것도 안 하고 떼제 마을 곳곳을 걸어 다니거나 풀밭이나 호숫가 앉아 정말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았다. 월요일, 첫날은 그룹을 정한 뒤 '오후 3시 15분(fifteen fifteen)'에 숙소 앞 잔디밭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나는 휴대전화 개통을 확인하기 위해서 와이파이가 되는 오약으로 갔다. 

가는 길에 확인하는데 밀린 깨톡도 보이고 성경 애플리케이션도 실행되는 게 휴대전화가 개통된 것 같았다. 드디어 개통 성공 문자도 와 있었다. 유심 구매를 대행해준 한국 업체에서도 카톡으로 주말 동안 했던 문의에 대한 답변들이 와있었다. 유심 개통은 업무시간에 이루어 지기 때문에 주말이라 개통이 안된 것 같으니 기다려보라는 것이었다. 골치 아픈 문제가 해결되니 속이 시원했다. 바로 한국 부모님께 전화로 기쁜 소식을 알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12시 20분, 낮 기도를 위해 성당을 향했다. 모든 것이 다 감사했다. 감사기도(?!)를 마치고 식사 장소로 향했다.  


| 떼제의 흔한 식사시간

식사시간에 펼쳐진 모자의 즉흥 공연

아침 기도 후에 아침식사가 제공되고, 점심 기도 후에 점심식사가 제공된다. 저녁만 7시로 정해져 있고 저녁식사 이후가 기도시간이다. 첫날 저녁의 충격적인 콩죽인지 곡물 비빔인지 알 수 없는 음식에 이어 떼제의 식사들은 충격적일 정도로 '단순하고 소박하게' 나왔다. 


특히 아침에는 빵, 버터, 초콜릿, 각종 음료 가루, 뜨거운 물이 전부였다. 그런데 신기한 게 '나중에는 이 아침이 가장 맛있고 그립다'는 떼제 다경험자 줄리엣의 말이 맞다는 것이었다. 

떼제식

바게트 빵에 버터를 고르게 바르고 기호에 따라 잼도 바른다. 빵 사이에 초콜릿 2개를 넣어 샌드위치 하면 완성! 커피가루와 뜨거운 물의 양도 떼제를 떠날 때쯤 되면 자신만의 황금비율을 완벽하게 맞출 수 있는데 달콤하고 고소한 샌드위치와 함께 먹으면 정말 맛있다. 가끔 질 좋은 치즈라도 나오면 요즘 말로 'JMT' 꿀맛이다.


물론 떼제는 참가자들이 나라와 나이에 따라 내는 참가비만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이렇게 먹을 수 있는 것도 감사한 일이었다. 참고로 기부금 형식으로 내는 참가비에는 하루 세끼 식사와 숙박비가 모두 포함되는데 처음 8박 9일 일정에 내가 제안받은 금액은 프랑스 다른 지역의 하룻밤 숙소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식사 후에 열린 즉흥 공연

밥을 먹고 나면 매번 이렇게 즉흥 공연이 펼쳐졌다. 내 첫 떼제 생활을 이 독일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던 건 행운이었다. 하프를 연주하는 엄마와, 클라리넷을 부는 경찰 아들, 기타를 치는 아버지가 함께 떼제에서 부활을 맞기 위해 캠핑카를 끌고 왔다고 했다. 이 가족의 연주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거나, 노래로 참여하거나, 박수를 치거나 각자의 방식으로 호응을 했다. 덕분에 매 식사시간은 천국이 되었다. 


아침부터 미사도 드리고, 기도도 하고, 밥도 먹고, 무엇보다도 나를 지옥에 빠뜨렸던 '핸드폰 문제'까지 해결되고(정작 쓸 일은 별로 없었지만;;), 정말 천국이 찾아왔다.


밥을 먹고 그룹 나눔으로 약속한 'fifteen fifteen(15:15)'까지는 온전한 혼자만의 시간이다. 물론 혼자 다녀도 좋고 함께 다녀도 좋다. 떼제에 '해야만 하는 것'은 없으니까. 


나는 혼자서 천천히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뜨거운 햇빛을 피할 수 있는 작은 오두막을 발견하고 아지트로 삼았다. 작은 의자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보는데 알 수 없는 새소리와 바람에 흔들리고 햇빛에 반짝이는 연두색 나뭇잎이 천국의 것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가만히 앉아있다가 오늘 받은 묵상 말씀 종이를 꺼냈다.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루카 15.20)"

자기 몫을 챙겨 집을 나갔다가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작은아들. 돌아왔지만 멀리서 아버지 눈치를 살피고 있는 그 모습이 나와 겹쳤다. 돌아오려고 결심했지만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가엾은 마음으로 먼저 달려가 안아주고 환영해준 사람, 내가 떼제에 오던 날 만났던 주황색 뽀글 머리 봉사자가 생각났다. 


이어지는 질문, "What am I looking for now in my life?" 나는 무엇을 찾기에 그렇게 원하던 방송일을 때려치우고 홍보대행사로 이직을 했으며, 또 무엇을 위해 그 어려운 결정을 뒤엎고 1년 5개월이라는 애매한 경력과 함께 퇴사를 한 걸까? 무엇을 위해 봉사하고, 무엇을 위해 이곳에 왔을까. 또다시 눈물이 났다. 내가 모든 것을 잃었든 어쨌든 간에 내 존재 자체만 보시고 꼭 안아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 봉사자는 처음 보는 사람을 어떻게 그런 진심 어린 표정으로 맞을 수 있었을까. '처음 떼제에 왔던 나 자신이 생각나서 그래' 봉사자의 말이 맴돌았다. 그녀의 엄청난 환대에 오히려 좀 놀랐지만 그 손길을 받아들이고 나서 아이처럼 품에 안겨 울었던 내 모습도 생각났다. 폭풍 같은 날들 후에 만난 떼제는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여기에서 쉬어. 너를 있는 그대로 환영하고 안아줄게'라고 하는 것 같이 너무 평온하고 아름다웠다. 


3:15 PM
Group Sharing_그룹 나눔

세계 곳곳에서 온 또래 친구들의 상황도 비슷했다. 나랑 동갑인 세라는 병원에서 방사선 치료사로 일했다고 한다. 다니던 병원을 그만두고 떼제에 왔으며, 떼제를 시작으로 6개월간 아프리카 등지를 여행하고 캐나다로 돌아갈 거라고 했다. 독일에서 선생님 겸 빅사이즈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키야는 오래 만나던 사람과 결혼까지 고민하다가 헤어지고 떼제를 찾았다. 키야의 부모님도 떼제에서 만나 결혼하셨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온 마리아는 패션 디자이너로 이탈리아에서 일했다. 그녀는 업계의 불합리함을 못 견디고 고향으로 돌아와 초등학교 보육교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2019년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30세부터 35세까지, 나라는 다르지만 'Young Adult(어른 아이)', 줄리엣이 이름 붙이기로는 'Baby Adult'인 우리는 어른이지만 아직은 미숙했고, 아이 같지만 나이로는 이미 어른에 속하는 여기도 저기도 끼지 못하는 상태였다. 떼제에서도 우리는 30세 이상 그룹에 속해 식사를 했는데 그중에서는 나이가 어려서 배식이나, 청소 등의 봉사활동 당번에서 제외되었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못한 'Young Adult', 'Baby Adult'인 우리는 저마다의 무언가를 찾기 위해 떼제로 모였다. 그런 우리에게 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단순하고 소박한 삶 속에서 그냥 쉬라고. 달려와 우리를 환영하며 안아주는 것이었다. 

포르투갈에서 성당 중고등부 교사로 아이들과 함께 온 '안나', 독일 선생님 '키야', 프랑스 사서 '줄리엣', 독일 영어 선생님 '피오나', 스웨덴 간호사 '틸다', 캐나다에서 온 '세라', 스페인에서 온 자매, 또 다른 '안나'와 언니 '베로니카', 여기에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 '마리아', 독일에서 온 청일점 '토마스', 그리고 나까지 한 그룹으로 떼제의 부활을 기다리며 묵상과 나눔을 함께했다. 


틸다와 세라는 개신교였고 나머지는 가톨릭이었지만 떼제에서 이런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기도를 하고 식사를 하는 잔디밭이나 그 뒤편의 언덕에서 주로 나눔을 했다. 각자의 다른 생각들은 깊은 묵상과 열심한 토론으로 서로에게 공유되고 이해되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예수님이 되어주고 있음을 매 그룹 나눔 시간에 느낄 수 있음에 진심으로 서로 감사해했다. 이 나눔은 아직도 종종 이어지고 있다. 


둘째 날, 화요일의 주제는 'Be attentive to Christ's presence in our lives(우리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에 주의를 기울입시다)'였다. 요한 묵시록 3장 '라오디케이아 신자들에게 보내는 말씀(Revelation 3.14-22)'를 읽고는 'lukewarm(차지도 뜨겁지도 않음)'에 대한 열띤 토론이 있었다. 

둘째 날 말씀과 묵상 주제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묵시 3.15-16)"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묵시 3. 20)"


신은 단호하고 무서운 모습으로 미지근한 태도를 버리고 뜨겁거나 차갑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미지근한 것보다 오히려 차가운 것을 선택하라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동양문화권의 '중용'개념부터 스웨덴 사람들은 날씨만큼이나 차갑고 이성적이라는 말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우리의 결론은 "'lukewarm'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태도' 아닐까"였다. 인생의 문제들에 대해 아무런 결정, 선택도 하지 못한 채 주저앉아 불평만 늘어놓을 때가 있다.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과감하게 받아들일지 거부할지 선택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 슬퍼하고 힘들어하면서 가만히 멈춰있지는 말라는 말씀이 아닐까. 

셋째 날 말씀과 묵상 주제

포르투갈인 '안나'는 그 험한 인생길을 나 혼자 돌 맞으며 걷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지만 신이 나를 안아 들고 더 많은 돌들을 대신 맞아주며 함께 걷고 있는 이미지에 대해 말했다. 신은 언제든 도와주려고 옆에서 기다리며 말을 거는데 우리가 늘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도 깁스를 하고 여기까지 온 길에 대해 말했다. 두려움을 이기고 자존심을 내려놓고 도움의 손길을 받아들이는 법, '감사하게 받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건 자연스럽게 세 번째 주제와 연결됐다. 마태오복음(Matthew 11.25-30)의 'Welcome our gifts and our limitations too(우리의 은사와 우리의 한계를 받아들입시다)'였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태 11. 28-30)"


나의 약함, 단점, '멍에(Yoke)'들이 오히려 신과 가까워지게 하는 것 같다. 우리는 주로 힘들 때 신을 찾으니까. 내 한계까지 감사하는 일은 너무 어렵지만 이런 멍에를 어깨에 메고 신과 함께 걷게 된 것은 감사할 일이다.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이 아니라 나 같은 모지리, 철부지들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여주시는 주님 안에서 나 스스로가 먼저 자신의 단점과 약함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우린 자기 자신에게 너무 냉정하니까.  

떼제 '사랑합니다' 그룹

우리 한 명 한 명은 얼마나 다른 지, 열띤 나눔을 하고 나면 항상 그만큼 생각도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는 나눔을 마치면 '사랑합니다'로 마무리한다고 알려주었더니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사랑합니다' 열풍이 일었다. 우리 그룹은 '사랑합니다' 그룹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이름대로 서로 조금씩 마음을 열고 사랑하게 되었다. 7개 나라 10개의 도시에서 떼제로 모인 우리들은 묵상과 나눔을 통해 한 형제자매가 되었다.


8: 30 PM
저녁기도

우리는 종종 워크숍을 다 빼먹고 티타임 시간과 저녁 식사시간까지 함께하며 나눔을 이어갔다. 나눔을 시작하고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8시 30분, 저녁 기도 시간이었다. 저녁기도는 보통 9시 반에서 10시 사이에 끝나는데 그 이후 시간은 무엇을 하든 역시 자유다. 10시 반까지 운영하는 매점, '오약'에서 피자에 맥주를 먹을 수도 있고 일찍 잠자리에 들 수도 있고 성당에 끝까지 남아있기도 한다. 


이 '단순하고 소박한', 그리고 '은총 충만한' 시간들이 반복되면서 내 마음도 안정을 찾아가고 치유되어 갔다. 다만 '다음 주에는 어디로 가지'하는 물음이 종종 떠올라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이번 편은 말씀으로 저에게 매일 말을 걸어주시는 신의 디테일한 손길을 느꼈던 떼제에서의 말씀과 묵상에 대한 기록이라 조금은 조심스럽네요. 하지만 떼제에서 그랬던 것처럼 종교를 떠나 우리를 이 세상에 오게 한 어떤 존재에 대한 이야기,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주세요. 늘 신은 이렇게 우리 마음을 두드리죠. 여기에 응답할지, 그냥 지나칠지 또한 우리의 선택이구요. 'lukewarm'하지말고 선택하는 삶을 살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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