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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루르드에서 보낸 사순시기와 십자가의 길

깁스하고 떠난 40일간의 산티아고 순례

깨똑> 수녀님! 오늘 맛있는 집밥에 물통까지 넘 감사하고 완벽한 하루였어요! 따뜻한 시간이었구요!! 우체국 가서 무사히 물도 보냈어요=) 그런데... 제 가방에 방수신발 가져갔다가 도로 가져와 버렸지 뭐예요;;; 저 내일까지 이 숙소에서 자기로 했어요! 내일 시간 가능하실 때 제가 찾아뵐게요!!

Re> 낼 아침 8시에 성체조배실 미사 갈까 해요. 지금처럼 비가 많이 오면 늦게 갈 수도 있구. 오늘 넘 많이 걸은 것 아녜요?! 우선 푹 쉬어요~
루르드의 아침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물 부치기 미션'에 너무 심취해서 그런지 정작 수녀님을 찾아뵙는 핑계였던 '방수 신발'을 도로 가방에 가져왔다. 덕분에(?!) 한 번 더 수녀님과 만나게 되었다. 성지 안의 Adoration이라는 곳으로 성체조배실처럼 쓰이는 작은 성당에서였다. 지난밤에 천둥번개와 함께 비가 미친 듯이 와서 수녀님을 만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침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끔한 하늘이 나타났다.

루르드 성지 'Adoration' 성체조배실

수녀님과 함께 오전 8시 미사를 드리고 방수 신발을 드디어! 돌려드리고 또 한 번 감사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었다. 그리고 내일 만날 것처럼 "또 봬요."하고 작별 인사를 했다. 이렇게 하면 정말 언젠가는 또 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평소처럼 수녀원 숙소로 돌아가서 빵과 커피로 아침을 먹고 잠시 쉬며 침대에 누워 떼제에서 메일이 왔는지 체크했다. 역시나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지난 메일을 다시 한번 꼼꼼하게 읽어봤다. '일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머물 수 있다면서 부활 주간에는 특히 '부활 첫 월요일(Easter Monday)'까지 머물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런데 날짜가 잘못 표기되어 있어서 나는 기존의 원칙대로 '일요일부터 일요일까지'만 예약을 했던 것이 그제야 눈에 띄었다. 다시 떼제 홈페이지에서 예약 날짜를 Easter Monday까지로 변경했다. 메일을 오후 늦게 확인하고 처리하는 패턴으로 봐서 이전 메일은 안 읽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 의도가 전달되어 월요일까지 묵게 된다면 감사할 일이고 그게 어렵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길 뿐이다. 


마지막이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떼제 예약 건을 처리하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 예산을 정리했다. 한국을 떠난 지 10일째, 준비해 간 현금도 다 떨어지고 생각보다 프랑스에 있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미리 환전을 해놓은 멀티 체크카드로 한 달을 버티기가 어려워 보였다. 이리저리 계산을 마치고 오후에 ATM기에서 생활비를 좀 더 출금하기로 하고 숙소를 나섰다. 


| 성 비오 10세 성당의 국제 미사

성 비오 10세 성당 국제 미사

수녀님이 오전 9시에 '성 비오 10세 성당'에서 국제 미사가 있으니 루르드를 떠나기 전에 꼭 가보라고 말씀하신 것이 기억이 났다. 애칭으로 '방주 성당'이라고 부르는 그곳으로 향했다. 엄청나게 넓은 그곳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미 미사는 시작되고 있었고 나는 자리를 찾아 천천히 안쪽으로 내려갔다. 

성 비오 10세 성당 제대

휠체어를 탄 환자들과 봉사자로 보이는 어린 학생들, 나이 지긋하신 분들까지, 각 지역이나 단체를 상징하는 모자, 머플러 등을 하고 각각 모여 앉아있었다. 신부님들로 보이는 분들도 수백 명이 넘어 보였다. 여러 나라에서 모인 사람들이 함께하는 미사인 만큼 여러 나라의 언어가 들려왔다. 

성찬 전례를 위해 기다리는 봉사자들과 사제들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성체를 모시려면 미사 시간이 정말 길겠다. 성체가 모자라면 어떻게 하지?!'싶었는데 성찬의 전례가 시작되니 수백여 명의 성체 분배자들이 성당 곳곳으로 흩어져서 순식간에 그 많은 사람들이 성체를 모두 모셨다. "모두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는 성경의 오병이어 장면이 떠올랐다.  

미사가 끝나고 빠져나가는 사람들

성당 한 바퀴를 다 돌았는데도 자리를 못 찾아서 가장자리 벤치에 프랑스 아주머니 3명 사이에 끼어 앉게 되었는데 성체분배가 시작되었다. 너무 뒤쪽이라 '성체는 못 모시겠구나'하는데 갑자기 수백 명의 성체 분배자들이 흩어지며 내 바로 앞에서도 분배가 시작되었고 아주머니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성체를 모실 수 있었다. 


남의 나라에서 풀 죽어 구석에 앉아있는 나에게 주님이 직접 찾아와 주신 것 같았다. 묵상을 하며 너무 감사해 또 펑펑 눈물이 났다. 아주머니들이 휴지를 꺼내 주며 "japan? japan?" 하시면서 한참 프랑스어로 대화를 시도하시다가 따뜻한 미소와 함께 나를 꼭 안아주시고는 떠나셨다. 


| 루르드 인파 속에서

성지 로사리오 성당 앞
성모 발현 동굴 앞

미사가 끝나고 그 수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여러 출입구로 빠르게 빠져나갔다. 사람으로 넘쳐나는 성지는 하나의 대형 병동 같았다. 어딜 가도 사람들로 붐볐다. 

신부님과 함께 프로그램을 하는 학생들

인파도 피하고 방주 성당을 도느라 방전된 몸도 추스르기 위해 우선 숙소로 다시 돌아갔다.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쳤는데 학생들도 꽤 많았다. 수녀원에서 함께 묵었던 프랑스 합창단 여학생들이 떠올랐다. 밤새 화장실에서 노래를 부르고 계속 뛰어다녔어도 혼자서 수녀원 한 층을 쓰는 것보단 재잘대는 소리를 듣는 게 났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면서도 사람을 피해 숙소로 도망가는 내 모습이 참 아이러니했다. '사람들 속에서 치이는 건 싫어하면서도 사람을 벗어나서 살 수는 없구나.' 정말 모순덩어리 같다고 생각했다.   

어딜 가나 가득 찬 인파
루르드에서 맞는 여섯째 날,
못다 한 것들

그 넓은 성지가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성지 물 한 병을 뜨는데도 한참이나 줄을 서야 할 만큼 사람도 많아졌다. 이제는 이곳을 떠나야 할 때가 왔음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익숙한 곳을 떠나 미지의 장소로 이동하면서 일어날 일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다시 겁이 났다. 


루르드에서 다음 목적지인 떼제까지는 툴루즈, 리옹을 거쳐, 마콩이라는 곳으로 기차를 타고 이동한 후, 마콩 역에서 40분 넘게 버스를 타고 더 들어가야 했다. 떼제에서 예약 확정 메일이 오지 않아 불안했지만 경유하는 곳마다 쉬어가기로 했으니 떼제 일정이 늦춰지면 경유지에서 좀 더 머물면 될 일이었다. 

루르드에서 떼제까지

쉰다고 들어가서 이것저것 예약하고 경비를 계산하느라 머리를 썼더니 피곤했다. 하지만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자니 또 루르드에서의 마지막 날이 이렇게 지나가는 것이 아깝다고 느껴져 다시 몸을 일으켰다. 큰일을 겪고도 사람은 자신의 본래 성향으로 돌아오는 것 같다. 다리 다쳐 이곳까지 오면서 많이 내려놓고 느긋하게 사는 법을 익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무거운 몸을 일으키는 내 모습에 웃음이 났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루르드에서 못했던 것들을 찾아 숙소를 나섰다. 

루르드의 여섯째 날

마지막으로 성당 앞에서 기록을 남기려고 지나가는 가족에게 사진을 부탁했더니 아주머니가 이제 5살쯤 되어 보이는 자신의 아들에게 카메라를 넘겼다. 성당 꼭대기도 다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뒤로 누울 것처럼 포토그래퍼 흉내를 내곤 이렇게 사진을 찍어주었다. 보고 있으면 고개가 절로 갸우뚱해지는 사진이지만 그래도 홀가분한 표정이 루르드의 첫날보다 많이 밝아 보인다. 


# 루르드 한 바퀴 '쁘띠 기차 투어' 

베르나데트 성녀가 살았던 감옥과 생가, 옛 성들은 구경도 못했는데 그쪽으로 한 번 걸어가 볼까 했지만 아직 걸어서 마을 전체를 돌기는 무리였다. 근처 상점이나 구경하자고 성지 옆문으로 나와보니 성지 안쪽만큼이나 이곳 풍경도 바뀌어 있었다. 상점마다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 성지라기보다는 관광지 같았다. 


성지 옆문 가까이에는 놀이공원에서 볼 수 있는 미니기차가 있었다. '쁘띠 기차 투어'는 성지 옆문부터 출발해서 루르드 베르나데트 성인 박물관 등을 포함해 루르드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이곳에서 선다고 했다. 기차에 몸을 싣고 차가운 바람을 가르니 마지막 날이라는 아쉬움은 바람과 함께 날아가고 그 자리를 감사함이 채웠다.  


깁스를 하고 루르드에 오던 첫날은 너무 답답하고 우울한 마음이 가득했는데 정말 상상도 못 했던 좋은 사람들을 만나 도움을 받고, 이렇게 깁스를 푼 발로 걸어서 루르드를 떠나게 된 것. 떼제 이후에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이 알듯 말듯한 이상한 순례길을 계속하게 된 것. 그냥 다 감사했다. 


# 묵주기도와 십자가의 길

멀리 보이는 십자가와 동굴성당 안의 모습

마지막으로 성모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어서 동굴 성당을 향하는데 십자가의 길이 있다는 산 위의 십자가가 눈에 띄었다. 동굴 성당에도 사람이 늘었지만 여전히 조용했다. 기도를 하려고 묵주를 잡았는데 바로 눈물이 흘렀다. 루르드 첫날의 억울함도 슬픔도 아닌 감사의 눈물이었다. '여기까지 불러주셔서 감사하다고. 여기까지 지켜주셔서 감사하다고.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를 마치니 온몸이 따뜻해졌다. 


동굴 성당을 나서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동굴 성당 오른편에는 아까 봤던 십자가로 이어지는 문이 나 있었다. 비가 오는데도 그쪽으로 향하는 무리들이 눈에 띄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나도 언덕을 향했다. 돌아오는 주일이 주님 수난 성지주일이고 그다음 주면 부활절인 사순시기의 막바지였다.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기에 이만한 날씨와 장소, 상황은 또 없을 것 같았다. '성모님께 묵주기도를 바쳤으니까, 예수님 생각하면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쳐야겠다.' 루르드의 완벽한 마지막 날이었다.   

루르드 십자가의 길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넘어지시고, 못 박혀 돌아가심을 묵상하며 기도를 드리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다. 사순시기면 성당에서 '십자가의 길'기도를 바치곤 하지만 이렇게 마음에 와 닿았던 적이 없었다. 


특히 이번에는 예수님도 세 번이나 넘어지셨고 그때마다 다시 일어나셨다는 부분이 큰 위로와 용기가 되었다. 또 베로니카가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리는 장면과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드는 부분에서는 이 루르드의 마지막 날이 오기까지 내 배낭을 함께 들어준 사람들과 내 눈물을 닦아주던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마음 아프게 감사했다. 

보통 '십자가의 길' 기도는 예수님이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하는 14처까지 바친다. 그런데 루르드 성지의 십자가 길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동굴 앞의 15처까지 조성되어 있었다. 기도를 하며 다 도는데 한 시간이 족히 걸렸다. 내 걸음이 느려서인지 앞서 가던 팀들은 진작에 산을 내려갔고 나중에는 비 오는 산속을 혼자서 헤매는 기분이었다. 마지막 15처 예수님 무덤 동굴을 보고서야 안도감이 느껴졌다. 무덤 동굴 앞에는 사람들의 소망을 담은 묵주와 편지들이 수없이 걸려있었다.   

십자가 길의 끝과 시작

내려오니 비로소 비가 그쳐 가고 멀리서 파란 하늘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다시 발목이 너무 아파왔지만 뭉클하고 상쾌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예수님과 성모님과 함께하는 사순시기가 이제는 더 이상 힘들고 막막하지만은 않았다. 이제야 수녀님이 말씀하신 '그분을 믿고, 그분과 함께, 맡기고 따라가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 사순의 끝, '다 이루었다?!'

오늘의 발걸음 '다 이루었다'

허기가 졌지만 너무 힘들어서 숙소에 돌아와 잠시 쉬기로 했다. 오늘 걸은 발걸음과 이동거리를 보고 '이럴 거면 스페인으로 넘어가 바로 순례길을 걷는 게 낫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마음만은 충만했다. 


내일 체크아웃 때 한꺼번에 결재해야 하는 수녀원 숙소비를 챙겨두고 생활비를 더 인출하기 위해 가까운 ATM을 찾아 나섰다. 엊그제 밥을 먹었던 아시안 푸드 레스토랑 옆에 봐 둔 곳이 있었다. 미리 멀티카드에 충전해둔 유로를 찾기만 하면 되었다. '삑삑삑삑'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갑자기 헷갈렸다. 


'계좌 비밀번호와 카드 비밀번호, 비밀번호가 네 자리인지 00을 붙여 여섯 자리 여야 하는지, 00은 앞에 붙이는지, 뒤에 붙이는지'... 이것저것 눌러보다가 순식간에 카드가 정지되었다. '응?!...' ATM 앞에서 나도 온몸이 정지되었다. 뒤에 줄을 서있던 아저씨에게 순서를 우선 양보하고 기다리면서 수만 가지 생각을 했다. '내일 숙소비 내면 정말 밥 사 먹을 돈도 없는데... 카드도 정지됐으니 어떻게 해야 하지... 휴.. 또 사고 쳤구나...'


차례가 다시 오고, 한국에서 가져간 마스터카드로 인출을 시도해봤다. 결과는 성공! 그런데 한국돈으로 20만 원 정도 뽑는데 수수료가 3만 원이 넘게 나왔다. 밥 한 끼가 넘는 돈이 그냥 없어졌다는 게 속상했지만 이동 편과 숙소는 미리 예약을 마쳤고 당분간 생활할 수 있는 비용은 될 것 같아 그래도 다행이라고 스스로 안심시켰다.  


바로 숙소로 돌아가서 정지된 카드를 풀 방법을 찾아볼까 했지만, 한국은 이미 밤이 늦었고 알아보는 사이에 이곳 식당들이 문을 닫을 것이 뻔했다. 하루 종일 제대로 밥 한 끼 못 챙겨 먹고 루르드의 마지막 밤을 맞는 것이 싫어서 그냥 터덜터덜 걸어 단골집으로 향했다. 주인 부부가 이제는 반갑게 먼저 아는 척을 해준다. 루르드에서의 마지막 저녁이기도 하고 오늘 몸과 마음이 너무 고생했으니 쌀국수 말고 특별한 무언가를 먹고 싶었다.  

루르드 맛집, 뜨끈한 똠양꿍

이번엔 '똠 양 꿍'과 밥, 닭 꼬치도 2개 주문했다. 토마토, 오이 조금과 포도 10알 정도를 서비스로 주셨다. 이 시간에 맨날 오는 옆자리 동네 할아버지와도 인사를 하고 우선 맛있게 후루룩찹찹 그릇을 비워나갔다. 하루 종일 우비를 쓰고 비 맞은 몸에 뜨끈하고 새콤한 국물이 들어가니 살 것 같았다. 달달한 간장소스를 머금은 닭꼬치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허겁지겁 먹는 내 모습을 보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앉으며 어느새 가게는 만석이 되었다.


주인 부부에게 그동안 감사했다고 내일 루르드를 떠나 떼제라는 곳을 향해 갈 거라고 말씀드렸다. 이제 못 보는 거냐며 아쉬워해주신다. 덕분에 그동안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어 감사했다고, 한국에 놀러 오라고, 언젠가 다시 오겠다고, 또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 돌아섰다.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우비를 쓰고 숙소로 향해 나왔다. 

한 걸음 한 걸음에 아쉬움과 그리움이 묻어나 자꾸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돌바닥과 상점들과 성지의 종소리와 촛불들과 하늘과 공기, 모든 것들을 가능한 내 몸에 꼭꼭 담았다.  


숙소에 들어가 습관적으로 메일을 확인했다. 드디어, 마침내, 떼제에서 답장이 와있었다. "14일(이번 주일)부터 22일(부활 대축일 이후 첫 월요일)까지 떼제에 머물 수 있다"는 확정 메일이었다. '카드만 안 막혔어도 완벽한 하루인데...'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지만, 내일 일어나서 카드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어 확인해보기로 하고 일찍 씻고 자리에 들어 잠을 청했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할 일이었다.'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마태 6.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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