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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르드를 떠나 툴루즈로]깁스를 풀고 다시 길을 나서다

깁스하고 떠난 40일간의 산티아고 순례

| 루르드의 마지막 아침산책 (feat. 일출)

루르드의 마지막 아침이 밝아왔다. 수녀원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루르드는 여전히 평화로워 보였다. 아침 안개가 루르드 성지를 둘러싼 산을 또 한 번 감싸고 촉촉해진 공기와 종소리가 마음을 만져주었다. 평소처럼 알람 없이 개운한 아침을 맞으며 성지로 타박타박 아침산책을 나갔다. 

멀리서 떠오르는 태양이 루르드 곳곳을 하나씩 밝히고 있었다. 성수기를 맞이한 루르드에서 이렇게 조용한 시간을 즐길 수 있다니 감사했다. 물 한 통을 가득 뜨고 성지 곳곳에 내 발자국을 남겨두고선 숙소로 돌아 나왔다. 

이별을 앞둔 상대의 표정이 너무나 평온해서 내 마음속까지 이별의 슬픔보다는 평화가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숙소에 돌아와 한국의 카드사에 전화했더니 글로벌 지점 번호를 알려줬다. 어쭙잖은 영어로 여러 담당자들에게 이 황당한 상황을 반복해서 설명했고 드디어 정지된 카드를 다시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수월하게 모든 것이 준비되고 있었다. 


| 루르드에 남기고 온 것들...

루르드에서의 마지막 아침을 먹고 일주일간 작은 방 여기저기 풀어놓았던 짐들을 차곡차곡 배낭에 넣고 정리했다. 정들었던 13번 방. 마지막으로 고난도 침낭 접기까지 마치고 다시 침대에 누워 천창 너머 하늘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한국인 수녀님이셨다. 


"율리안나! 짐은 다 쌌어요?! 기차 시간이 정확히 몇 시라고 했지?! 이따가 우리 집에 들러서 점심 먹고 가요~ 이동하고 그러면 밥도 제대로 못 먹을 텐데... 내가 지금 성지인데 집 가는 길에 연락할게 짐 들고 나와요."


수녀님 댁에 놀러 갔을 때, 가장 먹고 싶은 한식이 뭐였는지 물으셨던 것 같고 된장찌개, 김치찌개, 밥, 그리고 라면, 김치라고 두서없이 말했던 걸 기억하신 걸까. 그 마음이 너무 감사하고 따뜻해서 벌써 배가 불렀다. 

잠시 쉬었다가 숙소의 레바논 수녀님들과도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내 생애 첫 깁스와도 여기서 작별인사를 했다. '침수의 기적(?!)' 이후에는 발이 심하게 아플 때 몇 번 다시 깁스를 했지만 대도시로 이동해야 하는 다음 루트를 생각하면 만약을 위해 깁스까지 챙기기가 오히려 더 번거로워 보였다. 수녀원 쓰레기통에 깁스를 버려두고 집 앞에서 기다리고 계신 수녀님을 만나러 길을 나섰다. 


| 라면 먹고 툴루즈로!

이렇게나 빨리 수녀님의 소담스럽고 아름다운 정원과 고양이 뚱보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여전히 수녀님 댁에서 보이는 피레네 산맥 풍경은 매력적이었고 수녀님의 따뜻한 집밥은 내 영혼까지 채워주었다. 아삭하고 새콤한 김치와 고소한 계란까지 듬뿍 넣은 두 가지 종류의 라면은 눈물 나게 맛있었다. 여기에 밥까지 말아서 배가 터지도록 먹었는데 수녀님은 가면서 먹으라며 과일까지 챙겨주셨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가볼 것. 떼제 이후의 일정은 떼제에 가면 또 알려주실 것임.' 나에게 예수님이 되어준 수녀님의 말을 기억하며 정들었던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이제는 정말 떠나야 할 때였다. 하지만 이렇게 또다시 금방 올 것처럼 웃으며 인사드리고 길을 나섰다. 

이제는 기차 타는 것도 익숙해졌는지 늦지 않고 제대로 타고 루르드 역을 떠나 새로운 세계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떤 사람들을 만나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지, 마음이 다시 간질간질해졌다. 


| 툴루즈(Toulouse)의 첫날밤이란?!

루르드에서 기차로 2시간여를 달려 툴루즈에 도착했다. 성수기를 맞이한 루르드는 비교도 안될 만큼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도심 한복판이었다. 오랜만에 대도시로 나오니 지나가는 버스, 트램만 봐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툴루즈(Toulouse)는 파리, 마르세유, 리옹에 이어 프랑스 '제4의 도시'로 불리는 프랑스 남부 최대의 교통, 산업, 문화의 중심지이며 프랑스 항공우주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가론(Garonne) 강이 도시를 관통하며 고대 로마시대의 유적을 간직한 '장밋빛 도시'라는 애칭도 가지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생 세르냉 대성당(Basilica of St. Sernin)'과 '미디 운하(Canal du Midi)', 2천 년의 역사를 지니는 '캐피톨 광장(La Place du Capitole)'과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자코뱅 수도원(Palmier des Jacobins)' 등이 있다. 특히 '세르냉 성당'은 산티아고 순례길 위의 성당 중 규모가 가장 큰 곳이라고 한다. 
생 세르냉 대성당

숙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용기를 내어 밖으로 나섰다. 루르드에서는 괜찮았던 내 어벙벙한 옷차림 하나하나까지 신경 쓰이고 위축됐다.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다가 순교했다는 세르냉 성인의 유해가 모셔진 자리에 세워진 세르냉 성당은 웅장했지만 공사 중이어서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캐피톨 광장

성당뿐 아니라 도시 전체가 공사 중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곳곳에서 철 구조물과 팬스가 눈에 띄었다. 구글맵이 무색한 순간들이 많았다. 골목을 쭉 걸어 숙소 쪽으로 돌아 나오니 우리나라의 시청광장을 연상케 하는 '캐피톨 광장'이 나왔다. 저녁시간에는 만남의 광장이 되는 듯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때 들리는 휘파람 소리와 "hey baby~ where are you from?!~"

"..." 또다시 겁이 났다. 


소매치기와 집시를 조심해야 한다는 파리에서의 차가움과 두려움이 다시 엄습했다. 저녁이고 뭐고 서둘러 숙소로 돌아오는데 어둑어둑해진 숙소 1층 입구 바로 옆에 술병을 들고 있는 사람들과 이미 취한 사람들이 큰 소리를 내며 떠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숙소 1층에 클럽이 있었다. 밤이 되니 사람은 더 늘어나고 숙소 주변은 온통 쿵쿵대는 음악과 취객들의 소리로 가득 찼다. 

조용히 방으로 올라와 씻고 침대에 몸을 뉘었다. 어제는 분명 성가 소리와 기도소리를 들으며 잠들고 종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깼는데 오늘은 클럽에서 울리는 EDM 소리에 파묻히다니 적응이 되지 않았다. 


좀 더 있으니 더 큰 소리와 시위대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또 다른 창문 앞에 진짜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얼마 전 파리에서 노란 조끼 시위대가 샹젤리제 거리 상점들에 불을 질렀고 시위가 대도시를 중심으로 프랑스 전역에 확산되고 있다는 뉴스를 봤는데 그게 내 숙소 앞이 될 줄이야...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도시가 좋아, 시골이 좋아?" 질문을 받을 때 1초 만에 "시골이지!"라고 답하면서도 "근데 도시랑 너무 멀면 안 돼. 병원도 가까워야 하고 영화도 봐야 하고 뭐 사러 갈 때 넘 멀면 불편하잖아"라고 말하는 나. "왜 꼭 A 아님 B여야 해?! 'A.B'는 없어?!"라며 '관용, 융합' 같은 단어들을 좋아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이게 가능한 일일까. 시험에 드는 느낌이었다. "A야? B야?" 하지만 난 여전히 A의 장점과 B의 장점을 가진 C를 찾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게 있을까?' 하면서도 말이다. 


이전 12화 프랑스 루르드에서 보낸 사순시기와 십자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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