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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루르드에서 만난 '한국인의 밥상'

깁스하고 떠난 40일간의 산티아고 순례

깨똑> "수녀님, 아직 떼제 컨펌 메일을 못 받아서 하루 더 묵기로 했어요! 떠나기 전에 방수 신발 빌려주신 것도 돌려 드리고 인사드리고 싶어요! 편하실 때 연락주심 찾아뵐게요!"
Re> "발은 좀 어때요?"
Re> Re> "덕분에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어젠 일주일 만에 제대로 샤워했어요;;;;"

지난 월요일 출국날 반깁스를 하고 파리, 바욘을 거쳐 이곳 루르드에 올 때까지 제대로 씻지 못했다. 샤워부스나 욕조 밖으로 다친 오른쪽 발을 빼놓고 나머지 부분만 씻는 기행 아닌 기행을 펼치고 있었는데 지난 주말 침수할 때 처음으로 맨다리를 보고 용기를 냈다. 지난밤에는 '완벽한 샤워(?!)'를 할 수 있었다. 일주일 만에 제대로 된 샤워였다. '몸을 온전이 씻을 수 있는 것'도 당연한 것이 아니고 감사한 것이라는 걸 배웠다. 


수녀님께 빌린 방수 신발은 깁스 위로 신기가 어려워서 감사하게 받았으나 쓰질 못했다. 돌려드리고 침수부터 숙소까지 감사한 것들이 많아 인사도 드리기 위해서 수녀님께 연락을 했는데 바로 전화가 왔다. 수녀님 집에서 밥 한 끼 같이 먹자고 하셨다. 전에서부터 밥을 해주고 싶었는데 성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수녀님의 숙소까지 다친 발로 걷다가 탈 날까 봐 이제야 말씀하신다는 것이었다. 벌써부터 마음이 따뜻해지고 감사했다.


| 루르드 성수기? 시즌이 시작됐다!

아침부터 성지 주차장을 꽉 채운 관광버스들

루르드 성지의 분위기는 아침부터 사뭇 달라져 있었다. 주차장을 가득 메운 관광버스들에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내렸고 그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가 성지를 가득 채웠다. 

몰려드는 휠체어들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는 성지라서 그런지 휠체어를 탄 환자들도 많아졌다. 링거를 달고 침대에 누워서 침대째로 이동하는 사람도 보였다. 옆에는 간호사나 의사로 보이는 봉사자들도 함께였다. 


| 한국 수녀님의 '맛있는 초대'

수녀님과 접선장소

오전 11시 40분, 성지 안에 있는 또 다른 성당인 '성 베르나데트 성당(Church of Saint Bernadette)' 앞에서 수녀님 댁으로 함께 갈 또 다른 수녀님을 만나기로 했다. '여기 성당이 또 있어?' 하는 생각으로 찾아가는데 '성당 옆에 색연필 꽂혀있는 곳'이라는 접선장소(?!)가 너무도 명확하게 보였다. 


이곳은 루르드 성지에 어린아이와 함께 온 가족들이 베르나데트 성녀와 성모님의 이야기를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함께 듣고 그림도 그릴 수 있는 곳으로 꾸며져 있었다. 안으로 살짝 들어가 봤지만 인기척이 없어서 벤치에 앉아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수녀님을 기다리는데 조바심이 났다. 그런데 잠시 후 프랑스어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불어인데도 반가운 느낌에 이끌려 살짝 들어가 보니 한국 수녀님이 환하게 웃어주셨다.  


수녀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한참을 걸었다. 성지 안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불어로 대화하시는 수녀님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불어가 참 아릅답구나'라는 걸 느꼈다. 루르드 성지에는 여러 수녀회 수녀님들이 함께하시는 것 같았다. 나를 초대해주신 수녀님은 한국 수녀회에서 파견되신 거고 동행한 수녀님은 해외 수녀회 소속이셔서 여러 나라 수녀님들과 함께 지내고 계시다고 했다. 지름길로 왔는데도 오르막이 계속돼 힘이 들었다. 


피레네 산맥 뷰에 펼쳐진 '한국인의 밥상' 

언덕 위의 피레네 뷰

등산하는 것처럼 헥헥대면서 마지막 계단까지 오르니 아기자기한 정원이 아름다운 수녀님 댁에 도착했다. 들어가서 겉옷을 벗고 창문으로 눈길을 돌리니 피레네 산맥 줄기가 그림처럼 펼쳐져있었다. 평범한 프랑스 시골의 2층짜리 가정집 같았다. 수녀님은 나보다 땀을 뻘뻘 흘리시면서 음식 준비에 한창이셨다. 뭘 도와드려야 할지 몰라서 우물쭈물하고 있다가 주방에서 식탁으로 서빙을 맡아 상차림을 조금 도왔다. 

그렇게 완성된 감동의 집밥! 된장찌개, 김치전, 고기반찬에 각종 나물들, 무엇보다 매콤한 김치와 흰쌀밥! 한식으로 한상 가득 차려졌다. "우와, 우와" 감탄사만 나왔다. 한국 떠나온 지 일주일 만에 보는 한식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함께 기도를 하고 밥을 크게 한 숟가락 '앙' 물고 된장찌개 국물을 떠먹었다. "캬~" 정말 눈물이 났다. 

감동의 밥상

한식만 고집하거나 해외여행에 라면과 김치를 챙기는 사람들은 촌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시간을 통해서 배운건 '나도 영락없는 한국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밥을 먹어야 힘이 나고 찌개와 김치가 있어야 밥이 넘어가는 '밥심'으로 사는 사람 말이다. 좋아 보이는 무언가를 좇는 것보다 나의 정체성을 찾고 인정하는 것 말이다. 


사진에 있는 음식의 절반은 내 뱃속으로 들어간 것 같다. 새 멤버의 등장으로 퇴사하고 발에 깁스를 해가지고 여기까지 온 '이제는 재밌어진 스토리'가 다시 한번 나누어졌다. 침수 때의 이야기와 양쪽 발에 신발을 모두 신고 수녀님 댁에 오게 된 신기하고 감사한 얘기도 나누었다. 수녀님들은 공감해주시고 응원해주셨다.  


"오~ 율리안나가 눈물의 은총까지 받았구나" "율리안나! 이번 여행은 너무 고집 피우지 말고 이끄시는 대로 한번 가봐." 떼제에서 일주일밖에 묵을 수 없다는 메일을 받아서 그다음엔 또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는 내 이야기를 들으시고 수녀님은 "떼제에 가면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또 알려주실 거야. 일단 가봐!"라고 하셨다. "여기서 부활을 맞아도 좋고 이번 주말까지만이라도 있게 되면 근교로 함께 놀러도 가는 건데 아쉽지만..."이라는 말과 함께. 


따뜻한 집밥과 따뜻한 말들을 들으니 앞으로 한 일주일은 안 먹어도 될 것 같았다.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다리가 다친 것도 신이 나를 위해 마련한 큰 계획 안에 들어가는 건 아닐지. '걷기'보다는 '쉼'이 필요했던 나에게 딱 맞춤인 길을 선물한 건 아닐지. 다친 다리 덕분에 이 따뜻한 시간을 선물 받고 모든 것이 감사하게만 느껴졌다. 


| 루르드 고양이 뚱보 

밥 먹으러 온 새초롬한 뚱보

동행해주셨던 수녀님은 후식 요거트까지만 함께한 뒤 떠나셨다. 난 수녀님과 좀 더 이야기를 나누면서 수녀님 댁에 나처럼 밥 먹으러 온 고양이 뚱보에게 점심을 주었다. 뚱보는 내 다리에 몸을 비비며 고맙다는 표시를 하는 듯했다. 바람만 불어도 날리는 털 때문에 어두운 색 바지를 터느라 고생했지만 덕분에 한번 더 웃을 수 있었다.

햇빛이 좋아 먹고 눕는다옹 잘 놀다 가라옹

수녀님은 루르드에 있는 동안은 샘물을 열심히 마시고 샤워할 때도 다친 발에 바르라고 하시면서 한국에도 물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셨다. 우리나라에서도 물을 우편으로 부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루르드에서는 우체국에서 전 세계로 보낼 수 있다고 하셨다. 작은 물통에라도 부쳐달라고 부탁하는 분들도 많다고 하셨다. 


| 미션! 루르드 기적의 샘물을 부쳐라?!

생각해보니 내가 매일 당연하게 마시고 있는 그 물은 '루르드 기적의 샘물'로 전 세계의 환자들이 이곳 루르드를 찾는 이유 중 하나였다. 집에 있는 엄마가 생각났다. '여기까지 함께 오기는 어렵겠지만 이 물을 마시고 바르면 엄마의 병도 깨끗하게 낫지 않을까?' 또 하나의 기적을 바라며 깜짝 미션이 시작됐다.   

성지로 돌아 가는 길 새로 만난 풍경들

수녀님이 빈 물통 하나와 입구에 물이 새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랩핑 할 비닐까지 챙겨주셨다. 우체국 위치와 영업시간까지 확인해주셨는데 한 시간밖에 안 남아서 서둘러야 했다. 수녀님 댁에서 성지로 돌아가서 물을 뜨고 다시 역 근처에 있는 우체국까지 가려면 시간이 촉박했다. 구글맵을 켜고 수녀님께 감사인사를 드리며 문을 나섰다. 

가까이 보이는 요새

동행 수녀님만 믿고 따라와서 그런지 성지로 돌아가는 모든 길이 낯설었다. '루르드에 이런 곳도 있었구나'하며 계속 걸었다. 요새가 가까이 보였고 성지를 흐르는 갸브 드 뽀 강이 나타났다. 지도는 멀리 보이는 다리를 지나면 성지가 나온다고 알려주었다. 루르드에 벌써 5일째였는데 처음 지나는 다리였다. 

루르드 성지 정문

다리를 지나면 천사들의 동상이 지키고 있고 예수님의 십자가 뒤로 성지의 주요 성당들이 나타났다. 이곳이 성지 정문이었고 내가 이전 숙소에서 출입하던 문은 서쪽 문, 현재 수녀원 숙소에서 출입하는 문은 동쪽 문이었다. 수녀님 댁에 안 가봤으면 루르드 성지 정문 쪽은 구경도 못하고 올뻔했다.  

아까보다 사람이 수십 배는 많아 보였다.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학생들부터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까지, 인종도 옷차림도 모두 다양했는데 모두 같은 곳을 향해 가고 있었다. 

로사리오 성당 앞까지 오니까 더 북적북적해진 느낌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성당 오른편의 식수대를 찾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줄을 한참 서야 했다. 우체국 마감시간은 다가오고 내 앞사람은 물통을 수십 개를 가져와서 하나씩 채우고 있었다. 초조해하고 있는데 어떤 인도 아저씨가 찡긋하면서 자리를 양보해주셨고 무사히 통을 채워 우체국으로 향할 수 있었다. 지도에서 우체국까지는 15분 거리라고 나왔지만 이미 무리한 내 발로 걸으려면 30분은 걸릴 것 같았다. 마감시간도 30분이 남아있었다. 


정문을 향해 다시 빨리 걷기가 시작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가득 채워진 물통과 함께여서인지 더욱 힘이 들었다. 하지만 떼제에서 확인 메일이 오면 내일 늦게라도 이동하려고 생각했던 터라 나에게 '내일'은 없었다. 지도만 보고 걸었다. 중간에 지하도와 오르막 계단을 만나 한번 헤맸지만 마감 9분을 남기고 우체국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꽤 많았다. 줄을 서 기다리다가 드디어 차례가 왔다. 나를 본 직원은 다른 젊은 직원에게 나를 토스했는데 그 직원도 영어가 한마디도 통하지 않았다. "코리?!~"하면서 한국으로 보내는 가격을 보여줬는데 이때부터 '몸으로 말해요'를 찍으며 주소를 적고 결제를 했다. 물이라서 뭔가 방수 패드 같은 거라도 넣어줄 줄 알았는데 그냥 상자에 물통을 넣고 테이핑을 했다. 뭔가 불안하긴 했지만 이제 그분 손에 맡길 일이었다. 


우체국을 나서는데 이미 영업 마감시간은 지나있었다. 다시 비가 내렸다. 그래도 미션을 성공했다는 안도감에 웃음이 났다. 

루르드 기적의 샘물, 집에 잘 도착!

세상에서 가장 비싸고 귀한 물통이 한국으로 날아간다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돈도 없다면서 뭣 하러 또 쓸데없는데 돈을 쓰냐"라고 핀잔을 주었지만 사실은 며칠 전에 병원에서 또 수술을 받고 왔다는 말을 그제야 꺼냈다. "그래  고맙다. 근데 그거 어떻게 해야 한다고?! 엄마가 잘 마시고 수술한 부분에 잘 발라볼게~"라며 다소 상기된 목소리가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왔다. 


엄마는 내가 항상 걱정되고 아프다고 하지만 내게는 엄마가 아픈 게 가장 걱정되고 두렵다. 내 발이 침수 예절 후에 기분 탓이든 뭐든 나아진 것처럼 엄마의 병도 이 물 한 통으로 깨끗하게 낫길 진심으로 기도했다. 


| 행복하게 힘든 하루

퀭... 행복하게 힘든 하루였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긴장이 풀려서인지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오른쪽 발목이 다시 너무 아파왔다. 동굴 성당을 잠시 들러 쉬며 성모님께 다시 한번 기도드렸다. 감사하고 간절하다고. 힘든데 행복하다고. 이 모든 시간에 함께 해주시는 것 같아 힘이 된다고. 그리곤 숙소로 돌아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일찍 침대에 누웠다. 


오후 늦게 떼제에서 답장이 와있었다. "머무는 기간은 일요일부터 일요일까지만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즉, 내일 떼제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었다. 다시 바로 답장을 보냈다. "4월 14일 일요일부터 21일 일요일, 부활절까지 머물겠다"라고. 호박고구마를 먹는 것 같은 답답함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제 이 '달팽이 메일', '진심으로 느린 우체통'에도 적응이 되었는지 '내일 오후 늦게나 답장이 오겠군.' 하며 메일 화면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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