깁스하고 떠난 40일간의 산티아고 순례
중국 상해를 경유하는 '인천-파리' 왕복 티켓이 단돈 53만 원! 출퇴근 길을 스카이스캐너와 함께 한 덕분에 득템?! 했다고 생각했다. 가격만 보면 순례자 길에 안성맞춤이었지만 후기를 살펴보니 위탁수하물이 자주 없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어 짐을 따로 맡기지 못했다.(올 때는 맡겼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내 몸 만한 30리터짜리 배낭과 초록 깁스와 함께 거북이 걸음을 걸으면 어디서든 시선은 집중되고 사람들은 마법처럼 양쪽으로 갈라졌다. 내가 걷는 걸음이 곧 길이 되었다.
마법의 무기를 장착하고 인천공항에서 6시 반에 출발해 두 시간 정도 지나니 상해 공항에 도착했다. 상해에서 파리로 가는 비행기는 자정에 출발이라 여유가 좀 있었다. 하지만 배낭을 짊어지고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 출국 심사를 받고 보안 검색대도 다시 통과해야 하는 일들은 버겁게 느껴졌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렇게 '힘들어 죽겠다' 싶을 때마다 천사인지, 천사 같은 사람인지, 어느 드라마 대사처럼 '신이 그 사람을 통해 잠시 머물다 간 것인지', 도와주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1번 천사는 당연히 인천공항에서 휠체어에 나를 싣고 게이트까지 함께 달려준 친구였고, 경유하면서도 여러 천사들을 만났다.
내가 무거운 짐을 들고 뒤쪽 좌석까지 이동하기 힘들까봐 입구 쪽 비지니스 칸에 짐을 실어준 '중국인 스튜어디스', 비행기에서 내려 쩔뚝거리며 입출국 심사받으러 갈 때 자기는 위탁 수하물로 짐을 맡겼다며 10kg에 육박하는 내 짐들을 자진해서 들어준 '한국인 회사원'. 동유럽으로 간다는 그녀와 헤어지고 내 배낭은 또 다른 한국인 천사에게 넘겨졌다. '제대하고 까미노 걸으러 간다는 대학생'이었는데 그는 자신의 무거운 순례 가방을 뒤에 메고도 내 가방까지 함께 들어주었다. 신기하게 그 큰 비행기에서 앞 뒤로 앉게 되었고 파리까지 가는 10시간 넘는 비행이 덕분에 든든했다. 그 천사는 파리 공항에 도착해서 폰알못인 내가 유럽 유심칩을 갈아 끼우는 것까지 도와주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얼떨결에 출발하긴 했지만 순례길 초반, 내 정신 상태는 사실 엉망이었다. 그냥 멍하게 있는 경우가 많았고 설렘보다는 우울함이 컸다.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거지? 그냥 한국 돌아갈까?' 순례길 중간에 느낀다는 감정이 아예 처음부터 와버렸다. 그런데 나에게 잠시 머물다간 천사들 덕분에 마음에 웃음 자국이 다시 조금씩 새겨지기 시작했다.
회사원 천사와는 '퇴사'라는 주제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수다를 떨었고, 대학생 천사가 자신의 계획들에 대해 말할 때는 풋풋하고 열정 많고 꿈도 많던 시절이 생각났다. 이들뿐 아니라 자리를 양보해주고 먼저 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말없이 도와준 이름 모를 수많은 천사들이 있었다는 것도 기억하고 싶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자신의 역할을 다하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이런저런 영향을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또 멀어지면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문득 마음 속 깊이 들어왔다. 오늘 나는 누구에게 어떠한 모습을 남기게 될까.
그렇게 도착한 프랑스 파리는 4월 2일 화요일 오전 6시 30분, 비가 내렸다. 계획대로라면 숙소에 짐만 풀고 파리의 온전한 하루를 즐겨야 했다. 10년 전 혼자 배낭여행으로 왔던 대학생의 눈으로 본 모습과 비교하며 에펠탑부터, 몽마르트, 개선문, 샹젤리제, 노트르담 성당, 파리 곳곳을 거닐 계획이었다.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파리의 하루를 즐길 수 있을까' 파리 루트 짜는 것도 꽤 오래 고민했는데 이제 아무 소용이 없었다. 기생충에서 송강호가 말하던 '가장 완벽한 계획'이라는 '무계획'이 이제 내 유일한 계획이 되었다. 숙소로 가는 길에 화재 나기 전의 노트르담 성당만 멀찍이서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숙소 엘리베이터에서의 사진, 파리의 우울한 하늘이 내 얼굴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구나'하는 안도감과 '이제 발 뻗고 누울 수 있겠다', '이제 씻을 수 있겠다'하는 작은 행복감들이 교차했다. 침대에 눕기 전까지는 말이다.
참고로 난 꽤 '계획적인 사람'이다. 아니 최소한 계획 세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대학교 1학년 입학을 앞두고도 5년단위, 1년단위, 월단위의 계획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세웠고 플랜 A가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서 플랜 B, C, D까지 세워뒀었다. 매년 다이어리는 빼곡한 글씨들로 가득 찬다.
이번 산티아고 계획도 마찬가지였다. 하루에 얼마나 걸을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미리 숙소를 예약해 둘 수는 없었지만(준비할 때 이 부분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각종 자료들을 수집해서 800km 프랑스길 위의 마을들 중 관심이 가는 곳들을 다이어리에 모두 적었다. 세 페이지가 넘어갔다. 내 플랜 B, C, D에는 마을을 못 보고 지나치는 정도는 있었지만 '이 중 어느 곳도 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상상으로도 해본 적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이 수많은 계획들은 그만큼 내가 가진 불안감에서 나온 것 같다. '실패하면 안 된다'는 강박이 '계획 세우기'라는 소모적인 일들에 힘을 쓰게 했던 것 같다. 이번 여행은 아예 시작부터 예상하거나 계획하거나 계산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는데 이러한 불확실성은 이전의 나에게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었고 그만큼 무계획으로 40일간의 여행을 한다는 것은 나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였으며 도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