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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또 다녀왔습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이상한 순례길'을 함께 걷고 있을 그대에게

2023년 3월 29일 수요일, 사회생활 시작 14년 차, 10번째 회사와 이별을 하고 맞는 퇴사 5주 차, 첫날. 


다시 무언가 표현하고 싶은, 만들어내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다만 여전히 몸은 피곤하고, 내 삶에서 우선 충족되길 바라는 욕구는 쉼과 휴식이다. 그래도 점점 회복되어가고 있음이 아주 조금씩은 느껴지는 것 같다. 


어제보다 일찍 일어났고, 명상과 기도, 스트레칭과 요가, 나를 위해 정성껏 차린 밥상,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가볍게 산책을 하고 돌아와 청소, 빨래, 옷장 정리, 집안일을 하고 책상에 앉았다. 더 이상 회사에 묶여있지 않으면서도 나 자신에게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쉼'을 허락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산책할 때에도 '공원 한 바퀴', '숨이 찰 정도로', '하루에 1만 보'처럼 누가 정한 건지 알 수 없지만 '건강해지려면 이렇게 해야 해'하는 외부의 기준, 남의 말들이 먼저 떠올랐다. 대신 이번에는 '어때? 힘들진 않아? 괜찮아?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아. 돌아갈까?' 내 마음에 질문을 던지고 그 안의 목소리에 따라보려 했다. 정해진 코스를 완주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을 내려놓고 천천히 걷다 가까운 벤치에 앉았다. 봄꽃, 특히 벚꽃이 만발했고 바람은 시원하고 햇빛은 따뜻했다.


"나무들 안녕~?!" "잉어야 안녕~?!" 근처 어린이집에서 나온 아이들이 귀엽고 해맑게 외치는 소리가 호수를 타고 나에게까지 들려왔다. 삶이 너무 바빠 지나치는 많은 것들이 언젠가 나에게도 저렇게 새롭고 신기한 것이었겠다고,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순진하진 않게 사는 건 가능한 걸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넌 너무 이상이 높아.', '꿈같은 소리 하고 있네.', '순진한 소리 말고, 이럴 시간에 이력서나 써', '너 이렇게 쉬다 평생 쉰다.' 여전히 내 마음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내 깊은 어둠은 존재감을 뿜어내며 나의 '쉼'을 '쓸모없는 일', 쉬고 있는 나의 존재를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강하게 주장한다. 


그래도 오늘은 이런 내 어둠을 사랑해 보겠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어젯밤 철학상담 수업에서 다룬 '고통과 우울' 덕분일까. 고통과 우울은 인간이면 누구나 겪는 본질적인 한계상황, 본래의 나로 실존하고자 한다면 살아있는 한 피할 수 없다는 것, 또 아주 개인적인 것이라 우리는 서로의 어둠을 온전히 이해할 순 없다는 것, 우울은 특히 '높은 가치, 완전성'을 추구하면서도 이러한 갈망이 무모할 뿐 채워질 수 없다는 느낌이 병행하는 것, 극과 극을 오가는 것,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좋은 우울감', 한계가 분명 존재함을 알고 그럼에도 내 안으로 들어가 나 자신과의 진정한 관계 맺기를 통해 완전성을 끊임없이 갈망하는 것. 무가치함, 모멸감, 의심쩍은 마음을 가지면서도 끝까지 완전을 향해 자신의 삶을 새롭게 하는 것, 창조해 내는 것. 예술가들의 창조와 창작의 원천이기도. 


얼마 전 옛날 일기장에서 발견한 '어렸을 때부터 지속되는 이 끝없는 우울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메모가 떠올랐다. 나의 어둠에 대한 이해와 키에르케고르라는 철학자를 발견해 기뻤다. 내 어둠은 나에게 '너는 위대한 예술가도 아니잖아. 너한테 창조, 창작, 표현하는 건 쓸데없는 짓이야. 솔직히 네 재능이 그 정도는 아니지 않니?!' 여전히 냉소적으로 나를 비난하지만, 내 안에서 분명히 느껴지는 무언가 만들어내고 표현하고자 하는 '창조욕구'의 원천이 바로 이거구나. 하는 생각. 그리고 이제 '난 왜 이렇지?' '벗어나고 싶다.'가 아니라 '사랑'해보기. 내 한계를 알고, 끌어안고, '더 깊은 사랑'을 해보도록 초대받는 느낌이 들었다. 


퇴사 5주 차이자, 사순 5주일인 지금, 기도 안에서 그리고 삶 안에서 나는 '더 깊은 사랑'으로 초대받고 있다고 느낀다. 그냥 '널 좋아해'하는 말은 상대의 좋은 모습을 좋아하는 것이라면 '사랑'은 그의 한계, 단점, 찌질함을 충분히 알고, 그럼에도 그것을 끌어안고, 내 편에서의 좋은 방향으로, 내 방식대로 바꾸려 하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 오히려 그의 방식을 받아들이고 온전히 수용하는 것 아닐까. 그렇게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누군가를, 그 나름의 치열한 사랑을 하고 있는 나의 부모님을, 무엇보다 나 자신을 '사랑'해보겠다는 결심. 그리고 그 사랑은 곧 용서, 믿음, 희망. 과 같다는 것. 내 안에 가득 찬 어둠에도, 아니 그 어둠 덕분에. 빛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이것이 나에게 구원이구나. 


비판하거나 평가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표현하고 싶은, 쏟아내고 싶은, 그 마음에 

질문을 던지며 나를 돌보는 시간. 으로의 초대.


"괜찮아. 하고 싶은 대로 해봐. 

네가 정말 원하는 건 뭐야?"




국가기관통신사 영상뉴스부 인턴, 지상파 라디오 조연출, 지역 tv 뉴스 아나운서, 정책방송 뉴스 작가, 정부부처-점자도서관 기획 제작 오디오 콘텐츠 더빙 아나운서, 다시 라디오 리포터, 작가, MC, PDJ, AD의 총합이자 그 어느 것도 아닌 무언가, 국가기관 대변인실 스토리텔러 a.k.a. 홍보작가이자 리포터이자 사내방송 DJ이자, 행사 MC, 보도자료, 연설문, 말과 글로 된 모든 것을 감히 참견해 보는 일을 한 줄 알았지만 결국 기간제 근로자, 공공기관 홍보담당 사업전담 계약직, 대학원생, 드디어 정규직 홍보대행사 수석에디터 과장, 외국계 홍보대행사 디지털부문 차장, 정부부처 SNS 디지털콘텐츠 기획 제작.


만 13년, 10군데의 직장과 그와 비슷한 직업을 거쳐왔습니다. 써놓고 보니 겉으로 봤을 때 그럴듯해 보이기도 한데요. 프리랜서 방송 일의 불안을 견디지 못해 소속과 안정을 찾아 투잡 쓰리잡을 했고, 밤에는 대학원을 다니던 시간을 지나 드디어 정규직이 된 대행사에서는 몸과 맘에 병을 얻고 퇴사했습니다. 덕분에 40일간의 산티아고, 이스라엘 성지순례까지 했지만,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을 실천하며 외국계 홍보대행사에 입사한 지 두 달이 채 못되어 퇴사. 그리고 세종에 내려온 지 3년 차.


다시 길을 멈추고 나에게 묻는 시간. 나를 돌보는 시간을, 해야 하는 것 대신, 하고 싶은 것을 묻는 용기를 내는 시간, 무엇보다도 이 치열한 몸부림을 실패가 아닌 여정으로 보는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이상한 순례길'은 어디로 이어지고 있나요? 


오랜만이죠?! 시간이 금방 지나갔네요. 저는 여전히 '이상한 순례길'을 걷고 있습니다. 조금 더 나다워지고, 좀 더 자연스럽고 자유로워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간 여유가 없기도 했고 내 안을 들여다보는 작업들에 집중하고 싶어 많은 초안들은 서랍장 속에만 고이 간직했는데요.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들을 용기 내어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여러분의 응원 댓글과, 구독, 좋아요는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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