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두려움 속에서 '나'로 살아가기

내 맘대로 그림일기

오늘은 오전 내내 안개와 비, 회색 하늘과 함께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느 흐린 날들처럼 마음이 가라앉기보다는 

지쳐 쉼이 필요한 몸 안에서 무언가 미약하게나마 꿈틀거리는 느낌을 가만히 느껴본다. 


다만 쉬어달라고 계속 신호를 보내는 몸을 위해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잘 쉬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날들의 연속이다. 


퇴사를 하면 항상 몸에 병 하나씩은 얻어 나오는 것 같다. 

대행사 두 군데에서는 몸에 혹 2개,

이번에는 왼쪽 귀의 청력이 높은음 중 특정 헤르츠의 소리를 못 듣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병원에서는 '다시 청력이 돌아올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6개월 동안은 이어폰을 하지 말고 지내다가 다시 한번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산책을 두배로 기쁘게 해주는 음악을, 이동시간을 짧게 만들어주는 노래들을 잃어버렸다. 무엇보다도 라디오키즈로 자라나 라디오 리포터로 사회초년생을 보낸, 사회경험의 절반을 보낸 나에게는 '예민한 귀로 밥 벌어먹고 살았다'는 생각에 이 소식이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의사 선생님이 오른쪽 귀는 문제없으니 의사소통, 일상생활에는 무리가 없을 거예요. 등등의 말을 해도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지난 주일에는 난생처음 왼쪽 눈에 출혈이 일어났다. 

영상 하나 업로드 하기 위해 같은 걸 수십 번은 돌려보며 한 땀 한 땀 애쓴 시간들과 트렌드 파악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진심반 사심반으로 봤던 수많은 영상 콘텐츠들 덕분일까. 풀타임 일을 하면서 프리랜서로 방송일을 하고 대학원을 다니던 그 시절에도 멀쩡했던 눈이. 

눈을 비비지도 않았고 누구한테 얻어맞은 것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왼쪽 흰자위가 아주 붉게 물들었다. 


의사 선생님은 무표정한 얼굴에 동그랗고 반짝이는 안경테를 고쳐 올리며 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렇죠.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나의 몸은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고 

시간이 마냥 있는 것만은 아니라고 나에게 계속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아주 정확하게 나이가 들어가면서 

배우고 있다고 느끼는 건

한계를 극복하는 법.이 아니라.

한계 받아들이기. 

나의 한계, 타인의 한계, 시간, 몸, 환경의 한계들. 


나의 결점을 찾아내서 고쳐내는 애씀의 과정을 내려놓고

타인의 틀린 점을 지적해서 올바르고 공정하게 바꿔야 한다는 교만함과 무리함을 내려놓고

정해진 시간과 육체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최선을 행하는 과정에만 집중하는 것. 


목표를 정하고 미친 듯 달려 성과를 따내는 삶이 아니라

조용하고 가만히 내 안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산들바람 같은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비결과 이렇게 한 달만 하면 이렇게 될 수 있다는 매력적인 수많은 소리들.

이 모든 것이 지나고 그 동굴 같은 어둠 속에 비교와 질투와 자기 비난으로 웅크리고 있는 내게 

일어나 오롯이 '나'로 서보라는 초대에 응답해 보는 것. 


여전히 부족함투성이, 결핍감과 한계에 휩싸인 나로

그럼에도 이 땅에 불리어진 나로

나를 부르는 생명의 소리 따라

가만히 나와서 

사막 같은 광야의 삶, 그 한가운데 서 보는 것. 


여전히 겉옷자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있더라도

나를 부르는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에 귀 기울이며

오늘의 삶 앞에 서보기.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내가 해야 하는, 내게 허락된 

유일한 일이 아닐까. 


가톨릭 신앙 안에 살아가며 느끼고 성찰한 삶의 이야기들을 그림과 글로 나눠보려 합니다. 구독과 좋아요, 댓글은 힘이 됩니다. 우리 모두의 '이상한 순례길'을 응원하며, 함께 걸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네, 또 다녀왔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