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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멀지 않은 옛날 어느 시골 마을에 소년과 소녀가 살았다. 소년은 순수했고 소녀는 소년보다 성숙했다. 소년은 소녀를 사랑했고 그녀 또한 그를 사랑했다. 소녀는 성숙했기 때문에 사랑은 영화와 같아서 시작하는 순간 결국 끝이 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소녀는 소년을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그녀의 마음을 감췄다. 그래야 했다. 소녀가 그럴수록 소년은 간절해졌다. 소년은 소녀를 졸졸 따라다니며 그녀의 사랑을 구했고, 소녀는 소년의 노력에 못 이겨 결국 그의 마음을 받아주게 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마을 이곳저곳과 계곡을 매일 거닐며 마을의 풍경을 다채롭게 채워갔다.
하지만 행복한 날들이 지속될수록 그녀는 결국 끝이 온다는 사실이 두려워졌다. 그래서 소녀는 소년에게 제안을 했다. 서로를 정말로 사랑한다면 십 년 뒤에 봐도 분명 서로 사랑하고 있을 거라고. 그러면 우리는 헤어지지 않을 거라고.
소년은 소녀와 한 순간도 그녀와 멀어지는 게 싫었지만 그는 순수했기에 다시 그녀와 만나면 영원히 함께 살 수 있을 거라는 것을 믿었고 그녀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소년과 소녀는 십 년 뒤 마을의 중앙에 있는 큰 소나무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아주 잠깐 서로 떨어져 있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소년은 약간의 순수함을 잃긴 했지만 소녀와의 약속을 잊어버릴 정도는 아니었다. 드디어 약속한 지 정확히 십 년이 되던 날, 소년은 그녀가 약속을 까먹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등에 지고 소녀를 만나기 위해 마을의 중심에 있는 소나무 앞으로 갔다. 그 소나무는 세월을 잊은 채 여전히 푸르고 모든 것을 품을 듯한 따뜻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소나무에서 열 발자국 떨어진 오두막 뒤에서 나를 힐끔 쳐다보며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소년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소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녀는 여전히 소녀였으며 십 년 전 그날과 똑같은 미소로 나를 맞이했다. 소년과 소녀는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눈빛을 통해 말하고 있었고 입을 통해 서로의 기억 속의 빈 부분을 채우며 밤을 새웠다. 소녀는 끝나지 않는 영화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소년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소년과 소녀의 대화는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샘물처럼 멈출 날이 없었고, 그들은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장소를 옮겨가며 언젠가처럼 마을 구석구석을 그들의 향기로 가득 매웠다.
소년은 어느 날과 마찬가지로 소녀와 함께 숲을 거닐고 있었다. 소년의 이야기에 빠져든 나머지 그녀는 무성한 잔디 조그마한 돌멩이에 걸려 넘어졌다. 소녀의 다리에서는 피가 흘렀고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렀다. 소년은 그녀를 위로해주며 그의 손수건을 그녀의 다리에 동그랗게 감싸고 묶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소녀 그녀의 얼굴을 그에 볼에 갖다 대고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조용히 내 귀에 속삭였다.
"사랑해."
그 말은 소년이 항상 알고 있고 있었던 것이지만 그녀의 입을 통해 들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생각이 들고 있던 찰나에 그녀의 말이 소년의 귀를 타고 빠르고 날카롭게 들어와 그의 심장을 찔렀고 그 충격으로 인해 그것은 그의 통제를 벗어나 쿵쾅대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그 심장을 두근대게 하는 무언가가 그의 눈을 통해 힘없이 빠져나와 하늘로 날아가는 게 보였다. 소년은 순간 넋이 나갔다. 소녀는 놀라 그가 괜찮은지 물었다. 소년은 몸이, 아니 마음 어딘가가 고장 난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눈에 비친 그녀는 더 이상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그 날 이후 모든 게 조금 달라져 있었다. 소녀는 소년에게 늘 사랑을 표현했고 그와 함께 있음을 기뻐했다. 하지만 소년은 소녀에게서 느끼던 특별한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사랑을 말할 때마다 그의 가슴속에선 일종의 죄책감과 부담감이 느껴졌다. 늘 똑같은 행동과 대화에서 그는 실증을 느꼈고 소녀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년에게 더욱 의지했다.
단풍잎이 바람의 소리와 함께 마을을 가을의 색으로 물들여 가고 있을 무렵 소년과 소녀는 소나무 앞에 바삭거리는 단풍잎 위에 누워 있었다. 그녀는 가을 날씨의 어울리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러고는 소년의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나 사랑해?”
소년은 멈칫했다. 당연한 걸 왜 묻냐고 했다. 소녀는 다시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그는 사랑한다고 말했다. 마음속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그 단어를 찾아서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말을 듣자 소녀는 미소를 지으며 부르던 노래를 다시 흥얼거렸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