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하늘한 무지갯빛 날개를 가진 나비를 꿈꾸던 벌레가 그것이 태생적으로 불가능하단 걸 깨달았을 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다. 현실을 직시하고 땅에서 온기를 찾아 일생의 보금자리를 만들거나 바스러진 나비의 날개 부스러기라도 구하려고 이곳저곳을 헤매는 것.
가엽게도 나는 후자였다.
나는 록 음악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린킨파크(Linkin Park)와 같은 음악을 하고 싶었다. 혁신적인 데모 앨범을 만들 것이고, 그리하여 서태지의 눈에 띄어 서태지컴퍼니 산하의 레이블인 ‘괴수 인디진’에 합류되기를 소망했다.
서태지가 인정하는 넬(Nell) 그리고 피아(PIA)의 계보를 잇는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거듭나고 싶었다. 나에게 ‘넬Nell’과 ‘피아PIA’는 오색찬란한 날개를 달고 유유자적 하늘을 나는 한 마리의 눈부신 나비였다.
서태지와 전자기타가 좋아서 독학으로 전자기타를 배워, DREAM THEATER의 ‘PULL ME UNDER’를 정밀하게 카피할 수 있게 된 스물두 살의 나.
서태지가 좋아서 서태지처럼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재즈아카데미’에서 작곡을 공부한 역시 스물두 살의 낙호.
우리 둘이 ‘린킨 파크Linkin Park’의 ‘Crawling’을 들으며 어찌할 도리없이 음악에 인생을 걸기로 맹세한 건2000년대 중반이었다.
린킨 파크 (Linkin Park)
80년대 생들인 우리가 20대가 되어 밴드 음악을 하고자 의기투합했을 때, 당시 글로벌 대중음악 씬은 커다란 변화의 흐름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스키드로우(Skid Row)와 엑스 재팬(X-japan)같은 전설적인 밴드는 소위 쌍팔년도 오비OB로 취급받고 있었고, 그 자리를 신스팝이나 핌프락 계열의 신예들이 꿰찼다. 우린 고민이 많았다. 청소년기에 동경했던 전통에 가까운 글램 메탈 밴드들이 2000년대 중반이 넘어서자 일렉트로닉 계열의 퓨전 장르들에게 영광의 자리를 내어주고 있던 것이다.
Skid Row의 < In a Darkened Room > 과 X-japan의 < Rusty Nail >을 들으며 학생시절을 보낸 우리들의 눈에는 서정미와 화려한 연주력을 포기하고 그루브 한 리듬만을 강조하는 핌프락 계열의 밴드들이 탐탁지 않았다. 기악파트보다보컬 파트의 비중이 비대칭적으로 큰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공연장을 찾아 관중의 한 명으로서 함께 슬램 하는 입장에서는 핌프락 밴드들의 폭발하는 에너지가 좋은 건사실이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은 아니었다. 우린 좀더섬세하고드라마틱한음악을 원했다.
동경하던 음악과 시대가 요구하는 음악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리는 혼란스러웠다.
더욱이 음원 차트에서 밴드 음악이 전무한 한국 대중음악 씬에서, 어떤 색깔의 밴드 음악을 시도해야 소위 먹힐 수 있는지에 대해서까지 고민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으로도 크게 성공한 록 뮤지션은 사실 서태지와 신해철둘 뿐이다. 이들 때문에 밀레니엄 세대의 많은 10대들이 처음으로 밴드를 동경했다. ‘춤’에서 ‘악기’로 관심이 쏠렸다. 나와 낙호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다 서태지 때문이었다.
여담이지만 음악 좀 안다는 MZ세대들에게 < ‘서태지’가 더 좋아? 故‘신해철’ 님이 더 좋아? > 하고 물어보면 답하기가 곤란해지는데, 나도 그런 편이다.
장르를 초월하는 혁신성과 외적인 퍼포먼스의 화려함까지를 생각하면 ‘서태지’가 더 좋은데, 장르의 보편성을 확장하는 세련됨과 세상에 메시지를 던지는 힘은 ‘신해철’ 쪽이 더 강해서 선뜻 한쪽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
참고로 두 아티스트는 6촌 지간의 형제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를 훔칠 수만 있다면!)
아마추어 카피 밴드를 넘어서기 위하여첫 자작곡을 시도하는 신생 밴드들은 이 두 형제의 새로운 음원이 발매될 때마다 자주 낙담하며신은 불공평하다고 울부짖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밴드를 시작하게 되는 것은 일종의 달콤한 저주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는 록 뮤지션들이 멋져서 혹은 전자악기의 섹시한 음색이 좋아서 청춘의 심장을 내걸고 호기롭게 시작하지만, 새로운 미적 가치를 산출해 내는 ‘작곡’은 또 다른 세계로의 도약이다.
그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신의 초월성을 일정 부분 훔쳐내는 일이다.
신이 그 오만한 약탈을 허락하지 않는 이상 창작은 공부나 운동처럼 익히고 배워나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니다.
음악이던 미술이던 문예창작이던 새로움의 가치를 창발해내는 창작활동은 그분께서 특별히 허락하셔야 깨우쳐지는 범주의 일이고, 따라서 선택받은 이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특권이다.
그리고 음악을 좋아했던 시간만큼, 또 밴드 활동을 지속해 온 시간만큼 음악에 대해 멋진 것들을 감별해 내는 심미적인 식견이 한껏 고양된 것도 작곡을 더 어렵게 하는 족쇄가 된다.
비평가가 되어버린 눈높이가 자신이 만든 자작곡들을 끝임 없이 혐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마치 배우 ‘정우성’님이 곁에 서 있는 남자들을 모두 오징어로 만들어 버리듯.
내 깐에는 떠오른 참신한 악상을 혼신의 힘을 다하여 시간의 축 위에 얼추 모양새를 갖춘 독자적인 작품으로 빚어놓고서 환호성을 지르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 녹음된 것을 다시 들어보면 손발이 오그라들게 되는 그 난감함.
청각적 이미지로 변주된 ‘오징어 소리’를 자신의 두 귀로 직접 들어본 이들만이 아는 자괴감이다.
그렇게 드높아진 자기 눈높이를 만족시킬 만큼의 자작곡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그때부터는 괴로움을 넘어서 자신을 혐오하게 된다.
홍대에 있는 록 클럽에서 몇 번의 공연과 데모 앨범 녹음을 위한 시도들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당시에는 유튜브가 생기기 전이라우리는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세상에 전할 플랫폼을 찾지 못했다. 아마추어 록밴드들에게는 라이브 공연시스템을 갖춘 홍대지역의 소형 록 클럽만이 유일한 무대 공간이었다.
홍대 클럽 <프리버드>에서. 나비를 꿈꾸던 20대 청년기의 리카르도.
라면만 먹고 평생을 살아도 좋으니 언제가 되든 기필코 서태지와 함께 한 무대에 서리라 맹세했던 우리들의 영원할 것만 같았던 열정은 곧 들이닥친 군입대의 압박으로 예기치 못하게 각개 격파되어 빠르게 식어갔다.
20대 후반이 돼서야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갖고 있던 악기를 모두 팔았다.
가슴이 뻥 뚫려 식욕을 잃고 시름시름 앓아갔다.
그렇게 15살 때부터 미친 듯이 갈망해 왔던 밴드의 꿈은 서른 살을 기점으로 바람처럼 사라졌다.
첫사랑은 본래 이루어지지 않는다더니.
불같이 사랑했으나 단 한 줌의 결실도 남지 않았다.
다만 홍대 클럽가에서 공연하던 뜨거웠던 날들의 추억만은 영원하다.
밴드는 나비가 되고 싶은 벌레들의 외마디 비명이고 무덤이다.
나는 그 이후로도 잠 못 이루는 밤들과 여전히 그리워하며 꿈꾸는 밤들로 몇 해 동안 신열에 시달렸다.
희망을 품지 않은 자는 절망도 할 수 없다.
조지 버나드 쇼 (1856~1950)아일랜드 작가
화려함만을 추종하며 찬란한 꽃을 피워 내려고 발버둥 쳤던 푸르른 계절이 모두 지나고, 이제는 아름답게 시드는 지혜에 대하여 고민해야 하는 불혹의 나이가 내게도 다가왔다.
중년을 앞두고 있던 나에게, 나이 듦의 긍정적인 가치를 깨닫도록 도움 준 이는 놀랍게도 우리 ‘도솔이’였다.
아기로만 생각해 오던 도솔이도 어느덧 9살이 되었다.
노견이 된 도솔이는 발랄함과 분주함을 양보하고 그 대신 여유로움과 느긋함으로써 자기 몸의 변화를 평화롭게 수용하고 있었다.
젊음의 가치만큼 충만할 수 있는 나이 듦의 가치를 노견이 된 도솔이는 자기 삶으로 증명해내고 있었다.
일상 안에서 운신할 때, 느려지고 어색해진 발걸음을 아무 거리낌 없이 덤덤하게 받아내는 도솔이의 초연함을 보고 나는 ‘아름답게 시듦’에 관한 통찰을 얻었다.
그것은 더 이상 외부 세계의 화려함과 분주함을 욕망하지 않고, 주어진 일상을 농밀하게 음미할 때 얻게 되는 평화로움과 충일감이었다.
피어남만큼 아름다운 시듦은 가능했다.
적어도 도솔이에게는 그러했다.
나는 도솔이가 깨우쳐준 ‘아름다운 시듦’의 가치를 내 남은 인생의 화두로 삼아 내 삶으로그것을 입증해 내기로 결심했다.
아기의 모습으로 나에게 온 도솔이는 내 삶의 속도를 추월하며 쌓은 견犬생의 연륜으로, 어느덧 인생의 참된 가치와 의미를 멘토링해 주는 스승이 되어있었다.
도솔이가 내게 깨닫게 해 준 삶의 밀도를 높이는 비결 중 하나는 <일상에 집중하는 몰입의 힘>이다.
도솔이는 먹고 싸고 산책하고 잠드는 일상 안에서 늘 현재성에 집중한다.
도솔이는 청년기의 나처럼 꽃 피울 미래에 집착하지 않으며, 실존하고 있는 현재의 아름다움에 몰입한다.
끼니마다 도솔이는 늘 스테인리스 보울에 담긴 음식을 마치 그것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식사가 될 것처럼 몰입하여한 점도 남김없이 핥아먹는다.
식사 때마다 바쁘다는 이유로 대충 한 끼를 해치우고 마는 우리들과는 사뭇 다른 반려견들의 끼니에 대한 태도는 우리들에게 식사하는 일상의 소중함을 깨우치게 한다.
도솔이는 밥 먹을 땐 보약을 먹듯이 집중하고, 응아 할 땐 해탈한 표정으로 몰입하며, 잘 때엔 시끄러운 TV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코 골며 눈알이 진동하는 램REM수면으로 곧장 빠져든다.
도솔이에게서 배운 일상 안에서의 몰입은 ‘단조로움’이 아닌 ‘단순성’의 지혜이고, 자극적인 쾌락에 대한 집착이 아닌 지금 여기에 실존하는 현재성의 추구다.
언제나 일상에 몰입하는 인생 유단자 <도솔이>
도솔이에게서엿 본 삶의 밀도를 높이는 또 하나의 비밀은 <다른 이들의 시선에 개의치 않는 자기 신뢰의 힘>이다.
도솔이는 산책하다가 힘들면 그 자리에서 바닥에 눕는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결코 신경 쓰지 않는다. 가다가 힘들면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으면 그만인 것이다. 바쁘면 먼저 앞질러 가라는 얘기고, 함께 동행하려면 닥치고 옆에서 기다리라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한마디로 도솔이는 중간에 쉬려고 할 때 내 의사를 묻지 않는다. 나는 막무가내로 길바닥에벌렁 누워 임의대로 산책을 중단하는, 악의 없는 에고이스트 도솔이가 언제나 사랑스럽다.
이따금 짓궂은 나의 장난에 도솔이는 ‘으르렁’거리며 가짜 공격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장난이 싫을 땐 앞니로 살짝 내 손가락을 깨물기도 하고, 좋을 땐 닭인형을 물고 와서는 더 신명나게 놀자고 유쾌해진 마음을 내비치기도 한다.
도솔이는 지금 나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좋은지 싫은지 분명하게 말한다. 도솔이는 자기 마음속의 희로애락을 결코 그냥 삼키거나 흘려보내지 않는다.
도솔이와 함께 하는 일상은 정해진 시간의 끼니와 산책으로 그저 평범하게 반복되는 듯 보이지만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도솔이의 당당하고도 진솔한표현력은 우리의 모든 날들을 비범하게 만든다.
일상 안에서 몰입의 힘으로 빚어낸 비범함으로 도솔이는 매일 같은 자리에서 다른 이야기들을 생성해 내고,나는 그렇게 내 곁에서도솔이가 들려주는 다양한 이야기들 속에서 아름답게 시드는 향기와 신의 은총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