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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카르도 Sep 20. 2024

어쩌다 동물권 활동가

Voice of the Voiceless

성남시에 있는 모란 시장은 개고기 축제가 열리는 중국의 위린 지역과 더불어 지구상에서 악명 높은 개들의 지옥이다


지금은 모두 폐쇄되었지만 과거에 모란시장은 축산물 위생관리법을 교묘하게 피해 불법적으로 개고기를 대량으로 유통시키는 악의 소굴이었다     

일인당 GDP 3만 달러 시대의 서울에도 육견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잔존해 있었고, 경기도 일대에는 간이 시설물들로 구축된 불법 개농장이 곳곳에서 성행하며 애먼 개들을 잡아다 도축의 열을 올리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복날에 리트리버나 도베르만 같은 대형견을 잃어버린 견주들 중에는 도살업자들의 임의적인 포획과 도축으로 생때같은 자기 반려견과 영원히 이별하게 되는 참극을 경험하게 된 이들도 있었다.     


2018직접 성남시를 찾아가 나의 두 눈으로 목격한 모란시장의 참상은 아비규환을 이 땅에 형상화해 놓은 듯했다

살아있는 개들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좁은 철장 케이지 안에 욱여넣어져 있었다시시각각 순서대로 도륙되는 동료들을 혼이 나간 표정으로 바라보며 개들은 다만 숨죽여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게 아니었다공포로 굳어진 그들의 눈빛에는 이미 그 모든 도륙의 과정을 끝마친 동료의 사체가 차라리 그들에겐 평안을 맞이한 시간으로 생각되는 듯한 절망이 서려있었다.     


그런 숙명에 처한 아이들이 점포마다 수십 마리가 있었고, 그런 점포들이 서른 개나 줄지어 있었다

현실로 빚어진 악의 원형과도 같은 사태를 넋을 놓고 관망할 수밖에 없었던 무능한 처지의 나는 가만히 서서 그 아비규환의 참상을 바라만 보고 있었음에도 그 자리에서 진이 다 빠져 다리가 후들거렸다.      


내가 만약 재벌집 아들이었다면모란시장 전역의 개고기 유통점포를 매입하여 아이들을 모두 구조했을 거라고 되뇌었다그러나 가진 것 없는 내가 가정법적인 한탄을 되풀이하는 것만으로 벼랑 끝에 매달린 저 아이들에게 그 어떤 도움이 될 리 만무했다

절망감과 죄책감에 나는 그곳에 있는 아이들과 함께 저승으로 가고 싶었다  

 

성남 모란시장의 민낯

  



모란시장의 참상을 목격하고서도 그저 말로써 한탄하고 분노하는 나의 태도에 관망하는 자들의 비겁과 위선이 녹아 있을지 몰라 아팠다

도살당한 개들이 겪었을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의 깊이를 말로는 온전히 드러낼 수가 없는 것임을 알기에 그때나 지금이나 주로 말하고 쓰는’ 나는 비참했다

숨이 가빠지고 열이 났다

몸살 기운이 올라왔다.    

 

나는 행동할 수 있을 때 그나마 덜 비참해진다

최선은 용기를 내어 모란시장에 다시 찾아가 철장 속 개들을 물리력을 동원하여 구조해 내는 것이다그러한 결행은 더할 나위 없이 보람되고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현실적인 이유에서 최선이 어렵다면그 차선은 동물권단체에 적을 둔 봉사활동과 구조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고통 가운데 정체된 이들을 위하여 가능한 방식으로 내 몸을 열성을 다하여 움직이고그렇게 내가 땀 흘린 만큼 인과적으로 그들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덜어졌음이 확인되면 나는 비로소 해야 할 일을 했다는 충일감에 안도한다.     

    



2018년 한여름

초복중복말복소위 삼복으로 알려진 복날의 개고기 유통량은 폭증하고 있었다

육견의 숙명으로 도살장에서 번식되고 태어나 황량한 그곳에서 오직 도륙될 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성견으로 자라나는 가여운 육견 아이들.

그 해 여름 한철예비된 죽음이 얼마 큼의 규모일지 전국단위로 개농장의 수를 헤아려보면서 현기증이 밀려왔다


불행 중 다행으로 개 도살을 금지하는 입법의 필요성을 공론화하기 위하여 굴지의 동물권 단체들이 그 해 여름 서울 시민의 여론을 모으기 위한 캠페인을 앞다투어 기획했다     

당시에 나는 수년 전부터 동물권 단체 <카라 KARA>와 <케어 CARE> 두 곳 모두에 정기 후원금을 내는 정회원으로 등록하고논술강사로 바쁘게 일하는 와중에도 유기견들을 돕는 봉사활동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종종 참여하고 있었다     


모란시장을 다녀오고 나서 보름 후, <케어CARE> 홈페이지에 불법적인 개 도살을 반대하는 시가지 퍼포먼스를 함께할 봉사자를 구인한다는 공고가 올라왔다

내가 믿는 하느님께서 어서 일어서라 리카르도라고 부르시는 목소리가 마음 안쪽으로부터 울려왔다생업으로 하던 일의 스케줄을 조정하고 앞장서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가장 먼저 지원했다


순도 높은 < I N T J > 성향의 내가 사람들 앞에 나서기로 스스로 작정하는 일은 이례적이다나의 내향적인 성향을 사명감이 압도한 것이다하느님의 인도하심이고그러므로 옳은 일임에 틀림이 없는 경우에 내 마음은 본성을 거슬러 외향적인 기질로써 작동된다.     


반가운 소식도 들려왔다

퍼포먼스 봉사자로 확정되고 나서 얼마 후 <케어CARE>의 홍보모델로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님께서 활동하게 되셨다는 소식이다

예술의 전당 음악당에서만 뵙던 용재 오닐 님이 합류하여우리와 함께하는 캠페인이라는 생각에 더 힘이 나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실제로 용재오닐 님은 홍보모델 활동 이외에도 남양주 개농장에서 도살될 위기에 처한 개들을 대규모로 구조했을 때우리와 함께 구조활동에도 직접 참여하셨다.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오닐> : 동물권 단체 CARE의 홍보모델.

    



퍼포먼스 당일 우리는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분들이 재능기부의 형태로 봉사자로 참여하여 우리들의 얼굴과 몸에 핏빛 선홍색으로 페인팅을 해주었다시민들의 이목을 강렬하게 집중시킬만한 이른바 피갑칠’ 페인팅이었다도살되는 과정에서 개들이 겪었을 극한의 공포와 고통을 시각적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내는데 그 목적성이 있었다우리는 서로의 얼굴에 칠해진 페인팅을 보며 흥미로웠지만 함께 모여 분주한 이유를 망각하지 않고 줄곧 진지했다     


피갑칠 분장을 하고 난 후 나는 더욱더 투사로 빙의되었다

<케어CARE>의 대표가 투사가 되어 있는 나의 눈빛을 보고 타오르는 전의를 감지하셨는지 내게 다가와 퍼포먼스 대열의 중앙부 가장 앞자리에 서 줄 것을 제안했다나는 대열의 중앙 앞자리뿐만 아니라 광화문 지붕 꼭대기에라도 오르라면 오를 기세였다.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흔쾌히 수락했다 



퍼포먼스는 광화문 정면에서 최측근인 북측광장에서 이루어졌다

퍼포먼스가 시작되고케어의 대표가 개 임의 도살 반대’ 입장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공중파 방송사와 주요 언론사에서 취재기자들이 몰려들었다.     

나를 포함한 30여 명의 봉사자들이 모두 피갑칠 페인팅을 하고 대열을 갖추어 철장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 STOP THE KILLING > 

우리는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도륙될 숙명을 안고 도살장에서 태어나는 육견 아이들의 사무치는 고통과 한을 대변하려고 노력했다.     




2018년 광화문 개 도살 반대 퍼포먼스 (대열의 중앙. 리카르도 본인)




한여름 땡볕 아래 두어 시간가량 진행된 퍼포먼스는 무언의 시위였다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서 있는 팀과 좁은 철장 안으로 몸을 접고 들어가 포획된 개들이 겪는 공포를 표현하는 행위예술팀으로 양분되어,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

나는 피켓을 들고 부동의 자세로 정면의 취재기자들과 시민들을 바라보았다작지만 나에게 맡겨진 그날의 소임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희생된 육견 아이들을 위하여 위령기도를 올렸다.

무참하게 희생된 말 못 하는 육견 아이들의 원통함이 내 가슴 안에서 뜨겁게 치밀어올라 피부에 작열감으로 번졌다

영매와 무당들이 접신한다는 심적 상태가 이런 것일 듯했다. 

원통한 육견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면 일시적으로 무당이 되어도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내 몸뚱이를 빌어서라도 너희들의 원통함이 풀린다면 언제든 다시 나에게로 찾아오려무나 가여운 아가들아.

퍼포먼스 내내 나는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몸 크기와 얼굴 생김만 다를 뿐 육견으로 희생된 대형견 아이들도 모두 도솔이와 같이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하고도 넘치는 아이들이다

애당초 육견으로 번식시켰다는 불법 개농장 주인의 주장은 그 사유의 힘이 빈약하고 몽매하다사람에게도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듯이반려견과 육견의 태생적 구분 또한 불가하기 때문이다

어떤 개든 출생부터 반려견으로서의 생을 맞이할 수 있는 기회는 열려져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형견을 단지 50 근짜리 육고기로만 바라보는 개농장 주인의 자의적 판단만이 악의일 뿐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지만축산위생관리법이 허용하지 않는 불법적인 개 도축을 잔인하게 일삼는 자들은 개백정이라 비난받아 마땅하다     


동물은 신의 창조물이다. 인간의 재산, 도구, 자원, 상품이 아니라 신에겐 소중한 창조물이다.
< 앤드류 린지 >


덩치만 컸지끔찍한 도륙 장비가 기다리는 도살의 공간으로 목이 졸려 끌려갈 때 영민한 아이들은 하나같이 죽음의 냄새를 맡고서 소변을 지린다

극심한 공포감에 짖지도 못한다

전기충격봉을 아이들의 입안에 욱여넣어 전기 쇼크로 즉사시킨다고 말들은 하지만 고의로 전압을 낮추어 아이들을 죽이지 않고 기절만 시키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알려져 있다

사후 경직이 오면 육질이 질겨진다는 이유로 산채로 털을 벗겨내기 위하여 아이들은 전기 충격봉에 잠시 기절만 한 채로 수백 개의 못과 칼날이 박혀있는 철제 드럼통 안으로 던져진다

실제로 아이들은 드럼통 안에서 산채로 살가죽이 벗겨지는 와중에 각성되고 깨어난다

각성된 채로 완전히 숨을 거두기까지 극한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아이들은 절명한다

불법 개농장의 엉성한 간이 시설물에서 불법적으로 도륙당하는 개들은 도살되는 동물들 중 가장 고통스럽게 죽는다.      




육견 아이들 모두는 우리 가정에 있는 반려견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갯과 동물의 같은 종 친구들이다.

육견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마지막 순간에 감내하였을 절망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보려고 나는 그 아이들이 견디어냈을 그 고통의 질감을 여러 차례 진지하게 상상해 보았다. 


희생당한 아이들 한 마리 한 마리마다 개별적으로 1000일 동안 성대하게 천도재를 지내주어도 그들 각자의 원통함은 결코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출생과 동시에 육견으로 낙인찍혀 비좁고 비위생적인 뜬 장 안에서 사랑 한번 온전하게 받아보지 못한 채 성견으로 자라나고종국에는 극한의 공포와 고통 속에서 원통하게 스러져간 육견 아이들에게 나는 잔혹한 인간들을 대신하여 오래도록 무릎 꿇고 사죄하고 싶다.       




퍼포먼스가 종료되고, 언론사 두 곳에서 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울먹이는 가슴을 달래고 몇 마디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나 그런 말들로 도살당한 개들의 원통함이 풀릴 리 만무했다


우리들의 구호와 취재진들과의 질의응답이 아직 살아있는 육견 아이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겪고 있을 개별적 고통을 희뿌연 말들의 안개로 뒤덮어 가리는 것은 아닐지 나는 염려되었다.  

        

도솔이를 만난 이후로 나에게 생태 감수성은 형성되었고특별히 도솔이 친구들 중에서 극악의 불행을 마주하고 있는 육견이라 불리는 개농장 아이들에게 나의 측은지심은 한없이 확장되었다.     

퍼포먼스와 사후 인터뷰가 모두 종료되고 집으로 돌아와 도솔이를 안고 다시금 울컥했다.

울먹이며 나는 도솔이에게 약속했다.

내가 사는 동안 목소리를 잃은 육견들의 목소리가 되어주기로.    

 

그렇게 나는 개 도살 반대를 위한 <광화문 광장 퍼포먼스>의 중심자리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의 일들을 기록한 언론사 인터뷰 영상에서 나는 무려 <동물권 활동가>로 소개가 되었다.

단 두 시간의 퍼포먼스로 동물권 활동가라는 호칭을 받게 된 나는 하늘에 있는 육견 아이들에게 민망했다

부끄럽지 않은 전우가 되기 위하여 나는 그 후로도 기회가 닿을 때마다 개식용 반대 집회와 가두시위에 열성적으로 참가하였다. 

도심에서 가두시위행진을 할 때면 나는 온 마음을 다하여 그날의 구호를 성대가 갈라지도록 목이 터져라 외쳤다.    


 


2024년 올해 1

마침내 개도살의 종식을 알리는 <개식용 종식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늘에 있는 육견 아이들에게 이 소식이 전해지길 두 손 모아 기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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