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그로부터 한 해가 지나 흰 백태는 도솔이 눈동자의 절반을 덮었다.
도솔이의 노화는 백내장과 함께 시작되었다.
반려견의 안구 질환에 관한 수의학 정보들을 찾아보니 백내장은 한번 발병하면 비가역적으로 수정체가 혼탁해지기 때문에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다행인 것은 백내장으로 시력이 손실되어도 개의 주 감각기관은 후각과 청각이라 생활하는데 큰 불편함은 없을 거라는 설명이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가 사전에 도솔이에게 백내장 발병에 대한 예방조치를 적절히 못해줘서 시각 장애견이 될 운명에 처한 도솔이의 삶의 질이 급속도로 낮아질 것을 걱정하며 노심초사했었다. 무능하고 사려 깊지 못한 아빠가 된 것을 가슴 아파했는데, 그나마 백내장은 노화성 질병들 중에서 개들의 삶의 질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 질환임을 이해하고서 참 다행스러웠다.
한편으로 나는 도솔이에게 백내장이 찾아오게 될 것을 예상하지 못한 실책을 만회할 만큼 잘한 일도 있다.
나는 도솔이 치아 하나만큼은 완벽에 가깝게 관리했다.
노견이 된 도솔이의 이빨은 여전히 한창때처럼 가지런하고 튼튼하고 새하얗다.
새끼 강아지일 때 도솔이를 처음 내 품에 안자마자 나는 도솔이를 일평생 건강하게 보살펴주기로 결심했고, 반려견이 장수하는 비결을 수소문했다.
결론은 첫째 체중 관리, 둘째 유산소성 운동 효과를 겨냥한 산책의 생활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음식물을 소화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치아 건강.
이렇게 세 가지가 반려견의 삶의 질을 높이고 수명을 연장하는데 가장 중요한 변인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먼저 적절한 체중관리는 산책의 빈도수와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주당 최소 4일 이상씩 산책을 나가면 도솔이의 체중관리는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내 생각은 옳았다.
그리하여 나는 세 가지 항목 중에서도 도솔이의 ‘치아 건강’에 가장 신경 쓰기로 결심했다. 일상생활 안에서 양치질은 사소하게 생각되어 놓치기 쉬운 부분이라 스스로 양치질을 할 수 없는 반려견들에게 매일 이닦기 기를 더 신경 써서 꼼꼼하게 챙겨줘야 한다.
실제로 매일 양치질을 하여 치아 건강이 노령까지 유지되는 반려견들은 그렇지 않은 반려견들보다 평균적으로 2.5년 더 오래 산다는 통계가 있다.
안면 골격이 가로로 넓어 치아구조가 특이한 페키니즈 품종의 도솔이는 이닦기 기가 만만치 않다. 더구나 페키니즈들은 황실견 출신으로 그 성격이 도도함의 극치여서, 자기가 하기 싫은 일엔 협조를 잘 안 해주는 에고이스트들이다. 매일의 양치가 매일의 실랑이였다.
무수하게 반복되는 실랑이 안에서, 나는 도솔이를 어르고 달래다 기습적으로 칫솔을 도솔이 입 안에 넣고 매우 빠른 속도로 구석구석 칫솔질하는 기술을 터득했다. 물론 여린 잇몸이 다치지 않도록 손목의 각도와 힘을 조절하는 섬세함이 필요하다.
거부하는 도솔이와 완벽한 합을 맞추기까지 대략 1년 정도가 걸렸다.
얼렁뚱땅 칫솔질 몇 번만으로 실효 없이 그저 양치시켰다는 심리적 개운함만을 얻는 형식적인 이닦기 기를 나는 경계한다. 그래서 나는 도솔이 입안에 칫솔을 넣고 칫솔질을 시작할 때 타이머를 켠다.칫솔질하는 순(net) 양치시간이 타이머 상으로 < 2분 30초 >가 경과된 것을 확인하고 나는 도솔이를 자유의 몸으로 놓아준다.
노견이 된 도솔이의 모질과 안구는 비록 노화가 진행되었지만 이빨만큼은 여전히 튼튼하고 싱싱하다. 도솔이가 하품할 때 건강미 넘치는 미백의 치아들은 빛난다. 도솔이의 가지런한 건치들을 보고 있을 때 내 마음은 좋은 부모가 된 자긍심으로 충만하다.
습관은 제2의 천성으로 제1의 천성을 파괴한다.
<블레즈 파스칼. 프랑스 수학자>
양치 후 노여움 속에 우유껌 스틱을 받아 물고 있는 도솔.
반려견들의 가속적인 노화는 반려인들에게 유한한 삶의 의미와 신체적 건강함에 대하여 깊이 사색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선물한다.
평생 함께해 줄 것을 약속했지만 그 시간은 너무도 짧다.
개들의 수명은 길어야 15년 안팎이다.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이 82.7세인 것을 감안하면 개들의 수명은 사람의 6분의 1 정도다.
노화의 속도가 더 빠른 대형견의 경우에는 10년에서 12년 안팎으로 소형견보다 3년 정도 그 수명이 짧다. ‘그레이트데인’과 같은 초대형견의 경우에는 평균 수명이 9년 수준으로 매우 짧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기적같이 30년 가까이 산 개도 있다.
기네스북 기준으로 가장 오래 산 개는 ‘블루이 (Bluey)’라는 호주의 목양견이다.
블루이는 ‘오스트레일리안 캐틀독’이라는 견종으로, 1910년 6월에 태어나서 1939년 11월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정확히 29.5년을 살다 간 블루이는 농장에서 양을 모는 목양견으로 20년 가까이 활동했다.
목양견의 하루는 드넓은 농장에서 양 때를 몰고 뛰어다니는 활동적인 시간으로 가득 채워진다. 블루이의 삶은 푸른 초원의 대자연에서 매일 강도 높은 산책과 달리기를 하며 늘 싱그러운 활력을 유지했던 셈이다.
또한 목양견들은 농장에서 산출되는 유기농 야채와 과일 그리고 신선한 우유와 육고기를 끼니마다 먹는다. 블루이의 경우는 캥거루 고기와 각종 채소를 주식으로 먹었다고 전해진다. 목양견으로서의 블루이의 일상은 ‘최고령 장수견’의 건강 비결을 여실히 드러낸다.
가공된 정제사료 대신 신선한 채소와 포화지방이 적은 육고기를 섭취하고, 충분한 유산소성 활동으로 꽉 채워진 하루 일과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들의 소중한 반려견의 삶의 질을 드높이기 위해서, 우리는 반려견의 유년기부터 많은 것들을 시도하고 또 먹여왔다. 그렇게 대략 8년이 지나면 우리들의 반려견은 속절없이 노견이 된다. 원하던 원치 않던 우리가 애써왔던 양육방식의 옮고 그름은 노견이 된 반려견의 건강상태로 판가름 난다.
도솔이는 주 4일. 하루 40분 이상.사계절 모두 어김없이 산책했으며, 하루 두 끼는 도솔이만을 위한 맞춤형 화식과 양질의 건사료를 블렌딩한 건강식으로 채워졌다.
급수(汲水)와 관련해서는 낮 시간 동안은 ‘생수’를, 저녁 시간 이후로는 물 대신 칼슘이 풍부하고 소화가 잘되는 ‘락토프리 우유’를 제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