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매생 Apr 30. 2020

나의 할아버지 김석영씨에게 보냅니다.

<쇼코의 미소>를 읽고


할아버지가 보고 싶은 거 같다. 김석영이라는 노인의 삶을 오히려 그가 죽고 나서부터 더 곱씹어 생각하게 된다. 이 무슨 비효율인가 진짜.

할아버지는 십년을 넘게 아프고 삼년을 넘게 침대에 누워있다가 재작년 7월 6일에 돌아가셨다. 옛날 사람인 할아버지는 공직 생활을 몇 십년 했는데도 여전히 괴팍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능구렁이 같은 사람이 되는 편이 더 쉬웠을텐데 말이다). 사람 대하는 태도가 기본적으로 꼬장꼬장했다. 할머니를 ‘빵녜(마빡+여편네의 합성어였던 거 같다)’라고 부르는 것이 그나마의 애칭이었고, 자식들을 필요 이상으로 엄하게 대하고, 며느리인 우리 엄마의 드라마틱한 말과 행동을 자주 못마땅해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나마 나와 남동생에게는 유하게 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식사 자리에서는 항상 조금쯤 긴장하고 있었다. 언제 또 괴팍한 잔소리를 늘어놓을지 모르니까.

기억 나는 가장 어린 순간부터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거나 위아래 층에 살거나 옆옆 동에 살거나 했다. 그때 할아버지는 이미 은퇴해서 집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었다. 내 눈에 보인 할아버지는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서 밥상에서 사람들을 돌아가면서 구박하는, 그런 전형적인 노인이었다. 노인네들이란 그렇지 뭐, 나는 대충 싸가지 없고 무심하게 생각했다.

할아버지 가까이에서 자란 영향으로 나는 노인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애살맞게 굴었다.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그건 ‘노인들은 원래 그러니까’ 라는 기만에서 나온 동정심과 참을성이기도 했다.) 나는 셔틀 버스를 기다리는 벤치에서 매일 마주치는 할아버지와 자주 초콜릿을 나눠먹었고 나이 지긋한 기사님들과 쉽게 말을 텄지만 정작 우리 할아버지에게는 무심했다. 나는 그냥 내 마음이 내킬 때, 미안한 마음이 갑자기 솟구칠 때, 용돈이 필요하거나 엄마 아빠로부터 도망칠 구석이 필요할 때나 가끔 할아버지를 찾았다. 그건 내가 할아버지를 그저 그런 노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어떤 호기심도 없이.

지금도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싶은데, 사춘기 무렵 내게 제일 다정했던 사람은 할아버지였다. 나는 그때 하루에 세번씩 엄마랑 악을 지르고 죽어라 죽을란다 하고 있었다. 엄마는 막 큰 수술을 끝내고 쇠약해져 있었지만 나를 교정하고 제 입맛에 바꿔놓기 위해서라면 남은 힘을 끌어모아 있는 힘껏 고약하게 굴었다. 나는 환자인 엄마의 마른 몸을 볼 때마다 죄책감을 가졌고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지 못하는 나를 자책했다. 물론 자책하다 지칠 때가 많았고, 나는 뜨끔뜨끔 스스로가 미워도 모르는 척 다시 있는 힘껏 엄마를 원망했다. (환자인 엄마에게 어떻게 그렇게 못되게 구냐고, 어떻게 아픈 엄마가 새벽에 집을 나간 나를 찾으러 온 동네를 헤매게 하냐고? 그건 사실 열대여섯 살 먹은 내게는 너무 당연하고 쉬운 일이었다.) 미워하든 자책하든 둘 중 어떤 마음을 가져도 나는 나를 지치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무렵 내가 블로그에 써갈긴 악다구니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숨이 찬다.

나는 싸우다 미워하다 얻어맞다 말대답하다 지칠 때면 걸어서 오 분 거리 할아버지네 집으로 슝 피신했다. 맨 처음 고집으로 굳어진 얼굴로 할아버지 집을 찾아갔을 때였다. 엄마랑 또 싸웠어요. 여기서 지낼 거에요. 할머니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하냐’는 얼빠진 얼굴로 나를 반기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서있었다. 나는 멋대로 쿵쿵 거실에 들어와서 여기서 지내겠다고 선언하고서도,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꼿꼿하게 굳어있었다. 그러다가 울음을 터뜨려버렸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나를 꼭 안아주면서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라’고 말했다.

하나도 따뜻하지 않고 깡말라서 딱딱한 할아버지 품. 나는 처음으로 안겨보는 그 품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다가 그 날 후로도 며칠을 더 그 집에서 지냈다. 그냥 테레비를 보는 할아버지 옆에 뚱하니 누워서. 같이 전국노래자랑을 멍하니 보고 핸드폰 게임을 하면서. 나는 그 기억을, 할아버지 방으로 받아들여진 기억을 곱씹으면서 남은 십대를 근근이 보냈다.

그 기억으로 먹고 살아놓고도 나는 할아버지가 엄마를 미워해서 나를 가여워했던 것이라고 오래 비관했다. 기억 없는 채로 병상에 누워 스러져 가던 이삼년 동안에도, 나를 보면 빙그레 웃는 그의 얼굴을 보았지만 말이다. 할아버지는 나를 사랑,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그러다가 나는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를 읽고 나서야 뒤늦게 예감한다. 화자에게 불퉁한 소리 밖에 못하고 늘 맘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구기고 있었던 괴팍한 할아버지가, “난 그거, 멋지다고 본다”며 영화 일을 하겠다고 고집 부리는 화자를 토닥였을 때... 별 말 할 솜씨는 되지 못해서 그렇게 촌스럽고 거칠게밖에 말하지 못하는 그 양반을 보고 나서야.

이제는 할아버지가 죽어 확인할 수 없게 됐지만, 나는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게 되었다. 괴팍한 우리 할아버지가 자신 최선의 방식으로 나를 사랑했구나... 이 깨달음은 나를 다시 이십대 동안, 남은 생애 동안 먹여살릴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아주 비효율적인 시간차로 할아버지를 그리워하고 궁금해하게 되었다. 생전에는 내게 그저 그런 노인에 불과했던 김석영씨를.



작가의 이전글 어디선가 읽은 너무 슬픈 소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