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만 보면 감정은 스킵

정서라벨링

by 구뜨마망


행동만 보면,
혼낼 일이 많아지게 된다.

그리고 다시 ‘미안함’으로

나에게 되돌아오는 과정이 된다.

아이의 행동이

너무 과하다고 느낄 때,

"이건 고쳐야 해."

"지금 이 태도는 그냥 넘어가면 안 돼."
"이대로 두면 버릇된다."

보여지는 면에 영향을 받아,

‘이해’보다는 ‘교정'하려는 마음이 들어

혼내는 쪽으로 더 쉽게 기울어진다.




사실 어른도,
아직 마음을 말로 다 옮길 수 없다.

아이는 속이 불편한 건지,
마음이 복잡한 건지,

무엇이 싫고 뭐가 서운한지를
정확한 단어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것을 문제 있는 행동으로 본다면,

아이는 더 이상 표현하려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표현해도 이해받지 못한다는 경험은,

아이를 침묵하게 만드니까.

그리고 어쩌면
그건 내 어린 시절에도 느꼈던 감정일지 모른다.

말하고 싶었지만,
말해도 소용없을까 봐 스스로 멈춘 기억.
표현했지만, 돌아온 건 혼남이나 무시였던 순간들.
결국 마음을 감추는 법을 배웠던 그 시절의 나.

그때 하지 못했던 감정 표현이,
지금 아이를 마주한 순간
나도 모르게 자동반응하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궁금한 것을 묻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가 자기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그 마음속 이야기를 따뜻하게 옮겨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늦게와서 속상했구나"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는

이걸 '정서명명(effect labeling)'이라고 한다.

신기하게도,
느꼈던 감정이 단어가 되는 순간,
불편했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감정을 인식할 수 있게 되고,
그게 곧 조절로 이어진다.

부정적 감정을 단어로 표현하게 되어

느끼는 뇌가 안정되는 효과도 있다.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우리가 아직 그 감정의 언어를 번역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

먼저 감정을 설명해줘야 할 사람은

부모 자신일지도 모른다.

아이의 행동이 거칠게 보였던 그 순간
나는 놀랐는지, 속상했는지,
불안했는지, 아니면 그저 무력했던 건지.

그건 과거의 어떤 장면을 재생하게 했는지.

아이가 감정을 말로 다루기 어려운 것처럼,
부모도 감정을 다루는 일이 쉽지 않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던 게 아니라,
조절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흔들렸던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부모도 자기 감정을 인식할 시간이 필요하다.

혼내려 했던 나를 미워하기보다,
그때 내 안에서 올라온 감정의 순간을
한 번쯤 말로 옮겨보는 그 과정을 부모가 먼저 해보이면,

아이는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법을

부모는 그 마음을 따뜻하게 번역하는 법을

조금씩 익혀간다.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연습이 없었던 탓이니까.

나쁜 의도가 없었다는 게

이 관계의 본질이다.

그 누구도
상처 주려는 마음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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