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고향과 내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음식
제 고향은 포항입니다.
사람들이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 포항이라고 이야기를 하면 보통 2가지를 물어봅니다.
하나는 거기에 무슨 시장 있지 않냐고 물어보고,
다른 하나는 오른손을 들고 손바닥을 위로 보인 후 손가락을 위로 뻗어 이거 있지 않냐고 물어봅니다.
첫 번째의 시장은 엄청나게 큰 시장인 포항 명물 죽도시장이고,
두 번째의 손은 섬을 제외하고 가장 먼저 해가 뜬다는 호미곶의 해돋이 손입니다.
저희 아버지 고향은 부산입니다.
아버지의 청춘은 부산에서 시작했고 결혼 전까지 부산에서 생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국수를 많이 드셨다고 했습니다.
부산은 구포국수가 유명했고,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국수를 찾을 때 무조건 구포국수만 찾았습니다.
어머니가 국수를 만들어 줄때면 하면 항상 '국수 그거 구포국수가?' 하고 꼭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국수는 구포국수라는 말을 들으며 국수를 먹었습니다.
종종 다른 국수를 먹기도 했는대 그때마다 아버지는 그 국수를 별로 드시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렸고 맛을 잘 몰랐으며, 그냥 국수가 맛있어서 아무 국수나 잘 먹었습니다.
국수를 만들기 위해서는 멸치, 다시마, 표고버섯, 디포리 등등을 넣은 멸치육수에 바로 삶아서 찬물에 씻은 국수를 넣습니다.
그리고 호박, 김치, 계란 등의 그때그때마다 달라지는 고명을 국수 위에 올려 취향대로 먹을 수 있습니다.
멸치육수를 한가득 부어 따뜻한 국수면을 면치기와 함께 입 한가득 넣으면 그렇게 맛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멸치육수로 국물을 내고 구포국수를 삶아서 넣은 국수를 좋아했고, 작은누나는 매콤한 비빔장이 들어간 비빔국수를 좋아했습니다.
물론 저는 둘 다 좋아했습니다.
학업을 위해 포항을 떠났고, 대전이라는 타지에서 생활하면서 국수를 먹을 때면 이 국수가 구포국수일지 한번 생각해보곤 했습니다.
마트에 가서 국수를 살 때면 제일 먼저 구포국수가 있는지 찾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구포국수를 들으며 자라왔고, 구포국수가 어디에나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지만 타지인 대전에선 구포국수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맛있는 녀석들'에서 국수편이 방송되는 것을 보았고, 경남 지방에서 국수를 먹는데 특집 이름이 구포국수였다.
저느 반가운 이름을 보며 TV에 집중했습니다.
김준현이 정말 국수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구포국수가 왜 구포국수인지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6.25 피난 이후 부산의 구포 지역에서 국수를 만들기 시작했고, 먹을게 부족하던 시절 쌀 대신 밀가루로 만든 국수의 수요가 늘어감에 따라 1980년대까지 구포에서 생산되는 일명 구포국수가 부산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기술과 교통이 발달하면서 국수를 만드는 곳이 늘어났고 유통이 활발해지며 구포국수의 힘은 점차 사라져 갔고, 지금은 부산에서 생산되는 국수 이름을 통상 구포국수라고 부른다고 했습니다.
또한 구포국수는 다른 국수와는 달리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국수를 건조하는 과정에서 부산 바다의 해풍으로 인해 국수에 자연스럽게 염분이 흡수가 되어 국수 자체에 적절한 간이 배인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구포국수는 다른 국수와는 다르게 국수 자체만으로도 간이 되어있어 국수만 먹어도 맛있다고 했습니다.
이 설명을 듣고 나니 왜 아버지가 구포국수만을 찾았는지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국수의 맛도 맛이지만 구포국수는 아버지의 고향인 부산의 추억이 담긴 음식이었던 것입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아버지의 어린 시절 배를 채워주었던 구포국수가 세월이 지나도 구포국수로 인해 어린 시절의 추억이 살아남과 함께 세월의 흐름을 느끼는 향수를 불러오는 음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젠 아버지를 이어 구포국수는 저의 고향에서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음식은 단순히 맛이 아니라 우리의 추억과 향수를 불러오는 신비한 마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국수를 보면 항상 이 말이 떠오릅니다.
'아빠 국수 드세요.'
'국수? 국수 그거 구포국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