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이란 때론 현실보다 무섭다
아이슬란드는 미지의 세계다.
여행을 마친 뒤에도 여전히 그렇다.
긴 시간 동안 아름답고 신비로운 풍경에 취해서 돌아다니고도 그 거대한 섬의 극히 일부만을 들여다봤음을 부인할 수 없다.
땅은 쉽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고 우리는 눈보라를 뚫고 마음을 졸이며 앞으로 전진해야 했다.
폭설이 내리던 밤엔 앞으로 가던 차바퀴가 공중에 떠서 헛돌았고, 되돌아가기 위해 차를 돌렸을 땐 우리가 지나온 길마저 두툼한 눈으로 뒤덮여 공포에 떨어야 했다.
밤은 늘 일찍 찾아왔고 길었으며 아침은 불현듯 찾아와 고요했다.
어릴 때 나에게 미지의 세계란 아마존 열대 우림 속이었다.
높고 빼곡한 나무에 가리워 어떤 시선도 밖에서 안으로 통과하지 못했고 어떤 생명체와 식물이 서식하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곳엔 아나콘다라고 불리는 거대한 뱀이 있다고 했고 원주민이 있다고도 했다.
사람의 시선과 손길이 닿지 않는 자연은 경외의 대상이고 미지의 세계였으며 그렇기에 그 속으로 들어갈 것을 생각하면 두려웠다.
남극이나 북극, 아프리카의 사막 또한 그랬다.
미지의 세계란 그렇게 접근이 어렵고 쉬이 상상할 수 없는 것에 있는 듯했다.
아이슬란드도 내게 그러한 곳이었다.
북극에 한없이 가까운 땅엔 생명의 흔적은 희미하고 극한의 추위와 빙하만이 있을 듯했다.
우연히 TV에서 아이슬란드를 보지 않았다면 그곳에도 푸른 대지가 있고, 아름다운 폭포가 있으며, 운이 좋은 날 하늘에서 오로라를 볼 수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상상이란 때론 현실보다 무섭다.
우리가 돌아다닌 경로를 '링 로드'라고 했다.
아이슬란드를 둥근 형태로 빙 둘러 이동하는 동안 11일이 지나갔고, 길은 결코 아이슬란드 중심부로 뻗어있지 않아서 진입을 불허했다.
여행을 마치고도 나는 지나온 가느다란 경로 외에는 아이슬란드에 대해 알지 못한다.
피오르드 마다 높게 솟은 절벽과 산 위에 무엇이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아이슬란드는 황홀하게 아름답다.
공항버스를 타고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 발을 디뎠을 땐 이전에 느끼지 못한 서늘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그리 춥진 않았다.
0도. 바람이 불지 않는 이곳엔 매서운 추위보다 겨울 특유의 차가운 느낌이 가득했을 뿐이다.
직전까지 머물던 런던의 11월은 아직 가을이었고 겨울옷은 미처 준비하지 못해 얇은 옷을 여러 겹 포개 입었다.
세 시간 남짓의 비행으로 계절을 넘어온 듯했다.
배낭을 메고 구글에 저장해 둔 숙소 위치로 걸음을 옮기는 동안 레이캬비크 외곽을 눈에 담았다.
해가 저문 도시는 수수하고 차가웠다.
에어비앤비로 구한 숙소는 중심가 상점거리 끄트머리에 위치해 있었고 누군가 켜 둔 라디에이터가 공기를 데워 따뜻했다.
충분히 큰 실내는 전체적으로 모던한 인상을 줬으나 패브릭 제품과 목조 가구 배치로 차가운 느낌은 아니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와선 마라토너들이 입을 법한 짧은 트레이닝 반바지와 민소매로 갈아입었다.
몸을 달군 열기가 빠져나가길 기다리는 동안 초인종이 울렸다.
나의 일행이 도착했다.
딱히 정확한 나이도 모른 채 맞이한 일행은 온라인에서 만났다.
아이슬란드를 함께 여행한다는 것은 동네 친구들의 모임처럼 가볍게 내딛을 수 있는 만남이 아니었지만 우린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동행을 결정했다.
두 명은 한국에서 반나절이 넘는 시간을 날아왔고, 나는 세계여행 중 런던에서 넘어왔다.
레이캬비크에서 진행되고 있는 음악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전날부터 도착한 일행도 있었다.
이렇게 넷이서 11일 동안 함께 여행한다.
한국에서 건너온 이들의 거대한 짐을 숙소 한쪽에 정리하고 통성명을 마칠 무렵 마지막 일행도 숙소로 돌아왔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덥수룩한 콧수염을 기른 청년은 주황색 비니를 쓰고 펑퍼짐한 카키색 카고 바지를 입었다.
아이슬란드라는 나라를 여행하기에 앞서 음악 여행을 하고 온 이 남자에게 손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는 어색한 얼굴로 멋쩍은 미소를 띠며 손을 맞잡았다.
면세점에서 사 온 술을 꺼내어 잔을 부딪히는 동안 그는 상기된 얼굴로 아이슬란드 음악의 놀라움에 대해 이야기했고, 한국에서 온 두 남자는 앞으로의 기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동행에 대한 즐거움이 마음에 차올라서 웃었다.
모호한 인터넷의 약속과 인연이, 쉽게 오기 힘든 아이슬란드에서 실체가 되니 그 감정이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고 감격스러웠다.
처음 보는데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