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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바다 Nov 03. 2023

나의 가늘고 긴 수영 여정

믿기지 않지만 엄마를 떠나보낸 후 벌써 3달이 되어 가고 있다. 밀물처럼 밀려오던 서러움과 소용돌이처럼 일던 슬픔이 가고 난 후 가슴을 저미는 그리움과 외로움이 찾아왔다.     


업무로 만난 큰 언니뻘 되는 분과 점심을 같이 먹다가 자연스레 엄마 이야기가 나왔다. 그분도 3년 전 어머니를 여의었는데 코로나 시국이었던 데다 외국에 나와 있어 임종은커녕 엄마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시기를 어렵사리 떠올려야 했던 만큼 심리적으로 큰 충격이었다고 했다. 어머니 나이가 79세였지만 엄마 잃은 슬픔은 나이와는 무관하게 3년 동안 이어져 너무나 힘들었다고.     


그나마 그 시기를 무사히 버틸 수 있었던 건 달리기였다고 하는데 숨이 차서 다른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달리고 나면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고 했다. 어쨌든 나아지기는 하는구나... 아침저녁으로 살짝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져 가고 있는 요즘, 조금씩 우울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 내 마음에 약간의 위안이 찾아왔다.     


그리고 나에게는 수영이 있다! 정말 지리멸렬하게 이어진 수영 완성을 향한 나의 여정은 도대체 언제 방점을 찍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나에게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수영이 있다. 엄마를 건강하게 추억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의 힘을 기르겠다는 마음으로 그날 저녁 나는 다시 수영장 차가운 물속에 몸을 담갔다.       



                                생각해 보니 시작부터 순탄치는 않았구나


돌이켜 보니 나의 수영 배우기는 내가 23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시작되었다. 17년이나 되었으니 돌고래가 되었으리라 생각할 법도 하지만 몰두할 때보다 쉬어갈 때가 더 길었으니 그나마 포기하지 않은 게 용하다 싶다. 왜 수영을 배워야겠다는 결심을 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매년 여름, 흥분된 마음으로 바다를 찾는데 수영을 못하는 사람에게 바다는 의외로 심심한 공간이라는 것. 그 광활한 바다에서 심심하게 보내는 나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고, 화가 나 수영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23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신림동에 들어갔고, 근처 청소년회관에 아주 값싼 수영장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호기롭게 단체 강습 신청을 했다. 첫 수업, 떨리는 마음을 안고 물속에 들어갔는데 웬걸 심한 락스 냄새는 기본이고, 한 치 앞을 볼 수가 없었다. 물이 너무 더러워 심리적 공포감과 불쾌감이 극에 달했다. 그날 강습료를 환불받았다. 그땐 몰랐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여정이 17년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을지.     


그리고 약 6년 후, 다시 수영을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그때는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터라 시간은 없었고 수영에 대한 자신감도 없어 개인 레슨을 받았다. 전문 강사가 아닌 수영을 좋아하는 대학생에게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강습을 받게 되었는데 6~7번쯤 즐거운 마음으로 강습도 받고, 개인 연습도 했다. 아직은 25m 한 바퀴 돌기도 벅차지만 꾸준히 연습하면 실력이 일취월장할 것 같았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실력은 노력에 정비례하지 않는다. 반드시 정체기가 온다. 정체기와 함께 자유형을 할 때 몸 전체가 긴장되어 수영만 하고 나면 어깨가 너무 경직되었고, 강사님에게 이런 고충을 털어놓았지만 잘하고 있다는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나는 또 그 정체기를 넘지 못하고 3~4개월 정도의 짧은 수영 탐사기는 중지되고 말았다.      



                                          남편과 함께 한 수영 여정


그러다 지금의 남편이 된 남자친구와 오랜만에 연애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 사람의 물 사랑은 상상을 초월했다. 나는 산타기를 좋아하고, 남편은 물놀이를 좋아했지만 남편의 물놀이는 곧 인생 그 자체라 애정의 깊이에서 확연한 차이가 났다. 이 남자와 평생을 함께 할 결심을 하게 되면서 다시 수영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혼하고 2년 후, 첫 번째 해외 근무 기회가 생겼고, 파견 전 시간이 났다. 앱을 통해 알게 된 소규모 수영 강습 5회를 무사히 마쳤다. 선생님도 좋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발전이 있으려면 내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부딪혀야 했는데 해외 발령을 핑계로 어영부영 시간이 지나버렸다.     


서른이 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나의 수영 실력은 자유형과 평영의 영법을 익혔지만, 25m 왕복 한 바퀴를 하면 숨이 차서 수영장 구석에 서서 쉬어가야 하는 정도. 굳이 따지자면 아직도 초급에 머무르고 있는 단계였다. 텍사스로 발령을 받게 되었는데 동남아를 방불케 하는 습한 날씨에 짧은 겨울이 있었다. 훌륭한 야외수영장이 많았고, 수영을 좋아하는 남편이 옆에 있었다.     


노련한 한국인 코치 선생님께 출근 전, 일주일에 한 번, 틈날 때는 두 번씩 강습을 받았다. 그리고 틈날 때, 남편과 함께 수영을 갔다. 퇴근을 하고 저녁을 빨리 먹고, 느지막한 시간에 야외수영장으로 들어서면 밝은 달빛이 수영장에 내리고 있었다. 게다가 레일 초입은 수심이 낮았다가 점점 깊어져 3m까지 깊어지는 수영장이어서 마치 달빛 아래 바다 수영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저녁 수영을 하면서 늘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하고. 물론, 수영 실력은 빠르게 좋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몇 번의 설명을 들어도 체화되지 않던 평영의 팔/다리 타이밍을 익혔고, 물에 제법 익숙해졌다. 호흡도 조금 편하게, 그리고 다리보다는 팔을 더 많이 쓰게 되었다. 하지만 열 바퀴씩 도는 것은 여전히 무리. 강습 마지막날 친절한 강사님께서 한국에 돌아가면 단체 강습반에 들어가서 체력을 키우라고. 그런 말을 하셨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 말을 듣고 한국으로 돌아와 동네 수영장 저녁반을 수강했다. 퇴근 후 힘차게 수영하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받는 것만 해도 큰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한 반에 20명씩 수강하는 단체강습은 나와 영 맞지가 않았다. 뒤에 쫓아오는 사람들이 신경 쓰였고, 따라 잡힐까 힘들게 팔다리를 저었다. 그리고 내가 조금 속도를 내어 앞사람에게 다가가면 앞사람 발에 걷어차였다. 그 고비를 넘기면 조금 더 강한 수영인이 되었을 텐데 이상하게 그 고비를 넘을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수영에 대한 나의 가늘고도 긴 집념은 계속되어 주말 아침이면 가끔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하곤 했다. 그러다 임신을 하게 되었다.     



                          또 한 번의 좌절과 도전. 마지막 도전이 되길 바라며


아이가 두 돌이 되어 미얀마로 넘어왔으니 약 3년 동안 수영장 물에 몸을 담그지 않았던 셈이다. 그리고 미얀마에 정착하게 된 아파트에 수영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달간은 수영장 근처에 가지 않았다. 이제는 나의 영역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서였을까? 하지만 이제는 나의 끊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이어온 내 수영 여정에 종지부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에게 종지부란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내 마음속으로 이만하면 됐다라고 생각하는 수준이다. 평영은 편하게 몇 바퀴씩을 돌아도 괜찮을 만큼. 자유형은 25m 레일을 5번 정도 쉬지 않고 왕복하는 것 정도다. 배영은 영 자신이 없어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었고, 접영은 17년 전부터 내 영역이 아니었다.   


그런 마음을 먹고 있던 차에 함께 개인레슨을 받아보지 않겠냐는 지인의 제안을 받게 되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우리의 가장 큰 목표는 수영 실력을 늘린다기보다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수영장에 가는 것. 그리고 물과 더 이상은 멀어지지 않는 것. 소극적인 목표를 함께 가지고 일주일에 1번. 그것도 30분 레슨을 시작했다.     

일주일은 빨리 돌아왔고, 각자의 사정과 생리주기 등등으로 함께 수영 수업을 들을 수 있었던 날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 잃어버렸던 수영에 대한 흥미를 되찾고, 생각보다 친절하고, 체계적인 선생님의 레슨 덕분에 접영에 입문하게 되었다.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접영 시범을 보여주는 선생님의 자세가 한 마리 돌고래같이 너무나 유연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어느새 접영이 내 인생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렇게 한창 수영에 재미를 붙일 때쯤 엄마를 잃었다. 생각보다 너무나 힘들고 슬픈 늪이었다. 특히, 엄마의 마지막은 물 한 모금 넘기는 것조차 힘들어 자꾸 그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를 보내고 얼마간은 물을 마시는 것이 쉽지 않았다. 물에 들어가 숨을 참는 상상만으로도 죽을 것 같았다. 다시 수영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엄마를 보내고 3달 후, 그 슬픔에도 어느새 익숙해지고, 나는 이렇게 수영장에 서 있다. 그동안 달라진 것은 없고, 내 인생에 엄마만 없어졌다. 많은 것에 흥미를 잃었고, 가장 행복한 순간에도 엄마의 부재가 그늘을 드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영부영 미루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말, 내가 하고 싶었던 일, 나의 행복을 미루다 보면 하나도 이룬 것 없이 어느 순간 나의 마지막도 불현듯 찾아올 것이라고. 그 엄중한 현실만이 내 현실 앞에 가득했다.      


수영을 편하게 하는 것이 뭐 그리 인생에 대단한 일이겠나만은 적어도 내가 근 20년 동안 해보고 싶었던 일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다행히 이제까지 그 가느다란 끈을 놓지 않았다. 순간순간 포기하고, 쉬어가기도 했지만 또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시작하기도 했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별로 없는 게 인생이라. 이 가느다란 끈이라도 내 의지로 매듭을 짓고 싶다. 그리고 매듭을 짓는 과정에 소소한 즐거움이 따를 것이니 예쁜 매듭 하나를 만들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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