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캠프의 인솔교사 자원봉사 중 만난 민주주의’의 두 번째 이야기
매일 아침 인솔자들은 다른 이보다 일찍 일어났다. 식사하러 나오지 않은 아이들의 안부를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 여행이 좀 더 즐겁고 편안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밥은 먹었는지, 몸은 어떤지, 필요한 건 없는지 등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이번 통일 캠프 참가자는 모두 자비 부담자였다. 단장님과 사진기사, 젊은 인솔자와 부모 인솔자 모두 똑같은 비용을 지불하고 캠프에 참여했다. 한인 유럽 연합회 회장님과 사무총장님, 그 외 도움을 주신 연합회 회원분들 모두 생업을 잠시 중단하고 5박 6일 캠프 일정에 무보수로 참여해 주셨다. 한국과 유럽 청소년(교민 2세 또는 3세)들에게 ‘통일’의 씨앗을 심어 주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만든 ‘독일 통일 캠프’. 열정 가득한 마음으로 모인 어른들은 최선을 다해 일정을 짜고 아이들을 챙겼다. 모닝 체크도 그중 하나였다.
캠프 이틀째, 나는 유럽 친구들 방 번호도 모른 채 한국 친구들만 챙겼다는 걸 알았다. 어이쿠! 부랴부랴 유럽 담당 사무총장님께 여쭸다. “유럽 친구들 방 명단을 받을 수 있을까요? 아이들 모닝 체크를 하려 합니다.” “그 애들은 그냥 두세요. 이 친구들 깨우는 건 실례예요.” 띵!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따순밥 한 숟갈 먹여 학교 보내고픈 마음으로 아침마다 아들 깨우던 습관이 무의식적으로 독일로 넘어왔음을 알아차렸다. 유럽 아이들은 깨우면 실례라는 상황을 그냥 문화 차이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도 혼란스러웠다. 뭔가 나를 불편하게 하는 신호가 감지되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어디에서 흘러나온 건지 찾아야 했다. 나를 이해할 시간과 공간이 절실했다. 그러나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쉴 틈 없이 아이들을 확인하고 이동하기를 반복하면 어느새 호텔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서로 끝 인사를 나누고 방으로 돌아오면 침대와 나는 한 몸이 되었다. 흐릿한 마음을 끌어안고 정신없이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어느새 난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내 마음 안에는 아름다운 것이 참 많다. 존중, 따스함, 자유, 배려, 배움, 성장, 알아차림, 사랑, 도움, 기여, 공동체, 건강, 수면, 스킨십, 친밀함… 상황에 따라 이 욕구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내 삶을 채우고 이 세상을 가득 채우길 꿈꾼다. 아이들의 건강, 즐거움, 재미가 중요했고 캠프 내의 편안함과 원활한 진행도 중요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스스로에게 주어진 자유를 충분히 누리되 그 결과는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배움이 있기를 바랐다. 한국으로 돌아와 ‘나’를 가만가만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흐릿한 마음을 품은 채 경계 위에 서 있었던 경험이 내 품을 조금 넓힌 듯하다.
오늘도 나는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어정쩡히 서 있다. 그 경계 위에서 나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깊은 숨을 두어 번 쉬어 본다. 아주 잠시 멈추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지만 폼 나게 서는 그날도 오리라 꿈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