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축구 선수이다. 손흥민처럼 필드를 날아다니고 싶은데 마음뿐이다. 공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점점 지쳐간다. 공은 항상 내 발과 멀리 있는 그들의 세계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몸이 마음 같지 않아 속이 터질 듯 답답하다. 그 순간 코치가 나를 가리키며 소리친다. “ 너도 좀 열심히 뛰어야지!”
축구를 시작한지 10개월이 되던 시기, 아들에게 있었던 일이다. 아이들은 공이 저편으로 굴러가면 우르르 몰려갔다가 이편으로 오면 또 우르르 달린다. 11월의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뛴다. 어떡해서든 공 한번 차 보겠다는 아이들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경기가 시작되고 30분이 지나도록 단 한번도 뛰지 않은 아이는 우리 아들뿐이다. 느직느직 걸으며 공을 달라고 소리만 지른다.
내가 보기엔 아들이 공을 차지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결국 아들은 울먹이며 필드를 벗어나 대기실에 서서 구경하던 내게 다가왔다. 난 경기 중이니 얼른 들어가라 등을 떠밀었다. 경기는 계속 이어졌다. 잠시 뒤, 코치는 나를 의식했는지 아이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야! 너희들! 축구 잘한다고 너네만 공차면 돼? 같이 차야지!”
‘못하는 애한테도 공을 한 번씩 주란 말이야!’ 내 귀엔 이처럼 들렸다. 경기가 끝난 뒤 아들은 승용차에 타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꾹꾹 참았던 서러움이 터진 모양이다. 나는 NVC로 아들의 마음을 풀어주려 시도했다. “ 속상해?” “응, 속상해!” 아들은 더 크게 울었다. “그렇구나, 짜증도 나는 거야?” “엉! 짜증 나. 엉엉엉” “답답해?슬퍼?좌절스러운거야?” 아무리 ‘그렇구나’로 느낌을 읽어줘도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나도 서서히 지쳐갔다. 내가 아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달래도 보고 윽박도 질러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자포자기한 상태로 그냥 툭 한마디 했다. “축구를 잘하고 싶었어?” 이 말에 아들은 “응!” 짧게 대답했다. 울음도 잦아들었다. ‘어? 이건 뭐지?’ 나는 질문을 이어갔다. “공을 가지고 친구들과 즐겁게 놀고 싶었구나.” 아이는 내 말에 울음을 멈췄다. “아, 네가 친구들과 신나게 축구하고 싶었던 거구나!” 돌아오는 길은 상상 이상으로 가뿐하고 즐거웠다. 재미있게 놀고 싶었다는 아들의 욕구를 세 번의 질문을 통해 읽어줬을 뿐인데 아이는 속상했던 마음을 추슬렀다. 3분도 되지 않는 짧은 순간, 아들과 나 사이에 일어난 첫 번째 기적이다.
모든 사람은 보편적인 욕구가 있다. ‘사랑, 성취, 성장, 재미, 삶의 의미, 자유로운 움직임, 편안함, 배려,기여, 연결, 영성,…’ 이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돈도 벌고 집도 산다. 공부도 하고 여행도 간다. 우리 아들은 축구를 통해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고 싶었다. 축구를 잘하고 못하는 건 아이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재미’라는 욕구를 채우는 방법은 꼭 축구가 아니어도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