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나시나요? 그럼 화를 내야지요. ‘화’를 잘 낼 수 있습니다.
“나는 연민으로 서로 주고받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 우리의 본성이라고 믿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의문을 늘 품어왔다. 첫째, 무엇 때문에 우리는 본성인 연민으로부터 떨어져 서로 폭력적이고 공격적으로 행동하게 되었을까? 둘째, 이와 달리 어떤 사람들은 견디기 힘든 고통 가운데서도 어떻게 연민의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가?(마셜 로젠버그의 비폭력 대화 첫 단락)”
마셜(위 사진)은 1943년 여름 미시간주 디트로이트로 이사했다. 얼마 뒤, 동네 공원에서 일어난 사건이 인종 갈등으로 번지며 4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폭동이 끝나고 학교 가기 시작했을 때, 그는 이름이 피부색만큼이나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같은 반 남학생 두 명은 그를 카이크(유대인을 비하하는 말)라 부르며 발로 차고 때렸다. 우리의 본성인 연민을 회복하도록 돕는 ‘비폭력대화(NVC Nonviolent Communication)의 시작은 여기서 출발했다고 그는 말한다.
누군가 “비폭력 대화가 뭐예요?”라고 물어보면, 난 “궁금하세요?”라 되물어보고 빙긋 웃는다. 내가 상대의 거울인 셈이다. “방이 이게 뭐냐?!” 퇴근 후 남편의 첫마디에 “오늘 좀 피곤했어? 집에서 편히 쉬고 싶었던 거야?”라며 그의 마음을 톡톡 두드려 본다. 나는 이것이 비폭력 대화라 생각한다.
NVC 모델은 4단계(관찰, 느낌, 욕구, 부탁)로 구성되어 있다. ‘빙긋’ 웃는 비폭력 대화는 일정 이상 수련이 된 사람이 할 수 있는 반응이다. 영어는 많이 듣고, 많이 말하고, 많이 읽으라 한다. NVC도 새로운 언어이기에 차근차근 충분한 연습이 필요하다. 그럼, 지난주 2학년 담임과 상담하던 상황으로 연습해 볼까?
당신이 아이 상담 차 담임을 대면했을 때 “더러워서 토할 것 같아요, 어머니! 가위를 빨아요~” 란 말을 들었다. 뭐라 말하겠는가?
1번 : 아니에요! 그런 적 없어요.
2번 : 정말요? 어쩌지요?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지도했네요.
3번 : 저희 아이가 좀 까다롭지요~ 죄송합니다. 예쁘게 봐주세요~
4번 : (……)
5번 : 무슨 말씀을 그리 심하게 하세요? 더럽다니욧!
6번 : 당신이 선생이야? 뚫린 입이면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거야?
7번 : 전근 오셔서 힘드셨나 봐요. 아이들 지도하는데 힘이 드셔서, 저희 아들의 행동이 눈에 들어오셨나요?
대화에서 첫 단추를 잘 궤는 게 중요하다. 상대의 공격 앞에서 같이 공격하면 싸우는 것이며, 수긍하면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이지 대화가 아니다. 비폭력 대화는 부드러운 대화법이 아니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잘’ 표현하는 대화법이다. 다시 말하면, 틱낫한 스님의 말씀처럼 ‘화’가 났다면 화를‘잘’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혹시, 위 번호 중 마음에 드는 답변이 있을까? 이럴 때 역할극을 해 보면 확실히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는데 “아니에요,그런 적 없어요!”란 말을 당신이 선생님이 되어 들어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선생이 한 마디 했더니, 상담받으러 온 엄마가 웬 오리발? 괘씸하네. 내가 하루에도 몇 번을 봤는데?! 엄마 맞아?’ 이런 생각을 하며 되받아 칠 것이다.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제가 봤는데!”
이렇게 되면 소통이 아닌 일방적 비난이 된다. 다른 번호들도 비슷하다. 4번은 괜찮을까? 분노를 참고 ‘네가 무슨 말 하나 들어보겠다!’ 벼르느라 말을 않는 거라면 좀 더 지켜볼 수 있겠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과 같은 비언어적 표현이 있었다면 담임은 그 다음 단계를 밟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회피하거나 싸울 수 있다. 전적으로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있다. 만약 소통(혹은 화를 잘 내기)하기를 선택했다면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더러워서 토할 것 같아요..’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 정말 당황스럽네요. 제가 정확히 들은 건가요?”
지금 선생님 입장에서 위 말을 들었다면? 잠깐 멈추고 가슴에 손을 얹어봐도 좋다. 심장이 쿵쾅쿵쾅, 뒷목이 뻐근하고 머리가 화끈거리지는 않은가? 이는 대화 분위기가 바뀌었고 주도권이 교사에서 부모로 넘어갔음을 의미한다.
비난&평가 대화에서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상황 묘사를 기반으로 한 대화가 시작된다.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비난’의 기술을 썼던 교사는 관찰 표현 앞에서 당황하며 공격을 멈출 수밖에 없다. 이게 ‘관찰’의 힘이다.
‘관찰’은 비디오카메라로 찍은 상황을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이다. 있는 그대로,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표현하는 NVC 모델의 첫 단계이다. 대화가 끊기거나 일방적이지 않고 쌍방 간 소통의 시작점이며, 선생님과 학부모 관계처럼 힘이 어느 한쪽으로 쏠려 있는 경우엔 균형의 출발점 이기도 하다.
쉬운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자녀가 부모 앞에서 홧김에 “씨 0”이란 욕을 했다. “너 뭐라 그랬어? 너 어떻게 엄마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라며 펄펄 뛰는 건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엄마 의지를 표현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소통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이는 길길이 날뛰는 엄마를 보며 반성하기보단 ‘너무 과한 거 아니야?” 란 생각에 반항하거나, 회피하려 ‘죄송하다’ 말한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뱉은 말의 정도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다. 뇌가 리모델링 하는 시기에 해당하는 사춘기 아이는 우리의 예측을 어김없이 빗나갈 것이다. 이때, “방금 엄마가 씨0 이란 말을 들었어. 내가 정확히 들은 거니?”라고 들은 대로 다시 돌려주면 아이는 자신이 한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타인이 자신이 한 말을 들려줄 때, 그 말이 귀를 통해 심장까지 가 닿는다. 바로 지금이다. 소통 가능 순간.
‘있는 그대로’, ‘보이는 대로’ ‘들려주기’ ’ 소통 가능 순간’ 모두 ‘관찰’의 다른 표현이다. 평가를 뺀 있는 그대로의 관찰은 쉬운 작업은 분명 아니다. 관찰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본인이 상대방 말에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네가 감히?’ 라던가 ‘그래, 내가 못났지…’라는 생각에 끌려가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 있어야 한다. 둘째, 비난 섞이지 않은 맑은 마음으로 들려주어야 한다. 사람이란 존재는 비난의 기미가 아주 살짝만 섞여도 기가 막히게 알아채고 마음의 문을 닫으니 말이다.
관찰로 대화를 시작함은 소통의 시작이자 상대에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불안과 분노로 움츠려 들거나 전쟁을 선포하기 보다는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다. 나는 이를 위해 오늘도 NVC 연습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