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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댁 Sep 20. 2022

내가 알 수 없는 어린 시절의 아픔 돌보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를 인정하고 스스로 위로하는 것뿐이다.

1980년대 작은 지방 소도시 여중생들은 하굣길이면 참새가 방앗간  지나치듯 떡볶이집으로 조잘대며 몰려들었다. 그들은 항상 함께였다. 쉬는 시간이면 매점에 같이 갔다. 화장실도 같이였다. 고입 시험을 앞두고 매일 'D- 번호'에게 같은  친구들이 모두 ' 합격기원' 선물을 했다. 나는 그곳에서 이방인이었다.  매일 분식집에 들르는지, 화장실은  같이 가는지,  모두에게 엿을 주어야 하는지 이해할  없는 의아함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결국 나는 내가 좋아하는 친구에게만 그가 평소 좋아하던 노란 장미 꽃다발을 선물했다. 이런 사람은 나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불행기억상실증' 있다고 어느 순간부터 믿었다. 눈이 가득 쌓인 마당 앞에  있던 어느 겨울날. 눈부시게 아름다운 눈밭을 밟지 못한  들뜬 마음으로 한동안 바라봤다. 용기  폴짝 뛰어내렸더니 무릎까지  잠긴 순간 끓어오르는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겨울이면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을 찾아 돌아다녔다. 동물의 발자국조차 없는 곳을 발견하면 꺄아~ 소리 지르며 달려가 나의  발자국을 남겼다. 여름이면 부산 고모집에 갔다. 이른 이참이면 장산에 올라 약수를  왔다.  낮엔 해운대 바닷가에서 물놀이했다. 벗겨진 피부에  소금물이 닿아 쓰라렸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대부분의 기억이 신나고 기쁜 행복으로 남아 있다. 반대로,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은 거의 없다. 엄마에게 맞았던 순간조차 사실 있다. 감정이 사라진 '기억' 길어서 주운 타인의 사진처럼 낯설다. 이런 기억도 드문드문이다.


아픔이 없었던 것은 아닐진대,  그것들이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불행기억상실증' 덕분에 나는 언제나 해맑게 웃었다. 단, 영화 볼 때만 빼고 말이다. 이상하게 내가 보는 영화는 대부분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슬펐다. 나는 영화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잘하는 '매우 감성적인 사람'이란 꼬리표를 스스로 붙여 두었다.


얼마  '너에게 가는 '이란  소수자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 나는 다시 감성적인 사람이 되었다. 한결과 나비, 예준과 비비안  가정 이야기다. 한결과 예준은 트랜스젠더와 게이라는  정체성을 가족에게 드러낸다. 그들의 엄마인 나비와 비비안은 처음엔 당황하지만 슬픔, 연민, 사랑으로 감정이 바뀌어 간다. 가족이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영화는 담담히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부모모임'이란 여덟 글자가 적인  화면을 보는 순간부터 눈물이 터져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하루 종일 몸과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아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결국 그날 저녁 우울에서 벗어나기 위해 양꼬치 집을 찾았다. 꿔바로우를 시키고 빈속에 소주  병을 마신 뒤에야 겨우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왔다.


그날은 나도  모습이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뭐가 그리 슬펐던 거지?' 남들과 다르다는 느낌으로 살아오며 갖는 외로움이 컸었나? 20~30 많은 영화를 보며 울었던  감성적인 사람이어서가 닌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나도 모른  키워가던 감정의 덩어리에 깔려 죽을까  살고자 하는 무의식적 행동이었을까?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저자 김달님)'에는 작가가 살아오며 겪었던 일상을 섬세하게 글로 표현한다. "나는 절대 작가는  되겠네. 내 아픔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글을 써야 작가지. 난 내가 왜 슬픈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글을 쓰겠나…." 중얼거리며 책장을 덮었다.


나는 영화나 책을 보며 종종 이유도 모른채 운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거라 짐작하며 ‘나’에게 이야기 해 주련다.


네가 많이 외로웠구나, 그동안 아픔을 숨겨두고 사느라 힘들었구나, 어린 윤정이가 경험한 아픔을 그렇게라도 위로하고 싶었구나, 압력솥이 터지지 않게 조금씩 김을  주듯 감정의 덩어리가 너를 집어삼키지 않게 자신을 치유해 주고 있구나.’


지금의 나는 '한계 인정하기' '스스로 위로하기'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렇게 오늘도 내가 몰랐던 또 하나의 '나'를 발견했다고 끄적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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