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학교에서 유명했던 바로 그 선생!
아들은 초등학교 적응에 1년이 걸렸다. 2학년이 된다는 건 힘든 시간의 끝이자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다. 2학년 담임이 궁금했지만 내가 알 수 있는 건 전근 왔다는 사실 뿐이었다. 첫 학부모 회의에서 담임을 만났다. 그는 열 명 남짓한 학부모 앞에서 교과과정을 설명했다. 그리곤 “학교가 맘에 안 들어요.”라 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딸 앞에서 학교 흉도 봤다고도 했다. 딸이 듣기 싫었던지 “내 학교 욕 그만해!”라고 소리쳤다는 말까지 고스란히 전했다. 당신이 속한 학교가 싫다는 이야기를 학급 설명회에서 한다? 거기에 딸이 그만 투덜거리라는 말까지 했다?! 실망스러웠다. 딸 앞에서 엄마가 할 말이 아니었다. 학부모 앞에서 교사가 할 말 또한 아니었다. 그런데도 ‘1학년 담임보다야 낫겠지…’ 라 믿고 싶었다. 이제 겨우 찾은 안정이었기 때문이다.
1학기 학부모 상담 날, “어머니! 더러워서 토할 거 같아요. 아이가 가위를 빨아요.” 선생님이 자리에 앉자마자 내게 말했다. 나는 당황스럽고 놀랐다. 마음 한편에서는 선생님이 좀 따뜻하게 아이를 보듬어 줄 수는 없는 건가, 의문이 들었다. 자신이 맡은 아이가 더럽다고 표현하는 게, 무조건 아이 행동을 고쳐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야속했다.
아들은 지난 1년간 주 1회씩 놀이치료를 했다. 놀이 상담 선생님은 아이가 많이 좋아지고 있다며 이제 치료를 마쳐도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그게 지난 겨울방학이었다. 상담을 마무리하려 준비하고 있는 단계였는데 뜬금없이 가위를 빤다니! “집에서는 소매 정도만 빨지 물건을 입에 넣는 걸 보지 못했어요.” 나는 그저 변명하기에 급급했다. 심지어 ‘선생님도 인간인데 그럴 수 있지.’라며 그를 이해하려 애쓰기까지 했다. 짧은 순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 자신이 싫었다.
그는 아들의 버릇을 강한 훈육으로 바꿔놓겠단다. 그 뒤에 말은 더 가관이다. “아이가 왕따 당할 거 같아 어머니께서 학교폭력 위원에 들어가신 거로 생각했어요.” 아마 내 얼굴색이 변하고 일그러졌을 거다. 엉덩이가 들썩하는 분노를 느꼈지만, 그 앞에선 “아니에요.” 한 마디만 건넸다. 이제 막 혁신학교 2년 차에 접어든 학교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아들이 속한 공동체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학교폭력 위원을 신청한 이유는 그뿐. 담임의 말에 바삐 보냈던 지난 1년이 허무하기만 했다. 이후 담임과 몇 마디를 더 나누었지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아들은 1학년 때도 충분히 힘들었는데 또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나는 다시 1년 동안 아들을 돌보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아들의 하굣길 표정이 밝은지 어두운지, 친구와 놀 때 컨디션은 어떤지, 축구클럽에 갈 때 표정과 돌아올 때 기분까지 촉을 세우고 관찰했다. 아들의 마음결을 매만지려 끊임없이 시도했다. 때론 답답했고 때론 화들짝 놀라며 반성했다. 때론 만족스럽고 때론 화가 났다. 지난 3년 동안 배운 ‘비폭력대화(NVC)’를 실생활에 적용하는 고난도 ‘실전 편’의 연속이었다.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지금 이런 선생님을 만난다면 ‘뭐 이런 게 다 있어? 뚫린 입이면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거야?’라는 생각과 함께, 그의 면전에 “당신이 맡은 아이를 보며 역겨움을 느낀다는 건가요? 그것도 토할 정도로? 지금 1년 동안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을 맡은 교육자가 할 소리인가요? 상담실에서 아이 엄마에게 날 것 그대로 당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걸 제가 솔직하다 받아들여야 할까요? 당신은 선생도 아니에요. 당신은 두 아이의 엄마도 아니에요. 그냥 힘들어 죽겠다 외치는 초등학교 2학년생 어린 아이네요.”라고 말했을 거다.
어렵고 힘든 시간 속에서 나는 성장했다. 지금은 주어진 상황에 내 탓 혹은 아들 탓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교육 현장의 어려움은 어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교사, 학생, 학부모 셋의 관계 속에서 풀어나가야 할 부분이다. 아들의 담임은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의 어려움을 엄마 탓으로 돌리는 교사는 문제의 원인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이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당신은 선생 자격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