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온몸으로 '나 여기있어요~ '라 외치던 아이
시어머니는 00회계법인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낮동안 아들을 돌봐 주셨다. “준이는 어쩜 이리 순한지 모르겠다. 한번도 울지도 않고 밥도 잘 먹고 엄마를 찾지도 않는다.” 시어머니의 손주인 준이는 순딩인지 모르지만, 내 아들은 징징이었다. 밤마다 자지러지게 깨어 울 때마다 비몽사몽으로 일어나 아들을 안아주었다. 나와 함께 하는 주말이면 항상 징징댔다. 블록을 쌓다가 무너지면 징징징, 레고를 맞추다 잘 안되면 징징징, 옷 입다가 뭔가 불편하면 징징. 매번 시작은 평범하지만 끝은 편치 않았다. 평일엔 순하고 주말엔 징징이가 되는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준이는 온순하다”란 딱지를 붙여 놨다. 아들이 어머니와 있을 때 울지 않고 밤이면 밤마다 끝도 없이 울어대는 이유도 고민하지 않았다. 아들이 징징 댈 때 “왜 또!! 하며 도리어 내가 아들에게 짜증을 냈다. 나는 오로지 쉬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그 해 1년 동안 아들은 그저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일 뿐이었다.
시어머니가 내게 자주 했던 말이 한 가지 더 있다. “준이는 어쩜 이렇게 과묵하니. 말도 없고 웃지도 않는다.” 석 돌이 되기 전 웃지 않았던 아이. 드라마에서 “오로로~~ 깎꿍!” 하면 아가들이 까르르 넘어가듯 웃는 장면을 볼 때면 참 신기했다. 우리 아들은 웃지 않았다. 숨바꼭질을 해도 웃지 않았고 쌓아놓은 블럭을 무너뜨릴 때도 웃지 않았다. 울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무심한 엄마가 지치기까지 했으니, 아들이 원하는 걸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들이 배고프다 말해도 엄마는 아들에게 블록놀이를 멈추지 않는다. 엄마가 열심히 쌓는 모습을 보고 아들도 마지 못해 가까이 다가와 함께 쌓는다. 몇 개 쌓으며 마음을 달래고 있는데 갑자기 엄마가 탑을 와르르 무너뜨린다. 아들은 당황스러운데 엄마는 깔깔깔 재미있다며 웃는다. 속상한 마음에 얼굴을 찡그려 보지만 엄마는 또 다시 쌓기 시작한다. 이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아들은 울기 시작한다. 엄마는 왜 우냐며 도리어 아들에게 화를 낸다.
블록쌓기는 수 많은 사건 중 하나일 뿐이다. 감정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반복된 상황 속에서 아들은 미소를 잃어갔다.눈 떴을 때 엄마가 없어도 울지 않았고 졸릴 때도 할머니가 읽어주는 옛이야기를 들으며 잠들었을 것이다. 잠이 들었을 때야 비로소 스트레스를 울음으로 쏟아냈다. 세 살 아이는 자기 나름대로 버티고 있었다. 유심히 관찰했다면 아이의 마음을 알 수 있었을 텐데... 엄마 뿐만 아니라 가족 그 누구도 그럴 여유가 없었다. 여유가 있었다 해도 방법을 몰랐을지도 모르겠다.
하루 종일 무표정하게 노는 아이, 한번도 엄마를 찾지도 울지도 않는 아이, 할머니가 산책 가지면 산책가고 낮잠 자자면 낮잠자는 아이. 이상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닌데, 우린 그냥 온순한 아이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