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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요시음회 Oct 07. 2022

제 3회, 봄

가현의 시 같은 나날, 내 플레이리스트에선 동요가 흘러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며 일어난 아침이었다. 정신없는 와중이었고, 그나마 하늘이 좋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틀째 미세먼지로 밖을 나가지 못한 아이들이 잔뜩 예민해져 나의 혼을 쏙 빼놓고 있었다. 내일은 조금 멀리 나가볼까. 푸른 걸 보러 산책가자. 봄이 오기 전에 만끽할 수 있는 겨울의 예쁜 얼굴 담고 와야지, 한동안 못 볼 테니. 지난밤 우리는 다른 침대에 누워 다른 천장을 보면서도 곁에 있는 것처럼 떠들다가 잠이 들었다.

야간 근무를 마친 소년이 집에 왔다. 그의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아서 나는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싶어 저지른 적도 없는 일을 세어보고 있었다. 소년에게서 담배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피우지 않겠다고 했는데, 일이 지난했다보다 싶어 그가 입을 떼기만을 멀찌감치서 기다릴 뿐이었다. 제 얼굴을 슥 한 번 훔친 그가 내 손목을 낚아채더니 이리 와서 앉아보라고 했다. 두 손을 꼬옥 잡아 주고서는 더 가까워질 수도 없을 만큼 가까이 다가와 내 눈을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삼촌이 돌아가셨다고. 


     삼촌이 죽었다. 


     삼촌은 맏이인 엄마의 세 번째 동생이자 장남이었다. 나는 그의 첫 조카였고, 삼촌의 아이가 셋이 되던 날까지 그에게 형언할 수도 없을 만큼의 마음을 받아왔다.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기 때문에 삼촌이라기보다 오빠였고, 친구였으며 대체 언제 철들래 내게 구박을 받다가도, 또 어느 날은 커다란 나무가 되어서 내 절망을 다 안은 채로 그늘이고 열매고 싹 다 내어주는 사람이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 어디서건 달려오는 나만의 오 분 대기조이기도 했고.

     내가 삼촌을 너무 사랑해서 엄마와 아빠와 동생은 그 사실을 반나절이나 지난 후에, 그것도 소년을 입을 통해 내게 알렸다. 소년이 부재한 밤에 홀로 있던 내가 절대로 이 죽음을 감당할 수 없으리라 가족들은 예상했던 거다. 나는 화가 나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는데, 원망하여 엄마에게 건 전화를 아빠가 받았을 때 수화기 너머로 무너지듯 할머니가 우시는 소리에 그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갈 곳 없이 길을 잃은 분노가 나를 감쌌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삼촌을 보내고 돌아온 오늘에서야 알았는데, 내 뒤로는 외할머니만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그를 사랑한 수많은 사람 중에서도 할머니 다음으로 충격받을 사람이라며 주의하여 취급될 정도로 나는 당신을 사랑했었다.  

     태초의 기억은 몇 살인지 정확히 떠올릴 수 없지만, 그가 내 얼굴에 볼을 문대서 까끌까끌한 수염의 느낌으로 남아있다. 나를 번쩍 들어 올려서 하늘로 띄우곤 엄마를 빼닮은 얼굴로 소리 내 웃던 당신. 우리는 너무 많은 순간을 함께했다. 내가 나만 한 가방을 메고 학교에 들어가던 날에도, 그로부터 구 년이 지나 학교를 그만두던 날에도. 내심 걱정하셨던 할머니들과는 달리 삼촌은 학교 눈치 안 보고 우리 놀러 다닐 수 있겠다며 진심으로 기뻐했었지. 유행에 밝지 못한 누나를 대신해 조카인 나와 내 동생이 또래 집단에서 누락되지 않도록 분기마다 옷이며 신발을 사다 날랐고, 친구들이 전부였던 나이에 뜻대로 되지 않는 관계 때문에 세상을 다 잃은 듯 슬퍼하던 나를 노래방에 데려가 밤이 저물고 새벽이 오는 내내 소리를 지를 수 있게 해줬다.

     일찍 결혼한 삼촌이 첫 아이를 안던 순간에도, 그 아이를 안은 채로 눈보라가 치던 날에 치렀던 때늦은 결혼식도, 둘째가 태어나던 날에도 나는 곁에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름을 너무 잘 지었다며 자화자찬하는 당신의 머리를 헝클었던 나. 그때 삼촌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우리는 한데 모여 이곳저곳 참 많이도 다녔는데,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누리지 못한 시간의 구멍들을 죄다 덧대어 꿰매보고 싶었는지 삼촌은 기회만 주어지면 친구들과 남동생과 우리 남매까지 데리고 바다로 산으로 부지런히 다녔다. 당신의 돈과 시간과 노력으로 일구어진 유년이었으므로 아주 작은 틈조차도 없이 가족이라면 껌벅 죽는 인간으로 나는 자랐다.

내 덕에 마흔도 되기 전 할아버지가 된 삼촌은 조카를 아끼는 만큼 손주들도 아주 예뻐했다. 너무 맞대고 싶었지만, 누구도 조심하고 아끼느라 하지 못했던 뽀뽀를 갓난쟁이였던 선우의 입술에 진하게 선사하여 이모에게 등짝을 맞으며 도망 다녔던 모습이 그렇게 선명하다. 선우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것이 선우의 첫 입맞춤이었다.

     처음은 또렷해서, 내 처음에는 삼촌이 너무 많아서 당신이 매끄럽게 떨어지지 않는다. 당신에게 배운 걸 나도 내 아이에게 가르쳤다. 아침 먹고 땡, 노래를 부르며 그리는 낙서나 입을 동그랗게 모아서 후하고 바람을 불면 입술 사이로 맑은소리가 퍼져 나간다는 것. 공의 아래를 차면 부웅 떠오르며 날아간다는 것이나 헬륨가스를 먹으면 목소리가 이상하게 변한다는 사실. 앞으로 아이에게 일러줄 많은 것의 지분도 삼촌에게 있다. 기억이 기억으로 대물림되겠지. 그 안에서라도 당신이 영원히 살아있었으면 하고 지금은 바란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아이를 잃은 유가족이 진도에서부터 국회의사당까지 행진하며 대전에 들렀을 때, 엄마와 함께 직접 만든 점심을 대접했다. 밥을 밀어 넣은 다음에는 우리도 함께 걸었다. 잠시 쉬어가던 시간에 모자에 아이들의 명찰을 뺴곡히 달고 계신 어머님 한 분이 다가와 초콜릿을 건넸다. 


“우리 큰 애 나이 정도로 보이네.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드려요.” 


     어머님의 가방에는 m&m's 초콜릿만 한가득 들어있었는데, 우리의 슬픔을 기꺼이 나누고 함께 하는 분들께 작게나마 보답하고 싶어 가득 채워 다닌다고 하셨다. 어머님은 놀랍게도 웃고 계셨다. 나는 그 초콜릿을 먹지 못했다. 책상 어딘가에 두고, 두고두고 바라보면서 슬픔을 연대하는 사람들이 가진 힘을 잊지 않으려 했다. 그들은 강했다. 그들만큼 건강하게 자신의 아픔을 발산하고, 분노를 해소하는 사람을 나는 본 적 없었다. 우울에 지려 할 때마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내 편이 되어줄 누군가에게 손내밀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하나보다 둘이, 둘보다는 셋이 더 많은 무게를 짊어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하여 괜찮다. 사무치던 순간도 지나갔다. 소년과 아이들이 있어서. 잘 견딜 수 있으리란 것도 벌써 알았다. 가족들이 있으니까. 외가는 육촌에 팔촌까지 왕래하고 지내는, 요즘에는 보기 드문 집으로 사랑이 많다는 걸 알아서 엄마와 이모들, 막내 삼촌과 할머니까지 모두 힘내어 잘 살아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슬픔을 연대하고 있으니 우리는 걱정 않으셔도 된다.

     재작년에 시 할아버님을 떠나보낼 때에도, 이번에도 나는 임신으로, 육아로 자리를 지킬 수 없었다. 슬픔을 충분히 느끼고 보낼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 크게 절망하여 이리도 가혹할 수 있을까 싶었으나 소식을 듣고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할 때 엄마 왜 그래, 하며 다가와 내 눈물을 닦아 주던 선우의 작은 손. 자기 전 내 품에 안겨서 엄마 많이 놀랐구나, 울지마, 이제 괜찮아, 말해주는 선우의 목소리. 언제든 팔만 벌리면 내게 다가와 안기는 준우의 작은 품이 슬픔을 덮어주고 있다. 번개처럼 반짝하는 추억에 몸 사릴 틈도 없이 놀라서 눈물이 날 것 같을 때마다 적당히 사고를 쳐주는 아이들이 있어 저만치 갔던 생각이 금세 제자리를 찾아서 온다.  

     삼촌을 떠나보내던 닷새 동안 날이 너무 좋아서 나는 기쁘게 아팠다. 삼촌에게 인사하러 온 사람 중 누구 하나 겉옷을 벗고도 추워하지 않았다. 평생 바깥에서 사람들 챙기더니만 가는 길에도 다정이 묻어난다며 이제는 제법 중년의 태가 나는, 그래도 아직 너무 젊은 삼촌의 친구들이 말했다. 머리칼을 넘기는 바람에 봄 냄새가 묻어나는 날이어서 우리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는 말보다 먼저 날씨가 참 좋지 운을 떼며 서로를 맞을 수 있었다.

     선우도 삼촌 할아버지 잘 가요, 인사하고 왔다. 선우는 꽃을 놓고, 향을 피우고, 절도 두 번 했다. 자기 전 한이불을 덮고 누워 이야기했다. 삼촌 할아버지는 이제 볼 수 없다고, 더는 삼촌 할아버지의 목마와 비행기는 못 탄다고. 반짝반짝 작은 별이 된거야 ? 선우는 물었다. 나는 아이를 안고 몸을 떨었다. 

삼촌이 뜨겁게 타오르러 들어가던 길목에서 나는 이성을 몇 번 잃었다. 관을 부여잡고 가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 걸 참느라 까무러칠 뻔했다. 모두 잘 가라고 하니까 나는 더 참기가 힘들었다. 자꾸만 화가 났다. 내 안에 너무 생생하게 살아있고, 남아있잖아. 그런데 형태가 사라진다니. 만질 수가 없다니. 보고 싶을 때 볼 수가 없다니. 내가 알던 얼굴이나 손이나 발, 눈가의 주름이나 무릎의 흉터, 높은 콧대에 앉은 안경 자국 같은 게 이제 더는 없다니.


     완연한 봄이 어서 오면 좋겠다. 꽃이 눈처럼 흩날릴 사십구재에는 내가 삼촌을 붙잡아두지 않고 잘 보내줄 수 있다면 좋겠다. 서른을 목도에 둔 봄의 초입에야 알게 되었다. 사람이 누구나 봄꽃처럼 예고하고 찾아왔다가 때가 되어 가는 것은 아니구나. 순리를 거스르기도 한다는 걸. 


     이별은 정말 아무 날에나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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