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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광석 Oct 02. 2024

한국어가 받은 라일락 꽃향기의 축복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서시>



우리말을 무척 아끼고 사랑했던 윤동주 시인은 1941년 11월 20일 ‘서시’를 완성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시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개 ‘서시’나 김소월 시인이 지은 ‘진달래꽃’을 첫손으로 꼽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려서 마음을 한껏 맑아지게 만드는 ‘서시’에서 제목과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의 ‘점’이 한자어다. ‘서시(序詩)’는 책의 머리말 대신 쓰는 시를 뜻하는 말이고, ‘점(點)’은 아주 적은 양을 나타내는 말이다.



1984년 가을, 이장희가 운영하던 광화문 랩 스튜디오에 신촌블루스 엄인호와 가수 권인하, 이문세 등이 모여 있었다. 이장희를 제외한 나머지 가수들은 아직 무명들이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피아노도 치고 작곡도 하던 이영훈이 있었다. 이영훈은 엄인호가 권유하자 마음에 드는 노래를 찾던 권인하와 이문세에게 습작을 들려주었다. 이문세는 이영훈이 연주하는 ‘소녀’를 듣는 순간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때부터 인연을 맺은 이영훈과 이문세는 짝을 이루어 ‘난 아직 모르잖아요’, ‘그녀의 웃음소리뿐’, ‘사랑이 지나가면’, ‘옛사랑’, '광화문 연가‘ 등 숱한 명곡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영훈이 작사하고 작곡하여 이문세가 부른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라일락 꽃향기 맡으면 잊을 수 없는 기억에

햇살 가득 눈부신 슬픔 안고 버스 창가에 기대 우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떠가는 듯 그대 모습

어느 찬비 흩날린 가을 오면 아침 찬바람에 지우지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 잊지 않으리 내가 사랑한 얘기

우~ 여위어 가는 가로수 그늘 밑 그 향기 더하는데

우~ 아름다운 세상 너는 알았지 내가 사랑한 모습

우~ 저 별이 지는 가로수 하늘 밑 그 향기 더하는데

내가 사랑한 그대는 아나



이 노래에서 한자어 ‘향기’를 고유어 ‘냄새’로 바꾸어 부르고 들을 경우 어떤 느낌이 들까? 아마 라일락 꽃향기를 느낄 수도 없고 노래의 서정성도 사라질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은 동생이 끓인 라면이라는 말이 있다. 누군가 라면을 끓일 때 나는 냄새가 후각은 물론이고 미각과 촉각을 자극하면 갑자기 식욕이 솟구치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을 매우 적절하게 표현한 말이 바로 ‘동생이 끓인 라면’이다. 여기서 고유어 ‘냄새’를 한자어 ‘향기’로 바꾸면 라면의 특별한 맛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말은 말소리는 다르지만 의미가 비슷한 유의어가 풍부하게 발달되어 있다. 이러한 단어들을 서로 유의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그 사람과 안면이 있다.

너는 얼굴이 무척 길구나.

너를 볼 낯이 없다.



이 세 문장에서 한자어 '안면'과 고유어 ‘얼굴, 낯’은 유의어이다. 안면, 얼굴, 낯은 의미가 비슷하지만 다른 말로 바꾸면 문법이나 어법에 어긋나는 문장이 된다.



고유어 ‘피’와 한자어 ‘혈액’, 한자어 ‘남자’와 고유어 ‘사내’도 서로 유의 관계에 있다. 그런데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사람이 어느 날 찔러도 혈액 한 방울 나지 않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남자학교를 사내학교로 바꾸고 남자화장실을 사내화장실로 바꾸면 부자연스럽고 어색하다.



“이루마라는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 주셨어요. 순수한 한글 이름이에요. 1남 2녀 중 막내인데 큰누나 이름은 이루다, 작은누나 이름은 이루지예요.” 이씨의 아버지는 1970년대 서울대에서 열린 한글 이름 짓기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래도 어릴 적에는 이름 때문에 놀림을 많이 당했어요. 또 데뷔 초에는 일본인 피아니스트라는 기사가 나기도 했죠.”



주간조선 기자가 2006년 1월 피아니스트 이루마를 만나서 인터뷰하고 쓴 기사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이루마는 아버지가 순수한 한글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했다. 기자는 이루마의 아버지가 한글 이름 짓기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 부분에서 뭔가 어색하거나 이상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글’이라는 말을 ‘고유어’나 ‘한국어’를 뜻하는 말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글은 한국어를 적는 문자 체계일 뿐이므로 ‘순수한 한글 이름’을 ‘순우리말 이름’이나 '토박이말 이름'으로 고쳐야 한다. 물론 사람들 대다수가 한글이라는 말을 고유어나 한국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면, 그걸 금지할 도리는 없다. 그래도 문자를 가리키는 말과 언어를 의미하는 말을 구별해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전에 우리 조상들은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적었다. 사람 이름을 ‘介同’으로 적고 ‘개똥’이라고 읽었다. 일반 명사를 ‘同介’로 적고 ‘똥개’라고 읽었다. 介同과 同介는 중국어가 아니라 한자로 표기한 한국어이다. 1644년 9월 8일 영국군은 네덜란드 군대를 물리치고 뉴암스테르담에 입성했다. 요크 공작이 소유하게 된 도시는 새 주인을 기리는 의미가 담긴 뉴욕(New York)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미국에서 들어온 영어 ‘New York’을 한글로 적은 외래어 지명 ‘뉴욕’은 한국어이다. 한국어 ‘개’를 로마자로 적으면 ‘gae'이고, 영어 ‘dog’를 한글로 적으면 ‘도그’이다. 한국어, 중국어, 영어는 언어를 가리키는 말이고 한글, 한자, 로마자는 언어를 표기하는 문자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말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용하는 고유의 말이나 한민족이 사용하는 언어를 이르는 말이다. 전자는 좁은 의미의 우리말이고, 후자는 넓은 의미의 우리말이다. 한국어는 넓은 의미의 우리말을 일컫는다.



한국어의 어휘는 그 기원에 따라 크게 세 층으로 나뉜다. 가장 아래에 있는 층이 고유어이고, 그 위를 한자어가 덮고 있고, 맨 위에 한자어 이외의 외래어가 얹혀 있다. ‘라일락 꽃향기’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꽃’은 고유어, ‘향기’는 한자어, ‘라일락’은 외래어다. 순우리말이라고도 하는 고유어는 말 그대로 바깥에서 들어온 말이 아닌 한민족 고유의 말이다. 하늘, 잎새, 바람, 별, 마음, 사랑, 길 따위의 낱말들이 고유어다. 한국어 어휘의 두 번째 층인 한자어는 한자로 표기할 수 있는 말이다. 한자어 층에는 먼저 신체(身體), 부모(父母), 반지(斑指), 유리(瑜璃), 단오(端午), 공주(公主), 만두(饅頭)처럼 한자를 매개로 중국어에서 차용한 말들이 있다. 그 다음으로 가족(家族), 입장(立場), 역할(役割), 철학(哲學), 물질(物質), 세포(細胞), 기차(汽車)처럼 한자를 매개로 일본에서 들어온 말들이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사돈(査頓), 식구(食口), 양반(兩斑), 감기(感氣), 명함(名銜), 선물(膳物), 친구(親舊)처럼 한국에서 만들어진 한자어들도 포함된다. 한자어 층 바깥을 감싸고 있는 것은 유럽계 외래어이다. 컴퓨터, 버스, 라디오, 펜, 커피처럼 영어에서 온 외래어가 가장 많지만 포르투칼어에서 온 빵, 독일어에서 온 아르바이트, 프랑스어에서 온 레스토랑 등 원래의 국적은 다양하다.



고종석은 《국어의 풍경들》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세상에 고유어로만 이루어진 언어는 없다. 완전히 닫힌 사회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자어와 유럽계 외래어 같은 차용어들 덕분에 한국어는 그 어휘를 크게 불렸고, 생각과 느낌의 결을 섬세하게 담아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차용어들은 한국어가 받은 축복 가운데 하나다. 그것들은 외국어 단어가 아니라 한국어 단어다.”



그러면서 오랜 옛날부터 한자어가 대량 유입되어 많은 고유어를 사라지게 했고, 그것은 우리에게 큰 아쉬움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자어가 유입된 덕분에 고유어 계통과 한자어 계통의 유의어 쌍이 무수히 형성되었다고 평가했다. 예를 들자면 피와 혈액, 뱃길과 항로, 소젖과 우유, 찬물과 냉수, 사람과 인간, 가슴과 흉부, 목숨과 생명, 노랫말과 가사, 뜻과 의미, 달걀과 계란, 고깃배와 어선, 홀소리와 모음, 닿소리와 자음, 겨레와 민족, 고니와 백조, 발자취와 족적, 눈길과 시선, 나라와 국가, 햇빛과 일광, 봄바람과 춘풍, 여름옷과 하복, 겨울잠과 동면, 아침밥과 조반, 허파와 폐, 눈알과 안구, 배앓이와 복통, 살갗과 피부, 온몸과 전신, 몸무게와 체중, 가루와 분말, 입맛과 구미, 제비뽑기와 추첨, 바다와 해양, 열매와 과실, 나이와 연령, 늙은이와 노인, 윗옷과 상의, 바닷가와 해변, 새해와 신년 등이 있다. 우리말의 한자어들은 한국어의 어휘를 크게 불리고 문체를 기름지게 만들었다.



인터넷에 ‘미국인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미국 중심주의를 풍자하는 우스갯소리가 올라온 적이 있었다. 미국 해군 소속 군함과 캐나다 뉴펀들랜드 해안 관청이 주고받은 무선 교신 내용을 전하는 글이었다.



미국인 : 충돌할 위험이 있으니 당신의 항로를 북쪽으로 15도 변경하기 바란다.


캐나다인 : 충돌을 피하려면 당신이 항로를 남쪽으로 15도 변경해야 한다.


미국인 : 나는 미국 해군 함정의 선장이다. 다시 한번 말한다. 당신이 항로를 변경하라.


캐나다인 : 안 된다. 다시 한번 말하겠다. 당신이 항로를 변경하라.


미국인 : 여기는 미합중국 대서양함대에서 두 번째로 큰 군함인 ‘USS 링컨’ 항공모함이다. 그러니 당신이 북쪽으로 15도 항로를 변경하라. 그렇지 않으면 항공모함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


캐나다인 : 여기는 등대다!



여기에서 한자어 ‘항로’를 고유어 ‘뱃길’로 바꾸면 느낌이 사뭇 달라질 것이다. 서로 유의 관계를 이루는 항로와 뱃길이 지니고 있는 뉘앙스가 다르기 때문이다.



‘백미(白眉)’는 흰 눈썹이라는 뜻으로, 여럿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나 사물을 이르는 고사성어다.



비 갠 긴 언덕에는 풀빛이 푸른데,

그대를 남포에서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대동강 물은 그 언제 다할 것인가?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 더하는 것을.

우헐장제초색다(雨歇長堤草色多)

송군남포동비가(送君南浦動悲歌)

대동강수하시진(大同江水何時盡)

별루년년첨록파(別淚年年添綠波)

- 정지상, <송인(送人)>



이 작품은 고려 시대의 대표적인 한시로, 오랜 세월 동안 민족의 보편적 정서를 절절하게 담아낸 이별시의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 한문학자 송재소는 한국시가 전체를 통틀어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일컬어지는 이 시를 이렇게 해설했다.


“비 그친 강 언덕의 파릇한 풀빛은 산뜻하고 고울 것이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슬픈 이별의 장면이 연출된다. 배경이 아름답기 때문에 이별의 슬픔이 더욱 고조된다. 그러나 시인은 이별의 슬픔에 압도당하기보다 이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대동강물이 불어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이별의 눈물을 뿌린다는 엄청난 과장법을 통하여 이별을 보편화시킴으로써 애써 이별의 슬픔을 달래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며 자기 위안의 자세이다. 달관의 경지마저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자기 위안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자세에서 우리는 더 크고 더 깊은 슬픔을 볼 수 있다.”(송재소, 《한국한시작가열전》)



정지상의 <송인>은 선조들이 남긴 한시 중에서 가장 빼어난 작품이다. 중국 사신이 오면 대동강변의 부벽루에 걸려 있는 한시들을 모두 치웠지만 <송인>만은 남겨두었다. 사람들은 정지상의 시를 두고 신의 운율이 감돈다고 극찬하면서 그를 천재로 떠받들었다.



이 글에서 “이별시의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를 “이별시의 흰 눈썹으로 평가받고 있다”로 바꾸어 표현하면 고사성어 ‘백미’가 지닌 의미가 완전히 사라져버린다.



우리나라에 우유 회사는 있고 소젖 회사는 없다. 냉수마찰은 자연스럽지만 찬물마찰은 부자연스럽다. 위급할 때 “인간 살려”라고 말하지 않고 “사람 살려”라고 말한다. “누군가의 가슴을 울렁여 보았으면”에서 ‘가슴’을 ‘흉부’로 바꾸면 왠지 무서워진다. “목숨만 살려 달라”에서 ‘목숨’을 ‘생명’으로 바꾸면 어색하다. “꽃도 생명을 지니고 있다”라고는 말해도 “꽃도 목숨을 지니고 있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처럼 한국어에서 고유어와 한자어는 서로 대신할 수 없는 의미 영역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길가에 피어 있는 라일락 꽃향기를 맡다가 집으로 돌아와서 동생이 끓이는 라면 냄새에 환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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