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남은 게 없다
중학교 때 같은 반 친구의 장래 희망은 라디오 DJ였다. 나는 속으로 ‘DJ? 그거 아나운서가 되든, 연예인이 되든 뭐 특별한 사람이 일단 돼야 라디오 DJ 기회가 생기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대신 친구에게 라디오 대본을 써줬다. 그 당시에 나는 라디오를 많이 들어서 방송 대본도 그럴싸하게 썼다. 연습장에 대본을 써서 북 찢어 친구에게 줬으니 나름 ‘쪽대본’이라고 할 수 있나? 친구는 나의 쪽대본을 받으면서 너무 고마워하고 미안해했다.
“네 글을 이렇게 받기만 해서 어떡해?”
“괜찮아. 내 취미활동인데 뭐. 네가 받아서 DJ 연습하면 되지.”
그 글을 남긴다고 어디 쓸 데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전혀 미련이 없었다. 지나고 보니 내 글이었는데, 그땐 그런 개념이 없어서 유야무야 사라졌다. (남겼다고 해서 그럴 가치가 있는 글은 아니었지만.)
회사에 입사해서 많은 기안문과 보고문을 썼다. 사내 인트라넷 문서에 내 이름을 수도 없이 남겼다. 그 문서들도 내가 쓴 ‘글’의 일종이지만 다 쓰고 나면 성취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결재가 잘 통과되면 다행인 거고, 아니면 수정과 재보고 과정을 통해 결재받으려고 애를 썼다.
문서에 내 이름을 많이 남기고 싶지도 않았다. 글의 퀄리티가 떨어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문서에 이름을 많이 남길수록 나중에 골치 아파질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5년 후, 10년 후에도 “그때 이 일은 왜 그렇게 했어?”라는 얘기가 나오면 해당 문서 기안자가 소환될 수 있다. 소환되지 않으려면 애초에 문서를 적게 남기거나, 훗날에 퇴사했거나 해야 한다.
발표나 교육용, 회의용으로 만든 파워포인트 자료도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이다. 미적 감각이 떨어지는 내가 만든 파워포인트 자료는 그대로 폐기 처분해줬으면 좋겠는데, 내 이름을 달고 그대로 남아 있겠지. 나는 후임자들에게 남김없이, 아낌없이 내 이름이 박힌 문서를 남겨 주었다.
어쨌든 변치 않는 사실은 이것이다. 기안문과 보고문은 내가 썼지만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