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남은 게 없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알게 된 게 많다. 출산율이 저조하여 심각한 국가 문제라고 하지만 산부인과에는 여전히 산모가 많다는 것, 괜찮은 산후조리원은 예약이 치열하다는 것, 베이비시터의 몸값은 나보다 비싸다는 것 등.
나는 큰아이를 낳고 90일 만에 복직해야 해서 입주 베이비시터를 구했다. 베이비시터를 구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면접이란 건 내가 당해는 봤어도 직접 해봤어야지. 여러 자료를 찾아서 면접 질문지를 만들었다. 다행히 선량한 인상의 시터 이모님 한 분을 면접하고 바로 그분을 고용하기로 했다.
이모님은 전에 아이 한 명을 봤던 경력 외에는 경력이 없었는데 우리는 그 점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이 업계에서 닳고 닳은 상태가 아니니 쉽게 그만두거나 월급을 자꾸 올려 달라고 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문제는 우리 큰아이가 너무 예민한 아이였다는 것. 이모님은 처음 우리 집에 오셔서 저녁에 한 시간 내내 우는 아이를 보고 많이 놀라셨다. 나랑 남편이 대강 달래서 아이를 재웠는데, 이모님은 누군가와 통화하며 "애 보는 거 쉽다며? 나는 애 못 보겠다."라며 우셨다. 그래도 끈기 있고 책임감 있으신 분이라 그만두지 않고 쭉 계셔주셨다. (약 2년을 함께했다.)
아이가 이유식을 먹을 무렵 이모님께 이유식 만든 적이 있냐고 여쭤보니 전에 키우던 아기는 생후 6개월부터 국에 말아 밥을 먹였다고 하셨다. 기겁하여 이유식은 내가 만들기로 했다. 나는 맘카페와 블로그, 이유식 책 등을 섭렵하여 이유식을 만들었다. 아기가 잘 먹을 생각에 (실제로 잘 먹진 않았지만) 퇴근 후에 열심히 만들었다. 초기엔 하루에 한 번만 이유식을 먹어서 할 만했지만 나중에 하루에 두세 번 먹을 때는 이유식을 만드는 주기가 너무 자주 돌아와서 괴로웠다.
작은아이 출산 후에는 음식을 잘하시는 베이비시터를 만나 시터 이모님이 이유식을 다 만들어 주셔서 편했다. 내가 초기에 이유식을 만들겠다고 칼질하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해서 언제 다 만들겠어요?”라며 방법만 알려주면 본인이 하시겠다고 했다. (이분과도 약 2년을 함께했다.)
큰아이 때 베이비시터를 뽑아본 경험이 있어서 작은아이 때 베이비시터를 뽑는 게 어려우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막상 면접을 보니 쉽지 않았다. 이 사람은 이런 게 아쉽고, 저 사람은 저런 게 아쉬웠다. 기계나 프로그램이라면 이 기능을 빼고 저 기능을 보완하여 더 나은 버전을 만들 수 있겠지만 사람이니 그게 안 되었다. 결국 아쉬운 면이 가장 적은 분을 만나 맞춰갈 건 맞춰가며 살았다.
베이비시터를 구하고 면접하는 법, 시터 이모님과 함께 슬기롭게 생활하는 법, 이유식 만드는 법 등등 육아 관련 정보를 아이들이 아기 때엔 빠삭하게 잘 알았는데 그것도 그때뿐이었다. 지금은 그런 정보들이 허공으로 사라져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남은 기억은 큰아이를 봐주시던 원주 이모님(원주에 사셨음)이 찐빵과 감자를 좋아하셨다는 것과 작은아이를 봐주시던 탈북자 이모님(북한에서 넘어오신 지 7년 넘으셨음)이 잔치국수, 제육볶음 등 음식을 기가 막히게 잘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 좋은 분들을 만나 우리 아이들이 무사하고 건강하게 자랐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