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선 바보가 된다

드디어 말레이시아 입국

by JOO

해외에 가면 사람들의 모습도 다르고 들리는 언어도 다르다. 화폐도 달라서 돈의 값어치도 언뜻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러한 차이가 당연한 거지만, 입국하고 처음 며칠 동안은 일상생활도 못 하는 바보가 된 것처럼 느낀다.


해외에 나와서 가장 주눅이 드는 이유는 언어이다. 영어권 나라에 가면 ‘안다고 생각하던’ 영어가 안 들려서 주눅 들고, 비영어권 나라에 가면 곳곳에서 들리는 낯선 말과 여기저기 보이는 생소한 글자에 위축된다. 모르는 언어가 사방에서 웅웅대며 나를 휘감는 기분이다. 말레이시아의 기본 언어는 말레이어지만, 영어가 잘 통하고 화교들이 많아 중국어도 많이 쓰인다. 말레이시아에 도착해서 내가 영어로 대화할 상황은 아직까지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그때마다 말을 제대로 못 했다. 하고픈 말을 하려 해도 나오지 않는다. 으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는 느낌은 겪을 때마다 참 싫다!


말레이시아는 좌측통행이다. 차량 오른쪽에 운전석이 있고, 좌측 차선으로 달린다. 영국, 일본, 태국, 홍콩 등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들이 좌측통행을 한다. 말레이시아도 과거에 영국 식민 지배를 받았고 현재 영연방 회원국이라고 한다. 좌측통행은 볼 때마다 생소하다. 머리로는 알겠지만 가슴으로 못 받아들이겠는 기분이랄까. 차에 타고 있을 때는 그나마 나은데 (직접 운전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보행자로서 길을 건널 때는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무의식중에 왼쪽을 먼저 보며 길을 건너려고 하다가 한 박자 늦은 템포로 좌측통행이란 것을 의식하여 오른쪽을 본다. 간단한 길 건너기조차 제대로 못하니 이때도 바보가 된 기분이다. 몸에 밴 습관이란 이토록 무섭다. 새로운 습관을 체득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사실 나는 해외에 나와서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싫으면서도 좋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적응하려면 분명히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새로운 것은 신기하고 재미있다. ‘여긴 이렇구나.’라고 받아들이다 보면 낯섦이 친숙함이 되어 간다.


낯섦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우리는 이번에 '낯선 새해'를 맞이했다.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 우리 가족은 한국 시간 12시, 쿠알라룸푸르 시간 11시에 보신각 종 치는 것을 봤다. 사실 나는 전날의 피로 때문에 새해 맞이고 뭐고 빨리 자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전날인 12월 30일에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하였는데, 7시간의 긴 비행 후 입국 수속, 수하물 찾기, 숙소까지 이동, 숙소 체크인을 하고 입실을 한 시간이 새벽 2시였다.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 하여 수프를 끓여 주고 3시에 잤으니 다음날 피곤한 건 당연했다. 먼저 자겠다는 나에게 아이들은 가족이 함께 새해맞이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내려오는 눈꺼풀을 억지로 올려가며 11시까지 꾸역꾸역 버텼다. 함께 카운트다운을 하고 2023년이 되어 새해 인사를 나누고 서로를 안아준 다음 아이들을 재웠다.


아이들을 재운 후 나도 자려는데, 남편이 여기 시간으로 새해가 되면 페트로나스 타워(이하, 트윈 타워)에서 불꽃놀이를 한다고 한다. 서울 롯데타워에서 1월 1일이 되면 불꽃놀이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너무 졸려서 그냥 자고 남편이 12시까지 보고 영상을 남기기로 했다. 침대에 누웠는데 밖에서 펑펑 소리가 들린다. 트윈 타워와 반대 방향에서 작은 불꽃놀이를 한다. 어느 정도 하다가 잠잠해지길래 다시 누워서 잠을 청했다.

32층에서 바라본 불꽃놀이는 아주 작게 느껴졌다.



이번에는 창 밖에서 경적 소리가 난다. 정신이 몽롱해서 시끄러움을 물리치고 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경적 소리가 점점 커진다. 경적이라면 “빵빵!” 했다가 멈추는 시간이 있어야 할 텐데 소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난다. 소리가 매우 매우 크다. 도저히 잘 수가 없다. 거실로 나가서 남편에게 “무슨 일이야? 사고라도 났어?”라고 물으니 남편이 “몰라. 여기 이상해. 차도를 사람들이 꽉 막아서 저기 길에 있는 차들 하나도 못 움직여. 저기 있는 버스는 아까부터 저 자리야.”라고 한다. 또한 우리가 어제 왔으니 망정이지, 오늘 입국했으면 저 길거리에서 어쩔 뻔했냐는 말도 덧붙였다.

차도를 점령한 사람들


구급차 소리가 들렸다. 저 인파에 다친 사람이 생긴 거 아닌가 걱정되었는데, 남편이 가리킨 도로에 빼곡히 서 있던 사람들이 이내 다 흩어졌다. 아마 교통경찰이 와서 사람들을 해산시켰나 보다. 한참 못 움직이던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트윈 타워 앞 광장에 사람들이 가득 차있다. 저곳이 서울의 보신각 앞인 듯하다. 그사이 정체 모를 소리는 더 커졌다. 경적 소리가 아님이 분명했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이거… 부부젤라 소리 아니야?”

배경 소리가 부부젤라


1월 1일이 되기 직전에 트윈 타워는 조명을 껐다가 조명 색깔을 바꿨다. 평소에는 하얀색인데 그때는 알록달록해졌다. 그러나 정작 새해가 되었는데 불꽃놀이도 없고 조명도 특별히 달라진 게 없었다. 부부젤라(로 추정되는 물체의) 소리와 사람들의 함성 소리만 들렸을 뿐.

“에이, 이게 다야? 나는 잘래.”

나는 먼저 자고 남편은 좀 더 지켜봤는데 결과적으로 거대한 불꽃놀이는 없었다고 한다. 찾아보니 말레이시아 총리가 올해 홍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의미로 새해 전야제 불꽃놀이를 취소했다고 한다.


* 관련 내용: https://blog.naver.com/dadablog888/222971552096


비록 멋진 장관은 보지 못했지만 더운 나라에서 부부젤라와 함께 맞이한 새해는 특별했다. 아직도 그 시끄러운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축구장도 아닌데 말이야!)



아직은 숙소와 숙소 앞 쇼핑몰만 가봐서 주변 지리를 잘 모른다. 돈도 익숙하지 않아서 일단 큰돈을 내고 잔돈을 차곡차곡 모아둔다. 그러나 한 며칠 있으면 동전도 야무지게 사용할 수 있을 것임을 안다. 여기 지리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잘 알게 될 것이다. 1주일 이내의 짧은 여행이 아니라 한 달이라는 충분한 기간의 여행이니 초조하지 않다. 천천히 생활하다 보면 이곳에 적응할 것이고, 낯섦이 익숙함으로 바뀔 때면 한국에 돌아갈 때가 될 것이다. 한 달 후에 한국에 가서 한국은 불편하게 왜 우측통행을 하냐고 되려 투덜거릴지도 모르겠다.

말레이시아 돈 링깃(RM)



말레이시아의 인종은 말레이계(62%), 중국계(21%), 인도계(6%), 기타(1%), 외국인(10%)로 구성되어 있다. 언어는 말레이어(바하사 믈라유)가 공용어이나 중국계와 인도계는 각자 고유의 언어를 주로 사용하며, 영어가 널리 통용된다. 말레이시아의 국교는 이슬람교이지만, 불교, 도교, 힌두교, 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에 대한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