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나 살림은 필요하다

레지던스형 호텔에서의 집안일

by JOO

우리가 한 달 동안 머물 숙소는 쿠알라룸푸르 중심지 KLCC(Kuala Lumpur City Center)에 위치한 레지던스형 호텔이다. 즉, 취사가 가능한 호텔이다. 취사가 가능하지만, 본격적으로 요리를 하기엔 번잡스러울 것 같아서 식사는 웬만하면 외식하거나 사다 먹으려고 계획했다. 또한 호텔에서 1주일에 두 번 청소해주므로 집안일 걱정 없이 잘 쉬다 가려고 생각했다.

투 베드룸(침실 2개) 숙소

그러나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나 살림이 필요하다. 일단 끼니는 아이들이 한식을 찾다 보니 집에서 차려야 한다. 한국에서 싸 온 컵반 양념, 김과 김치, 여기서 구입한 계란 등으로 끼니를 차린다. 근처 일본 백화점 지하 코너에서 오므라이스나 카레 도시락을 사다 먹이기도 한다. 그나마 점심은 어학원에서 한식 도시락으로 먹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어 좋다.

유학원을 통해 미리 신청한 점심 도시락


설거지는 귀찮아도 바로바로 해야 한다. 싱크대가 작아 설거지를 쌓아둘 공간이 없거니와 그릇과 접시, 컵의 수도 제한적이라 어쩔 수 없다. 수전의 물살이 너무 세서 처음 며칠은 설거지할 때마다 바닥에 흥건하게 물을 튀겼는데 이젠 적응이 되어 물을 최대한 살살 틀고 설거지를 한다.


빨래는 매일 두 번씩 한다. 세탁기가 작고, 매일 수영을 하다 보니 빨래가 많이 나와서 오전과 오후에 세탁기를 돌린다. 한국에 있을 땐 빨래 개기가 귀찮아서 거실에 두거나 심지어 건조기에서 안 꺼낼 때도 있었는데, 이곳은 세탁기와 건조기 일체형이기 때문에 빨래를 안 꺼낼 수 없다. 빨래가 다 되면 바로 개켜서 옷장에 넣는다. 하지만 하루에 두 번 빨래를 하다 보니 하루에 두 번 빨래 개는 것도 일이다. 그래서 다 된 빨래를 모았다가 하루 한 번만 개는 것으로 바꿨다.

세탁 건조 일체형(세탁부터 건조까지 약 5시간 걸린다)


아이들은 숙소에서 맨발로 다닌다. 슬리퍼는 답답하다고 한다. 맨발로 걷기만 하며 다행이게? 카펫 위에 앉고 뒹굴고 난리도 아니다. 나는 깨끗함에 민감한 사람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숙소 바닥에 누워 있는 모습이나 인형을 바닥에 둔 모습을 보면 "으아!" 소리가 절로 나온다. 숙소 바닥은 한국 나무 마루처럼 깨끗하지 않고 카펫까지 깔려 있다. 여기저기 먼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호텔에서 1주일에 두 번 청소를 해줘도 바닥은 그다지 깨끗하지 않다. 게다가 아이들이 먹다 흘린 밥풀과 과자 쪼가리가 수시로 바닥을 장식한다. 바닥을 볼 때마다 심란하여 밀대와 청소용 물티슈를 샀다. 한 달 동안 청소를 안 하며 편히 살 생각에 들떴는데 (그리고 실제로 며칠 청소를 안 해서 좋았는데) 더는 버틸 수 없다. 카펫을 걷어내고 바닥을 닦았더니 속이 시원하다.

카펫을 걷어내니 후련


여태까지 생활하며 가장 불편한 점은 쓰레기 처리다. 생수 페트병, 우유병을 비롯하여 많은 생활 쓰레기가 나온다. 한국에서는 정수기를 사용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이 물을 얼마나 많이 마시는지 잘 몰랐다. 말레이시아에 와서 생수를 사 먹으니 생수가 빠르게 소진되는 것에 한 번 놀라고 생수병 쓰레기가 이토록 많이 나오는 것에 또 한 번 놀란다. 호텔 내에 쓰레기를 스스로 갖다 버릴 공간이 없어서 불편하다. 처음에는 청소 날까지 많은 쓰레기를 방에 두느라 난감했는데, 방 앞에 쓰레기 봉지를 두면 청소 날이 아니어도 치워준다고 하여 지금은 그렇게 하고 있다.


여기는 충격적이게도 재활용이며 일반 쓰레기, 음식 쓰레기를 구분하지 않고 한꺼번에 버린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구분하지 않고 같이 버리면서도 영 찜찜하다. 말레이시아도 배달 시에 환경 부담금(포장 요금)이 추가되고 마트에서 비닐봉지를 유료로 판매하거나 비닐이 없는 곳은 에코백을 판매하고 있다. 그렇지만 쓰레기 구분을 하지 않고 버리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람!


결과적으로 이곳에서도 밥과 설거지, 빨래와 청소 등을 해야 하지만, 집에서보다는 살림이 간소화되어 그런지 별로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니면 근처 쇼핑몰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재미가 살림의 지루함을 상쇄해주는 건가? 그러고 보니 어제는 다 된 빨래를 모아만 두고 개지 않아 꼬깃꼬깃 구겨진 빨래들이 나를 기다리는 중이다. 설거지도 쌓여 있고 바닥도 닦아야 하네. 하기 싫다는 생각이 없어진 게 아니라 내가 외면하고 있는 거였다.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