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자마자 작은아이 컨디션이 안 좋다. 체온을 재보니 열이 난다. 한 주를 잘 보내고 처음으로 맞이한 주말인데 열이 나다니!
오늘은 ‘시블반’ 관광을 신청한 날이다. ‘시블반’이란 ‘시티투어, 블루티어, 반딧불’의 줄임말이다. 쿠알라룸푸르의 주요 관광지인 국립모스크, 바투동굴, 블루티어(바다 빛깔이 파랗게 보이는 곳), 반딧불 투어를 하는 코스다. 기대했던 관광이지만 예약을 취소하였다. 예약을 취소하고 나니 생생하던 큰아이마저 열이 난다.
요런 일정으로 관광할 예정이었음
아이들은 “지난 금요일에 과학관에서 마스크 벗지 말 걸!”이라고 말한다. 말레이시아에 오니 실내에서도 마스크 벗은 사람들이 많다. 그 모습을 보더니 아이들은 한국에서도 마스크 안 쓰고 싶다며 내심 부러워했다. 그러던 차에 지난 금요일에 수업이 일찍 끝나고 ‘페트로사인스(Petrosains)’라는 과학관에 갔는데 견학 온 현지 학생들이 마스크를 안 쓰고 노는 모습을 보고 우리 아이들도 마스크를 벗었다. 한두 시간이라는 잠깐의 시간에 감기가 옮은 건지, 혹은 과학관의 냉방이 너무 세서였는지는 모르겠다. 또는 아이들 어학원도 냉방이 센 편인데 그런 추운 환경에서 지내서 병이 난 것일 수도 있다. (아이들은 별로 안 춥다고 한다.) 아니면 매일 수영을 해서 그랬나.
페트로사인스, 다양한 놀 거리가 있는 과학관
오후가 되자 큰아이는 배가 아프다고 한다. 감기가 아니라 장염인가? 거주지가 바뀌면 물이나 식재료가 달라지다 보니 배앓이를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살살 문질러줬는데 갑자기 배가 많이 아프다고 눈물까지 흘려서 상비약으로 싸 온 정장제를 먹였다.
나도 장이 좋은 편이 아니라 해외에 나가서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20대 초 여름방학에 계절학기로 중국 어학연수를 갔을 때 학교 친구들과 내몽고에 여행을 간 적이 있다. 호텔에 있던 보온병의 물로 차를 마신 후 배탈이 났다. (중국의 저렴한 호텔은 포트 대신 큰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담아 주는 경우가 많다.) 심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픈 배를 부여잡고 다음날 사막 투어를 가기 위해 버스를 몇 시간 탔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친구들은 눈치도 없이 한국 가면 먹고 싶은 음식을 나열하며 나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화장실도 몇 번 들락날락거렸는데 그래도 다행히 불상사(?)는 없었다.
소싯적 내몽고에서 장염투혼
어쨌든 아픈 아이들을 보니 관광 예약을 취소한 게 천만다행이다. 버스를 탔다 내렸다 관광하고 다시 다음 목적지로 가는 강행군은 아이들이 건강할 때도 분명 힘든 일정인데, 아픈 상태에서는 이 일정을 소화할 수 없었으리라. 낯선 곳에서 적응하고 한 주를 보내느라 피곤했을 아이들에게 이번 주말은 푹 쉬자고 했다.
해열제 약기운이 돌면 아이들은 생생해졌고 약기운이 떨어지면 다시 늘어졌다. 배가 아팠던 큰아이는 화장실 볼일을 보고 나서 괜찮아졌다. 하루종일 푹 쉬다가 저녁 늦게 생일 파티를 했다. 오늘(1월 7일)은 하필(?) 내 생일이기도 하다. 빵집에서 초는 덜렁 하나만 주고 성냥도 주지 않아 촛불은 붙일 수 없었다. 숙소에는 인덕션만 설치되어 있고, 라이터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촛불이 없는 생일 케이크는 너무 시시해요!”라고 외치길래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는 초 하나 준 것만 해도 큰 거야. 우리 한국만큼 인심 좋은 곳이 없다. 여기는 식당에서 물도 사 먹어야 하잖니. 빨리 생일 축하 노래나 불러주렴.”
생일 전날 아이들이 미리 준비한 것들
비록 아이들이 아파서 관광도 가지 못 했고, 생일이라고 맛있는 걸 먹지도 못 했지만, 가족이 하루종일 함께 부대끼며 보낸 하루도 나쁘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열은 토요일 하루만 났고 다음 날부터 콧물이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비염약을 먹이다가 기침이 시작되었다. 기침약은 한국에서 챙겨 오지 않아서 말레이시아 약국에 가서 기침약을 샀다. 작은아이가 구내염으로 며칠 동안 힘들어해서 꿀을 발라줬었는데, 약국 온 김에 구내염 약도 샀다. 기침 시럽은 효과가 좋아서 아이들에게 먹였더니 금방 좋아졌다. 구내염 약의 효과도 궁금했는데, 아이에게 발라주려고 했더니 그새 다 나았다고 한다. 며칠 내내 아프다고 해서 약 생각은 못 하고 꿀만 사다 발라줬는데, 진작 약국 가서 약을 사 올 것을. 미안, 엄마도 이곳 생활이 서툴러서.
기침 시럽과 구내염 약
아이들이 아프고 났더니 어느새 한 달의 3분의 1이 훅 흘렀다.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간다. 이제 남은 기간은 아프지 말고 즐겁게 보내다 갔으면 좋겠다.